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오른쪽), 박경애씨가 서울 송파구 축구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여자가 무슨.
“축구를 배우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여자가 무슨 축구냐’고 타박했죠.” 20년째 아마추어 여자축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희(61)씨가 웃으며 말했다. 김정희씨는 구청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1998년 우연히 축구교실에 가입하게 됐다. 축구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축구단의 맏언니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씨는 눈비에도 일주일에 세번 있는 팀 훈련에 빠진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단체훈련을 할 수 없는 지금도 5㎞
달리기와 근력운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정희씨의 ‘축구 단짝’ 박경애(57)씨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과 필드에서 공을 차다 보면 스트레스를 다 잊는다”고 말한다.
양민영씨가 인천 청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여자가 무슨.
“제가 힘이 센 편이에요. 주짓수 도장에서 함께 훈련한 남자 파트너한테 힘이 좋다는 말도 들었어요. 호신술 훈련을 할 때는 ‘치한’ 역할에 몰입했다가 파트너의 손목을 너무 세게 당기는 바람에 멍을 남기기도 했죠.” 책 <운동하는 여자>의 저자인 양민영(38)씨는 타고난 힘 덕분에 16㎏ 케틀벨을 20~30번씩 스윙하고, 단 한번이었지만 200파운드가 넘는 바벨을 데드리프트 자세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민영씨
주변 남자들에게 힘센 여자는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약하다는 통념 때문에 특정 직업군이나 역할에서 배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막상 힘센 여성이 나타나면 인정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왜 힘센 여자는, 힘센 사람과 다르게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걸까요?”
최현진씨가 서울 마포 체육관에서 케틀벨을 들고 있다.
여자가 무슨.
“저희 체육관에는 거울이 없어요. 일반적인 헬스장에 가면 사방이 거울이라 몸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온전히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거울을 없앴다는 최현진(35)씨는 근력운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파워존 에이치제이(HJ)’의 관장이다. 현진씨는 “웨이트트레이닝은 남성 운동, 요가나 필라테스는 여성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녀 운동이 따로 있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현진씨는 근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력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죠.”
함승현 학생이 서울 마포 복싱장에서 샌드백을 치고 있다.
여자가 무슨.
“여자가 복싱하는 게 이상해요?” ‘권투를 한다고 말할 때 친구들의 반응이 어떤가’ 묻자 함승현(12) 학생은 오히려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이 되물었다. ‘운동 하나는 배워둬야 한다’는 엄마의 권유로 권투를 시작한 승현 학생에게 복싱은 가장 즐거운 일과 중 하나다. 쉽지 않은 훈련 강도에 게으름을 피울 만도 하지만 훈련을 빼먹은 적은 없다. “줄넘기, 복싱·근력 훈련으로 쉴 틈 없이 움직이다 보면 1시간이 금세 지나가요. 응용 동작이 많아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남녀유별의 오랜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생활해온 여성들이 스포츠를 한다는 것은 그 시대에 산 여성에게는 큰 용기와 대단한 결심 없이는 행동으로 옮기기에 어려운 사회 환경’(한양순, <여성과 스포츠> 1989년 12월)에서 이제는 여성이 축구를, 격투기를, 근력운동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으로 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2018년 남성을 앞질렀다.
글·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1년 2월 19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