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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법 보장돼 있는데…‘엄마 성’ 물려주기 왜 이리 어렵죠?

등록 2020-06-18 22:35수정 2020-06-19 02:32

[박다해의 젠더101]

출생 아닌 혼인신고 때로 한정
엄마 성 따를 때만 협의서 요구
추후 바꾸고 싶어도 절차 복잡

결혼 1년째인 직장인 선다혜씨는 혼인신고를 못 했다.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란 신고서 항목을 두고 남편과 합의를 못 했기 때문이다. 딸만 셋인 집에서 자라 “아이에게 내 성을 물려주고 싶었다”는 선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2005년 호주제 폐지 뒤 내 성을 물려주는 게 가능하다 생각했고 연애 초부터 이런 바람을 말해왔는데 남편은 막상 결혼 뒤 ‘보편적이지 않아서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민법 781조 1항을 전면 개정해 “자녀의 성을 부모의 협의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덕분에 ‘엄마 성’을 아이에게 물려주는 움직임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현재는 아빠 성을 따르는 게 원칙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협의한 경우’ 엄마 성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준 이수연, 박은애, 김지현(가명)씨는 “사회적 인식뿐 아니라 관련 제도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딸에게 ‘이제나’란 이름을 지어준 이수연씨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고 성평등을 위한 것이라고 가족에게 설명했지만, 온전한 지지를 얻진 못했다”며 “제도가 누군가를 배제하는 식으로 작동한다면 이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생 때가 아닌, 혼인신고 때 정하는 것도 문제다. 박은애씨는 “출생 때가 아닌 혼인신고 때 이 문제를 의논할 연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구청에서도 엄마 성을 따르겠다고 하니 직원이 ‘잘못 썼다’며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지현씨도 “엄마 성을 따르려면 협의서를 따로 써야 하는데 구청 직원이 협의서 양식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번복도 쉽지 않다. 법원에 가서 ‘자녀의 성·본 변경’ 신고를 하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이혼 등 특정 사유가 없으면 허가를 받기 어렵다.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혼인신고 때 이를 놓쳤다는 차수연씨는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걸 안내해주지도 않는다”며 “혼인신고서에 ‘되돌릴 수 없다’고 명시를 하든가 혼인신고 정정 신청제라도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다혜씨도 “어떤 성을 따르든 선택의 문제인데, 엄마 성을 따르겠다고 할 때만 협의서를 받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아빠 성을 따를 때도 협의서를 받게 해서 부부가 의논할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자녀의 성 결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연구’를 보면, “부성주의 원칙이 불합리하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67.6%로 2013년(61.9%) 같은 조사에 견줘 5.7%포인트 늘었다. 이런 인식은 점차 늘지만, 법무부는 아직 공식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제개선위의 권고에 대해 검토 과정에 있다. 구체적으로 확정되거나 진행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제도는 여성 조상이 후손에게 아무런 흔적을 남길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여성이 혼자 가구를 구성할 때 받는 차별과 낙인을 재생산하는 등 여성의 가족구성권,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권까지 제한받게 한다”고 지적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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