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7일 입법예고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문화됐던 낙태죄 처벌이 실질적으로 부활하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사자인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 여성계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6일 알려진 정부 입법예고안의 핵심 쟁점은 △임신 주수에 따른 허용 여부 차별화 △상담·숙려기간 제도 도입 △예외적 허용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 추가다. 이 가운데 ‘14주 이내 허용, 14~24주 예외적 허용, 이후 금지’로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달리하는 것은, 임신기간을 명확히 확정할 수 없는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임신기간은 생리주기나 초음파를 통해 대략적으로 ‘추산’하는데, 생리주기의 불규칙성이나 산모와 태아의 영양상태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겠다는 ‘14주 이내’가 실제 임신기간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마지막 생리일을 정확히 아는 여성은 평균적으로 50%뿐이다. 특히 미성년자나 지적 장애인 등 열악한 상황일수록 마지막 생리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임신을 늦게 인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주수 산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루이틀 차이가 형사처벌의 기준이 되는 것은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짚었다. 앞서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도 같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모자보건법을 함께 개정해, 의무적으로 국가가 지정한 기관에서 상담을 한 뒤 24시간 동안 ‘숙려’하도록 한 것도 시대에 역행할뿐더러, 여성의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12년 “숙려기간은 적절한 돌봄·관리를 지연시켜 안전하고 합법적인 서비스에 접근 못 하게 함으로써 의사결정자로서의 여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숙려기간 폐지 등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숙려기간을 의무화할 것이 아니라, 상담기관이 종교나 개인의 기준에 따라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원칙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14~24주 예외적 임신중지 허용 사유에 추가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할 수 없는 등 입증이 어려워 오히려 절차적 복잡성과 시간 부담만 가중시킨다”(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는 비판이 나온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하고 입증할 것이냐는 얘기다. 여기엔 ‘아이를 낳아 기를 자격’을 국가가 결정한다는 문제도 뒤따른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입법예고안은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고 여성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1953년 형법을 처음 제정할 때와 다르지 않다”며 “처벌 조항을 폐지해도 임신중지율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러 나라에서 확인됐는데도 형사처벌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임신중지 시행 건수에 견줘 기소 건수가 현저히 적어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됐는데도, 정부가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처벌 근거를 오히려 더 구체화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입법예고 이후 40일 이상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는 ‘임신중지 비범죄화’라는 방향에 맞춰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정부안에는 헌법재판소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부안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이에 대응하는 개정안 촉구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