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전통문화를 다시 보는 흐름 속에서 한복이 뜨거운 인기를 얻자 덩달아 색동과 매듭, 보자기 등도 주목받고 있다. 한복과 어울리는 이른바 전통 잇아이템들이다. 다소 심심해 보이는 한복 차림이 아이템 하나로 확 달라 보일 수도 있다. 일상적인 패션에서도 옷이 평범하면 가방 같은 아이템에 힘을 주는 건 상식. 모던 한복부터 서양식 일상복까지 두루 어울리며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 패션 소품을 골라봤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해 작년 여름 공개한 ‘한국의 흥을 느껴라!’(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는 한국의 주요 도시를 홍보하는 6개 영상으로 조회 수가 2억9천만 뷰를 넘었다. 이 영상에서 주목을 받은 건 바로 색동. 뮤지션 이날치의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색동 의상은 세계적 화제가 됐다. 점프 수트에 모자까지 올 색동으로 맞춰 입기도 하고, 검정 수트 차림에 색동 양말로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강릉 편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지역 무속인까지 합세해 굿판을 벌이니 몸이 들썩거리고 눈에 색동이 아른거린다.
화려해서 촌스럽고 눈에 띄어서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있던 색동원단이지만, 유쾌한 파격으로 즐기는 이들이 있어 반응은 달라졌다. 평소 독특한 패션을 즐기는 박나래는 〈문화방송〉(MBC) ‘나혼자 산다’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색동 바지를 자연스럽게 소화했고, 지난달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는 색동 드레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모두 ‘다시곰’ 브랜드를 만든 이승주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이 디자이너는 “색동 하면 저고리부터 떠올리는데 이를 비틀어서 색동 바지로 제작하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져스트 프로젝트의 보자기 ‘보더리스 스퀘어’. 져스트 프로젝트 제공
소재와 전통 양쪽에서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승주 디자이너는 전국에 하나 남은 선염 직조 색동원단 업체 ‘디안’을 알리고 색동의 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색동 스니커즈도 선보였다. 분명 내가 30년 전 입었던 색동저고리와 똑같은 원단인데 촌스럽다는 생각은 쏙 들어갔다. 경쾌한 스트라이프가 스니커즈와 썩 잘 어울린다. 스니커즈는 슈트부터 청바지, 시폰 스커트를 가리지 않고 활력을 더하는 패션 아이템이라 색동을 일상복에 매치하기도 쉬워졌다. 색동원단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 선택한 발목 높이 하이탑에 이어 올가을에는 로우탑 스타일을 계획 중이다. 국내 생산 원단에 국내 신발 장인, 국내 디자이너가 협업해 만든다는 원칙을 지키는 진짜 메이드 인 코리아. 구찌 색동 스니커즈보다 탐난다.
유산슬, 유두래곤, 지미유 등 ‘부캐’만 열 개가 넘는 유재석의 새로운(?) 얼굴. ‘놀면 뭐하니’에서 형 지미유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프로젝트 그룹을 만드는 프로듀서 유야호는 한국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힙스터다. 한옥에서 생활하고 매회 다양한 모던 한복 맵시를 뽐내는 그는 바가지 머리 한쪽을 땋아내려 고운 전통매듭을 달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 선생의 작품이다. 전통매듭은 생사를 염색해 색색 명주실을 마련하고 다회치기로 끈목(다회)을 짜고 매듭을 만든다. 앞뒤 모양이 똑같고 좌우대칭 형태를 가지는 것이 우리 매듭의 특징이라고 한다. 매듭 공예를 배우는 일반인들은 주로 만들어진 줄을 이용하지만, 매듭장은 손수 끈목을 짜는 일부터 시작한다.
도하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통매듭. 도하 제공
유재석은 지난달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우리가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는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문화와 전통이 있다”며 “지금이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대상 수상소감을 전했다. 유야호가 바로 그 실천자다. 매듭이 유야호가 들고 다니는 부채에 달려있었다면, 늘 보아온 장식요소로 무심하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부채 끝에 당연하게 달려있던 매듭에 관심을 두고 이를 지금의 자신에게 멋지게 적용할 방법을 궁리하다 매듭을 떼어 머리에 달았을 유야호는 규범을 넘어 쓰임을 확장했다.
전통을 모티브로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하는 패션 브랜드 ‘도하’는 현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한 힙하고 시크한 매듭을 만든다. 귀도래, 삼정자, 합장, 매미 매듭 등, 전통매듭 맺기 방식을 이용하고 끈목 대신 로프를 쓴다. 스포티한 패션에 어울리는 매듭 키링에는 카라비너(암벽 등반용 로프 연결 금속 고리)를 더하기도 하고, 여성 한복 장신구로 주로 쓰이던 매듭 노리개를 블랙 로프로 제작해 성별 중립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했다. 알록달록한 색실 노리개를 당연하게 여겼던 터라, 검정 노리개 ‘뉴트럴 블랙’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도하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전통매듭. 도하 제공
지난달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영화 〈미나리〉 제작자 크리스티나 오가 입은 한복 수트 사진을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시상식에 참석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간단한 소지품을 넣는 작은 클러치백(끈이 없어 손에 쥘 수 있도록 디자인된 백)을 드는데, 크리스티나 오는 청록색 비단에 꽃이 프린트된 보자기로 만든 보따리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일의 완성은 가방이로구나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멋진 선택이었다.
요즘 생활한복은 큼지막한 백팩이나 에코백,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매치해도 괜찮다. 복조리 형태의 버킷백, 괴나리봇짐을 닮은 슬링백도 자연스럽다. 크리스티나 오처럼 보자기 보따리는 어떨까? 레드카펫이 아닌 일상한복 스타일에는 자칫 과하게 콘셉트를 잡은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명절 선물세트 전하러 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좀 더 가볍고 편하게 사용할 보자기 보따리는 없을까. 우리 전통 보자기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색색의 자투리 천을 모아서 배색하고 바느질로 이어붙인 조각보다.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되는 자투리를 모아 만든 오늘의 보자기는 어떤 모습일까?
‘저스트 프로젝트’의 이영연 디자이너는 버려지는 비닐 포장지, 빨대를 엮어 파우치를 만들고 헌 티셔츠를 러그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보자기 역시 바람막이 등의 의류를 만들고 버려지는 나일론 원단, 벨크로, 폐비닐로 만들어진다. 이름은 ‘보더리스 스퀘어’ 경계 없는 사각형이다. 보자기의 쓰임이 그렇듯, 무엇이든 둘러 포장하고 묶어서 보따리로 사용할 수 있다. 사각형의 원단을 가로지르는 벨크로 테이프 덕분에 일반 보자기보다 형태를 잡고 고정하기 쉽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보더리스를 여러 번 발음해보자. 얼핏 보따리스 같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