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 자신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건, 마흔이라는 시간이 내게 가져다준 지혜일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본가의 반려견이 우리 집에서도 며칠 지내게 되었다. 열여덟 해를 산 우리 개는 지금 노환으로 몸이 좋지 않다. 밤에도 앓으며 잘 자지 않는데, 그래서 겪는 어려움 때문에 가족들이 돌아가며 돌보게 된 것이다. 반려견이 들르는 날이 되면 발코니를 우선 정리해둔다. 지금 발코니는 완전히 포화 상태로 여름을 나는 중인데, 혹시 안고 나가야 할 일이 있을까 봐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흰곰팡이병으로 고생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유칼립투스도, 아꼈던 동백 화분도, 여름의 시작을 함께했던 데이지와 라벤더도 아픈 가족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난다. 그렇게 한쪽으로 몰아 자리를 만드는 내 손길이 단호하고 좀 거칠어서 순간 멈칫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두려우면서도 어떤 갈급함과 의지로 불안정하게 진동하는 상태였다. 여름은 생명들에게 성장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고비가 잦은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해 여름에는 대부분의 다육식물들을 잃었다. 올해는 폭염이 문제이지만 작년에는 장마가 한달 넘게 지속되었고 그런 고온다습한 환경은 다육식물들에는 치명적이었다. 조금씩 짓무르기 시작하더니 흐물흐물해졌고 끝내는 다 녹아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다육식물을 사는 일이 꺼려졌다. 작고 저렴하며 종류도 무궁무진해서 부담 없이 키우는 식물인 줄 알았더니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 와중에도 녹귀란과 언성 그리고 청옥 같은 다육식물들은 살아남았다. 다행히 녹귀란은 상태가 좋고 나머지 둘은 아니나 다를까 더위 속에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화분 선반 앞에 설 때마다 그렇게 앓고 있는 두 식물을 애써 외면하려는 나를 느끼곤 한다. 화분도 갈아주고 물도 신경 써서 말려보고 식물등을 비춰 주기도 했지만 드라마틱한 회복은 없었고, 그런 노력의 실패를 증거하듯 더더욱 나빠지고 있는 식물들을 보기가 편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손길이 자주 가지 않고, 그런 나를 느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나 자신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건, 마흔이라는 시간이 내게 가져다준 지혜일 것이다.
여름 식물이 아픈 건 해충 때문이기도 하다. 식물 집사들이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해충 중 하나는 뿌리파리. 화분 곁에서 늘 진을 치고 있는 작은 날벌레로 대량 번식하고, 화분 흙 속에 유충이 자라기 때문에 박멸이 어렵다. 지난해 날벌레쯤이야 여름에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내다가 발코니에 뿌리파리 사체들이 수북이 쌓이는 낭패를 보기도 했다. 부랴부랴 끈끈이 트랩을 쓰고 약을 쳐봤지만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고 결국 겨울이 올 때까지 나는 인상을 쓰며 뿌리파리들을 쓸어내야 했다. 뿌리파리 유충들이 식물의 뿌리를 갉아 먹어 결국 고사시킨다는 것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었다.
올해는 다행히 과산화수소 희석액을 알게 되었다. 과산화수소를 물에 조금 섞어 식물에 주면 뿌리파리가 사라진다는 팁을 블로그에서 읽은 것이다. 이미 화분들 사이를 뿌리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고 있는 터라 나는 바로 동네 약국으로 달려갔다. 과산화수소를 달라고 하자 약사는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다. 일반적인 소독약이니까 달라고 하면 주겠지 여겼던 나는 순간 머뭇거렸다. 과산화수소를 화분에 쓰는 게 이 약제의 본래 용법은 아니니까 바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종류가 두가지라서 여쭤본 것뿐이에요.”
내가 당황하자 약사는 뭔가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가 싶었는지 더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설명했다. 나중에 나는 그 쉬운 대답을 안 한 건 기대가 깨어지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혹시 약사에게서 그런 데 쓰면 안 된다거나, 그건 완전 사이비 과학이에요, 하는 말을 들을까 봐.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실망하는 것, 나는 그것에 무척 취약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보니 이 방법에 회의적인 사람도 많았다. 뿌리파리 유충을 잡아다 과산화수소 희석액에 넣고 직접 실험(?)을 해보니 잘 죽지 않더라는 실증적 경험담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희석액으로 물을 줬고 화분 개수가 많다 보니 250㎖ 과산화수소 한통은 금세 썼다. 한달은 해봐야지 싶어 아예 한 상자를 더 샀고 물을 줄 때마다 착실히 넣어서 사용 중이다. 효과가 있다 없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지난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뿌리파리들이 줄었다고 느낀다. 그게 발코니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정말 과산화수소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나은 마음이다. 애를 써본 마음이기 때문이다.
지금 발코니에는 다정큼나무라고 하는, 살가운 이름의 화분이 여름을 나고 있다. 다정큼나무는 가지 끝에 열매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름이 근사해 데리고 왔지만 사실 나무는 잘 크지 못했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좋은 자리에 놓았는데도 늘 시들시들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나무는 새잎을 내고 꽃봉오리도 맺기 시작했다. 물론 기대만큼 꽃이 화려하게 피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변화였다. 그 비결이 뭘까 살펴보다 다정큼나무 발치에 수북이 자라고 있는 괭이밥을 발견했다. 클로버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하트 무늬에 가까운 식물로, 아픈 고양이가 뜯어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괭이밥이라고 한다. 해독 작용이 뛰어나 감기, 불면증, 각종 중독과 백혈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 괭이밥은 어디선가 풀씨가 날아와 저절로 자란 것이다. 그런 좋은 식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정큼나무의 발치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이 여름 가장 다정한 위로다. 하필이면 그 이름도 ‘괭이’밥이라는 것이. 어느 다정한 괭이밥이 앓는 나무에도 힘을 주고 이 여름을 앓으며 통과하고 있는 우리 개에게도 기운을 북돋워주었으면. 어쩌면 그러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나의 이런 논리에 근거는 없다. 하지만 때론 그렇게 믿는 마음이 난관을 이기는 작은 발판이 되지 않는가. 어느 해보다 뜨겁고 어려운 여름, 발코니를 비롯한 곳곳에서 여름을 앓고 있는 우리 모두의 건강을 빈다. 김금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