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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내 안의 나에게 도움을 청하자

등록 2021-07-29 04:59수정 2021-07-29 09:35

김태권의 영감이 온다

그림 김태권
그림 김태권

유리잔에 물을 따른다. 물을 바라보며 되뇐다. “이러이러한 문제에 대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물을 반 잔 들이켜고 또 혼잣말. “물을 다 마시면 영감이 떠오를 것이다.” 잔을 비우면 잠재의식이 좋은 아이디어를 보내준다는데, 정말일까?

이런 방법도 있다. 찻잔을 탁자에 둔다. 팔걸이가 있는 폭신한 의자에 앉아 온몸의 힘을 푼다. 찻숟갈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들고 찻잔을 찻숟갈 아래에 놓는다. 눈을 감고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스르르 잠이 든다. 손가락의 힘이 풀리며 찻숟갈이 찻잔에 떨어지면, “땡그랑” 맑은 소리와 함께 잠재의식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솟아난다는데, 과연?

첫번째 ‘물잔법’은 잠재의식을 활용하자던 ‘마인드컨트롤’ 운동이 제안한 발상법이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따르면 두번째 ‘찻잔법’은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가 쓰던 방법이라고 한다. 이 방법들을 믿어도 좋을까? 달리는 천재처럼 보일 수만 있다면 어떤 허풍이라도 떨었을 사람이다. 나는 20여년 동안 두가지 발상법을 때때로 실험해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 안 될 줄 알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마음도 있다. 초능력이건 초자연적 능력이건 알 수 없는 힘이 나 대신 아이디어를 쥐어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쉬는 동안에 말이다. “자고 일어나 저절로 마감되면 좋겠다.” 정신노동자라고도 부르고 원고 자영업자라고도 부르는 나 같은 사람의 오랜 꿈이다. 허황된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련다. 용기를 내 잠재의식이건 무의식이건 내 안의 나에게 도움을 청하자. “잠재의식은 잠을 잘 때도, 의식이 다른 데에 쏠려 있을 때도 활동한다. 일이 끝났을 때 일을 잊어버리고 이튿날 다시 일을 시작할 때까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훨씬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 28년 전,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놀랐다. 허황된 사람도 아니고 허풍을 떨 사람도 아니고, 지나치게 건전해 오히려 인기가 없다는 철학자 러셀의 말이라서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룻밤 푹 자야 한다는 사람은 매우 현명한 셈이다.”

이 말도 러셀과 똑 닮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민하는 문제를 무의식으로 보내서 잠자는 동안 해결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광고업자 제임스 웹 영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위한 조언이다. “음악을 듣고, 영화나 연극을 보고, 시나 추리소설을 읽어라.” 그렇게 하면 “느닷없이 아이디어가 나타날 것”이라고 영은 말한다.

찻잔이나 물잔 없이도, 다음 원칙을 지키면 된다.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런 다음 일부러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약속한 휴식 시간을 마친 직후, 아니면 그 후 어느 순간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방법을 말하고 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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