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구시청 앞에서 대구여성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형법 상 ''낙태죄'' 완전삭제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대응해 12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사회에선 “안전한 의료서비스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체계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권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형법에서 낙태죄 조항을 삭제하고, 모자보건법에선 임신 주수나 사유의 제한 없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원에 바탕을 둔 임신부의 판단과 결정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여성의 신체적 조건이나 상황이 다르고 정확한 임신 주수를 인지하거나 특정하기 어려워, 임신 14주 이하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임신중지를 낙태죄로 처벌하는 정부안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처벌조항 탓에, 임신중지 ‘허용 기한’을 넘기거나 ‘허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여성이 불법·음성적인 시술을 받아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권 의원 개정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기본권 차원에서 보장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생산건강권이라고도 하는 재생산권은 유엔 국제인구개발회의에서 1994년 제시한 개념으로, 임신·출산·양육·피임·임신중지 등 재생산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바탕을 두고 권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선 “임신·분만·수유 및 생식과 관련해 건강관리에 노력해야 한다”는 ‘모성’(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의 의무조항을 삭제했다. 그 대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국민에게 피임, 월경, 임신·출산, 인공임신중단 등에 대해 안전하고 정확한 보건의료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할 책무”를 명시했다. 이를 위해 중앙·지역 재생산건강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성교육부터 심리상담 지원까지 재생산 건강을 위한 사업을 실시할 수 있는 근거도 함께 마련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번 기회에 낙태죄 폐지를 포함해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임신중지 허용 또는 규제라는 이분법적인 틀이 아니라 재생산 건강을 지원하는 방향의 포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공임신중지에 따른 유산휴가를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청소년이 임신중지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교에서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도 “임신중지를 국민건강보험에 포함하는 등 피임·임신·임신중단·출산에 대한 공적인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관련 (의료·상담 등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에게 연락하고 어디를 찾아갈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보건소와 각급 의료기관, 학교의 역할과 여성 건강 주치의 제도 도입, 인력·시설이 크게 부족한 지역 정책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정의당은 14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은주 의원이 준비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이르면 다음주 중 법안을 낼 계획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주에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두 의원 모두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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