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한복&전통 아이템
한복 디자이너 2인 인터뷰
SPA와 최초 협업 ‘리슬’의 황이슬
BTS 무대의상 ‘천의무봉’ 조영기
황 “퀄리티 높이고 가격 낮추는 게 목표”
조 “번거롭더라도 옛 양식 살려가야”
한복 디자이너 2인 인터뷰
SPA와 최초 협업 ‘리슬’의 황이슬
BTS 무대의상 ‘천의무봉’ 조영기
황 “퀄리티 높이고 가격 낮추는 게 목표”
조 “번거롭더라도 옛 양식 살려가야”
한복은 지금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중국 네티즌들이 한복을 겨냥해 중국 옷을 베낀 ‘가짜’라고 시비를 거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좋게 보면, 한복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현대화된 한복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진짜 한복이냐 아니냐, 찬반 양쪽이 팽팽하다. 이런 논쟁과 변화의 상황에서, 우리는 실제 한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엇이 한복일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실제 한복을 만드는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각자의 철학을 갖고 오늘의 한복을 내일로 이어가는 ‘리슬’의 황이슬 디자이너와 ‘천의무봉’ 조영기 디자이너에게 한복의 현재와 미래를 물어봤다.
홈쇼핑 방송을 틀어놓으면 ‘무심하게 툭 걸쳐도 멋스럽다’는 표현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나온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두루 걸쳐 입기 좋은 옷이라는 뜻이겠지만, 한복에 적용하기는 낯선 표현이었다.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생활한복을 디자인해 내놓아도 ‘이거 언제 입어요?’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구체적인 상황을 이미지로 보여줄 필요를 느꼈죠.” 황이슬 디자이너의 모던한복 브랜드 ‘리슬’이 올 4월 선보인 고구려 스타일 라운지 웨어(실내복) 고고리가 그렇다. 어떻게 구체적인가 하면,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든 모습, 공원에서 개 산책시키기, 택배를 받아드는 모습까지 재연했다.
2006년 스무살에 학업을 겸하며 한복 드레스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고 2014년 리슬을 론칭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모던한복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황이슬을 이끈 것은 한복의 ‘경험’이다. 2011년 ‘한복 100번 입기 프로젝트’의 경험은 착용법과 세탁 편의, 가격, 소비자의 구매 접근성을 개선한 리슬의 시발점이 되었다. 최근의 ‘한복 입고 프로젝트’는 아이돌 콘서트장도 가고 볼링도 치는 일상을 에스엔에스(SNS)에 공개하며 한복을 입고 할 수 있는 일 1000개를 차근히 채워간다.
한복의 소비자이자 한복 문화 기획자, 제작자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그는 한복 입은 모습을 대하는 시선의 변화도 체감한다. “100번 입기를 할 무렵엔 무속인이냐, 국악인이냐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왜 한복을 입었느냐,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는 뜻이었어요. 2014년 리슬 오픈 때는 제가 빨간 염색 머리에 운동화 차림으로 한복을 입고 있거나, 도포를 입고 선글라스를 썼다고 혀를 끌끌 차시던 분들이 요즘은 ‘저게 멋이래’하고 받아들여요.”
방탄소년단(BTS)의 레전드 무대로 꼽히는 2018년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지민이 입었던 리슬의 사폭슬랙스는 성별 구분 없이 입는 한복 아이템 중 하나다. 최근 한복의 두드러지는 경향인 젠더리스 스타일에 더해 그는 변화의 범위를 좀 더 넓게 짚었다.
“지금 패션은 젠더는 물론이고 에이지(연령대 구분) 구분도 희미해졌어요. 아름다움의 기준, 인종, 국가 경계도 사라지는 추세고 이 초월적인 시대가 코로나 이후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한복 역시 거기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어요. 한복 라운지웨어도 실내 생활이 늘어난 것을 염두에 두고 기획을 한 거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복’이라고 느끼는 요소는 대부분 조선 후기의 복식이고, 이 틀에서 벗어난 깃의 형태나 여미는 방식은 한국 사람들조차 한복 같지 않다, 중국풍이다, 일본의 기모노나 진베이(잠옷)를 따온 것이 아니냐며 의문을 표한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서 우리 것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럴수록 옷으로 보여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지요. 종종 중국 네티즌이 댓글로 시비를 걸면 조용히 신고 버튼을 누르고요.” 그의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그쪽에서 탐을 내는 한복을 우리가 오늘도, 내일도 입으면 된다.
최근 리슬은 한복업계 최초로 SPA브랜드 스파오와 협업을 진행했다. 리슬에서 디자인을 주관하고 마감 퀄리티를 높이는 논의를 거쳤다. “모던 한복의 경험이 전통 한복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려면 품질이 중요해요. 세탁 몇 번에 금방 옷이 망가진다면 다음 단계의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한가지 숙제가 남았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다. 다양한 분야의 협업을 통해 한복 관심층을 확장하는 한편, 자신의 손으로 만만한 가격대의 한복을 만드는 것, 그리고 한복을 패션의 한 장르로 정착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브랜드 하나가 한복 대중화를 실현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옷장을 열어 한복을 패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끔 보여주고 제시하는 브랜드, 그건 할 수 있어요.” 그가 지향하는 내일의 한복이다.
