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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집콕’의 달인, 덴마크 사람들 노하우 뭔가요?

등록 2021-09-23 04:59수정 2021-09-24 14:37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 인터뷰
‘위드 코로나’ 선언한 나라 덴마크
팬데믹 시기 버틴 힘은 ‘휘게’ 정신
“안락함 속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가 서울 성북동 관저에서 미술품을 설명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가 서울 성북동 관저에서 미술품을 설명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집에서 시간 보내기의 달인들이 있다. 춥고 해가 짧은 지역인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집 꾸미기를 좋아했다. 일찍 해가 지는 바깥 대신 집 안에 안락하고 편안한 피신처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그런 이들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럽다. 전염병의 유행과 함께 가장 강력한 방역 수단이 된 ‘집콕’, 세상에서 집콕을 가장 알차게 하는 이들이 팬데믹을 보내온 노하우는 무엇인지, 지난 16일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를 만나 물었다.

집 꾸미기의 달인들이 만든 브랜드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덴마크 사람들도 한국과 비슷했어요. 여행을 줄인 만큼 집을 더 안락하고 자기 맘에 들게 꾸미는 데 시간을 들였죠.”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덴마크 대사관저에서 만난 옌센 대사가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안락함이란 무엇일까. 옌센 대사는 역시나 ‘휘게’(Hygge)라고 답했다. 휘게란 가족,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 편안함 등을 뜻하는 덴마크어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삶의 모토를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편안함, 지속 가능,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 옌센 대사와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한 말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집을 꾸밀 때 구석구석 이런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이 휘게 라이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2010년대 초중반 한국 인테리어 시장을 강타했던 ‘북유럽 스타일’은 이제 한물간 듯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를테면 요즘 세련된 가구 편집매장의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웬만한 브랜드들이 덴마크 출신이다.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보았을 루이스 폴센. 1874년 덴마크에서 설립된, 100년이 훌쩍 넘은 덴마크의 조명 브랜드다. 감각 있는 카페에서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앤트 체어, 에그 체어 등으로 유명한 프리츠 한센 또한 덴마크의 오랜 가구 브랜드다. 이 외에도 몬타나·펌리빙·앤트레디션·무토·헤이·구비·칼한센앤선 등도 덴마크에서 시작됐다. 가구뿐만 아니다.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인 다인오디오·그리폰·뱅앤올룹슨 그리고, 조립 블록 장난감 브랜드 레고 또한 덴마크 기업이다. 인구 약 581만명, 서울 인구의 절반을 조금 넘는 나라인 걸 고려하면 대단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의 서울 성북동 관저에 걸린 루이스 폴센의 피에이치(PH) 아티초크 조명.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의 서울 성북동 관저에 걸린 루이스 폴센의 피에이치(PH) 아티초크 조명.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집 안이 곧 ‘휘게 라이프’ 쇼룸

이날 옌센 대사를 만난 덴마크 대사관저에서도 이들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를 한눈에 만날 수 있었다. 주방 탁자 위에는 루이스 폴센의 에니그마 425 펜던트가 내려와 있었고, 거실에는 모듈 가구로 유명한 브랜드 몬타나의 책장과 간결한 디자인이 아름다운 에리크 예르겐센의 소파가 마주 보고 놓여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는 루이스 폴센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인 포울 헤닝센이 디자인한 피에이치(PH) 아티초크가 거대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덴마크는 각국의 대사관저를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를 보여주는 쇼룸처럼 활용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브랜드를 자랑하는 데 그치는 건 아니다. 옌센 대사는 지속 가능하며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디자인, 그리고 그걸 통해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대화하고, 대를 이어 편안함을 물려주는 것이 그들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이 조명을 한번 보세요.” 그가 거실 한가운데 있는 라이트이어스의 오페라 펜던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페라 펜던트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하우스를 디자인한 덴마크 건축가인 예른 웃손의 작품이다. “뭐가 연상되나요? 오렌지 껍질을 까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나요?” 독특한 곡면 조형의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실제로 예른 웃손이 오렌지 껍질을 까던 중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생각과 디자인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값을 지급하고, 여기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것이 덴마크 사람들의 집 안 꾸미기 노하우란다.

그래서 물어봤다. 덴마크 사람들은 실제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 비슷한 제목의 책이 있을 정도로, 덴마크인들은 가구와 집 꾸미기에 대한 애착이 깊다고 알려져 있다. 대사는 첫 월급으로 컴퓨터를 샀지만, 본인에게도 애정이 깊은 의자가 있다고 소개했다. “제가 20대 때 산 의자인데, 같은 디자인으로 70년 전부터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어요. 지금은 제 아들이 그걸 탐내서 물려주고 왔죠.”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가 서울 성북동 관저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가 서울 성북동 관저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덴마크 대사관저의 굵직한 가구들은 새로운 대사가 부임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대신 크고 작은 소품들, 그림, 책 등은 현직 대사의 것으로 채워지는데 그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흥미롭다. 옌센 대사의 거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몬타나 브랜드의 책장 위에 걸려 있는 붉은색의 강렬한 유화와 오래된 피아노 의자였다.

책장 위의 그림은 대사가 방글라데시에 부임했던 시절, 그곳에서 만난 그림이다. 그림 아래에는 한국의 지인에게 선물 받은 자개 장식함이 놓여 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물건들이 한 사람의 취향에 따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피아노 앞에 놓인,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린 목제 의자는 옌센 대사의 아버지가 손녀를 위해 직접 만든 의자다. 목수였던 할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자신의 아버지가 나무를 깎고 다듬어 만든 그 의자다.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만으로 집 안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의 취향을 녹이는 것이 덴마크인들의 인테리어 방식이기도 한 셈이다. 언어와 나이와 성별이 다른 대사와 집과 집 안을 채운 물건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이유다.

‘집콕’을 버티는 소소하지만 강력한 힘

현재 덴마크는 지난 10일부터 코로나 관련 규제를 완전히 해제하고 ‘위드 코로나’의 시기로 진입했다. 그 전까지 학교 및 식당 폐쇄, 집회 금지 등 강력한 방역 조처를 시행하기도 했다. 여행이 어려운 지금 이런 덴마크인들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현재 덴마크대사관에서 캠페인 중인 ‘밋덴마크’(Meet Denmark)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들의 삶을 잠시 엿봐도 괜찮겠다. 그리고 그들이 팬데믹 일상을 버틴 힘이 휘게였다면, 우리도 찾아보자. 내 이야기가 깃든 집안에서 가족,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소소하게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통해서 말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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