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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씨, 법원에 재심 청구 “여성들 당당하게 나와야”

등록 2020-05-06 17:21수정 2020-05-07 02:42

18살 때 성폭력 가해자에 저항하다 ‘중상해죄’ 유죄
사건 발생 꼭 56년된 6일 부산지법에 재심 청구
검은색 옷 맞춰 입은 여성들 ‘56년 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74)씨가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지법에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를 하러 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74)씨가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지법에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를 하러 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최말자(74)씨가 쭈뼛쭈뼛 마이크를 들었다. 6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지법 앞에 선 그는 56년 전에 벌어진 성폭력 피해와 부당한 판결을 세상 사람들 앞에 고발하려는 참이었다. 최씨의 한국방송통신대 동기인 윤아무개씨가 곁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방통대에서 성폭력 피해 등에 대해 쓴 최씨의 논문을 읽고 “언니, 여태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나. 우리 이 한을 풀자”고 격려해준 ‘만학’ 학우다. 검은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100여명의 여성들도 ‘56년 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최씨의 곁을 지켰다. 1964년 5월6일 최씨는 성폭행을 하려는 가해자 노아무개(당시 21살)씨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가 되레 가해자로 몰렸다.(▶관련 기사 : [단독] 성폭력에 저항하다 혀 깨물었다고 유죄…56년 만의 미투) 1965년 1월 부산지법 형사부(재판장 이근성)는 최씨에게 중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씨의 성폭력은 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최씨보다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이날 한국여성의전화 등 384개 여성·시민단체의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서’를 접수한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너무 억울해서 이 자리에 56년 만에 섰습니다. 억울함을 풀고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기를 원합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여러 미투 사건이 나오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은 현실에 너무 분노합니다. 사법기관과 사법 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후세까지 연결된다는 걸 너무 절박하게 생각해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저 같은 여성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억울한 상처를 혼자만 끌어안고 있지 말고 당당하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한을 풀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 신념 하나를 가지고 여기까지 또 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여성이 평등한 시대인데, 여성이 흠이 아니잖습니까? 잘못은 남자들한테 있다고 저는 봅니다.”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74·마이크 든 이)씨가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지법에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74·마이크 든 이)씨가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지법에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대 발언에 나선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최초의 성폭력 재심 판결을 통해 정당방위로 인정받길 바란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의 방어권이 제대로 인정되는 판결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최씨의 법률지원을 맡은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우리는 이 사건을 ‘혀 절단 사건’이라고 부르지 않고,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행 사건’이라고 지칭하겠다”며 “법원이 나서서 과거 잘못을 바로잡아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2년 전 최씨의 재심 청구 결정에 중요한 계기가 된 미투 폭로 당사자의 연대 발언도 나왔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씨는 활동가가 대신 낭독한 연대 발언에서 “선생님의 용기와 강인함에 존경을 표현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중을 얻길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표자인 선생님 곁에 함께 서겠다”고 밝혔다. 누리꾼들도 최씨에게 힘을 보탰다.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사건의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와 이날 오후 3시 6천여명이 동의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384개 여성·시민단체의 주최로 6일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 기자회견.
한국여성의전화 등 384개 여성·시민단체의 주최로 6일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 기자회견.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로서 법의 보호도 못 받고, 사회의 보호도 못 받는 이 사회를 변화를 시키고 사법기관도 변화를 시켜서 우리 후손들한테는 이런 걱정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얘기하고 싶습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최씨는 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했다.

글·사진 부산/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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