하늘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뜻의 ‘천의무봉’은 완전무결하고 흠이 없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간판 아닐까? 조영기 디자이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잘못하면 얼마든지 욕을 먹을 수 있으니 옷 만드는 곳 이름으로는 영 잘못되었죠.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지하유봉(지하에 이런 바느질도 있다)’이라고 하는데, 의상학과 졸업하고 손 누빔 한복 장인의 문하로 들어가 한복을 배운 터라, 뭐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어요.”
천의무봉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라는 뜻으로 받은 호가 ‘의봉’이었고 조영기는 2003년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면서 내건 간판의 무게를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다.
그가 만든 옷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런저런 설정과 배경을 보태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진다. 마침 에스에프(SF) 영화 속 미래 신인류 분위기가 나는 코디 사진이 눈에 띄어 물었더니 고객 후기 사진이란다. 코스튬(시대나 인물의 역할을 나타내는 의상) 플레이어 오송아, 김희중 씨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배경으로 연출한 모습이었다. 조영기의 한복이 흥미로운 점은 제대로 갖춰 입으면 코스튬의 인상이 강하고, 고름을 풀어 늘어뜨리고 소매 단추 등을 열면 일상복인 코트나 로브처럼 바뀐다는 점이다. 각각의 실루엣이 완성도가 높아서 전혀 다른 두 벌처럼 보일 정도다.
요즘 한복들은 역동적인 무대에서 더 근사해진다. 명절 특집 예능 방송에서 주로 입던 한복이 케이(K)팝 뮤지션들의 퍼포먼스용 의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2018년 멜론뮤직어워드 방탄소년단(BTS)의 무대를 기점으로 한다. 조영기 디자이너는 춤을 추면 몸의 움직임에 선이 따라 흐르는 한복의 특성이 빛난 이 무대가 기절할 만큼 감동적이었다고 떠올렸다.
“한복은 선과 흐름이 있어요. 그런 장점을 의도했던 소창의(두루마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뒤 솔기에 트임이 있다)를 제이홉이 걸치고 맨발로 춤을 추는데, 자락이 어찌나 아름답게 출렁이는지. 옷이 가진 특성이 엄청난 아티스트를 만나서 완전히 자기의 역량을 다한 거죠. 그쪽에서 스타일링도 참 잘했어요. 새로운 한복과 현대 복식을 믹스했는데 마치 자석의 엔(N)극과 에스(S)극이 만나서 딱 붙듯이 어우러졌어요.”
미디어의 국경이 없어지고 한국 대중문화 속 한복 스타일이 시간차 없이 세계의 시선을 끄는 한편, 중국 네티즌들의 원조 주장도 잦아졌다. 조영기 디자이너도 자신의 디자인에 ‘fake’(가짜) 딱지를 붙인 댓글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의복에서 평면구성 형식은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만 쓴 게 아니고 유라시아 전체가 다 있어요. 왜냐하면 그건 최초의 옷을 만드는 원리거든요. 각자 자기 나라에 맞는 디자인을 발전시켜 간 거죠. 그들 눈에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모아다가 카피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제시하는 그 원본조차 자기네들 것이 아니야. 철릭이 중국 것이라고 하는데 몽골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져오니까 답답하죠.”
의복은 인접국과 영향을 주고받고 발전하며, 각 문화에 따라 새로 갈래를 만들어나간다. 이를 무시하고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다 보면 자신들의 논리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함정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현대의 한복이라고 하면 아직 ‘개량 한복’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불편한 옛 방식을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방향만 떠올릴 수 있는데, 옛 복식의 형식을 가져와서 지금 보아도 매력적일 수 있게 다시 디자인한 게 천의무봉의 신한복이지요. 편의만 따지자면 고름도 끈도 필요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입기 다소 번거로워도 저는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져온 형식들인 거죠.”
패션에는 애초의 용도와 의미가 사라졌어도 남아 있는 형태나 장식이 있고 현대의 사람들은 단 한 가지 이유, 그것이 여전히 멋지게 보이기 때문에 선택한다. 서양 복식은 그런 형식들이 잘 정리되어 각각의 스타일 명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우리 전통 복식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작업물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라면, 새로운 한복 역시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경쟁을 거치고, 살아남는 디자인이 스타일이 될 것이라는 게 조영기 디자이너가 전망한 한복의 미래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스파오와 협업한 한복 로브. 리슬 제공
조선 후기 복식이 한복의 전부는 아냐
리슬의 산딸기 한복. 리슬 제공
황이슬 디자이너. 황이슬 제공
천의무봉 조영기 디자이너의 작품. 모델 오송아(왼쪽), 김희중. 사진 윤영완 작가
의복은 인접국과 영향 주고받는 것
조영기 디자이너.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천의나래 철릭. 천의무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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