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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 푸르름에 어찌 반하지 않을쏘냐

등록 2021-08-13 09:14수정 2021-08-13 09:18

김강은의 산 네게 반했어

금수산의 절경. 김강은 제공
금수산의 절경. 김강은 제공

금수산

높이: 1015.8m

코스: 상리-남근석 공원-금수산-망덕봉-용담폭포 분기점-상천휴게소

거리: 8.3㎞

소요 시간: 4시간 30분~5시간

난이도: ★★★★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먼 길이 부담된다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다. 월악산, 옥순봉, 구담봉, 제비봉 등 알이 굵직한 산들이 자리하고 호수를 품고 있는 충청북도다.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겠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생각나는 그런 곳이다. 이번엔 어떤 산을 여행해볼까? 두근거리며 휴대폰 지도 앱을 켰다. 충주, 제천을 더듬어 내려가다가 단양에 있는 ‘금수산’이 눈에 들어왔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하다’는 이름을 가진 금수산. 어떤 아름다운 비단일지 두 눈, 두 다리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산행도 지칠 법한 계절, 여름이 성큼 다가왔지만 비가 온 뒤여서일까. 금수산의 기운 덕일까. 시원하고 청명하다. 상리에서 시작해 남근석 공원을 지나 금수산 정상을 향했다가 망덕봉을 찍고 상천휴게소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이었다. 초입에서 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마치 우거진 숲의 산책로 같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금수산은 본색을 드러냈다. 높아지는 해발고도와 함께 다리의 근육은 점점 더 땡땡해졌다. 짜릿한 자극이었다. 일상 속에서 늘 비슷한 강도로 박동하는 심장을 더욱 뛰게 하는 건, 평평한 평지보다 잘 정비된 길보다 이런 불규칙한 돌길이다. 삐뚤빼뚤 돌길에 집중하며 잠들어 있던 모험심이 살아나고 도심에서 쌓여온 불순물이 흐르는 땀으로 빠져나가는 듯했다.

금수산 정상에 다다르니 뭉게구름이 피어난 하늘 아래 탁 트인 풍경이 펼쳐졌다. ‘백암산’이라 불리던 것을 퇴계 이황이 단양 군수로 있을 때 ‘비단에 수를 놓은 것같이 아름답다’ 하여 개칭된 금수산. 제멋대로 가지를 뻗친 소나무 뒤로 푸른 비단이 끝없이 펼쳐지고, 푸른 뱀과 같은 충주호가 비단 사이를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금수산 정상석 앞에서 새로운 명산을 발견했다는 뿌듯함, 그리고 1016m만큼 높아진 자존감을 채웠다.

다음 봉우리 망덕봉으로까지는 조망이 없고, 상천리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끝까지 방심은 금물. 하산 길은 올라왔던 길보다 더욱 험하고 가파르다. 바위에 납작 엎드려 네발로 기어가기도, 발이 닿지 않아 점프해야 하기도 했다. 역시 악 소리 난다는 월악산에 속한 금수산이었다.

그러나 불평할 필요는 없었다. 악 소리 나는 길 끝에는 억 소리 나는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여태껏 힘들었던 것을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는 아름다움. 쉽게 얻은 풍경보다, 거친 모험 끝에 얻어낸 풍경이 더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을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월악산의 북쪽 자락임을 자랑하는 듯 알찬 기암괴석과 명품송, 무더위를 날려버릴 기세로 쏟아지는 용담폭포의 우렁찬 노랫소리. 이 푸르름을 기억하려 붓을 들었다. 금수산의 비단 한 수를 빌려와 화폭을 장식하며 충청도에 다시 와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새겼다. 이번엔 푸른 비단이었지만, 다음에는 오색 비단을 담고 말리라.

김강은(벽화가·하이킹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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