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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대통령만 ‘페미니스트’ 주창…성평등 정책 의지는 안 보여

등록 2019-05-09 04:59수정 2019-05-09 08:33

[문재인 정부 2년 평가와 과제]
‘미투’ 이후 일부 성과 있지만 한계도 뚜렷
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 서면 회의로만 대체
“여가부만 ‘속죄양’ 만드는 모양새”란 비판도
고용·노동분야 성차별 개선 시급
한겨레DB
한겨레DB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대통령만 ‘페미니스트’가 됐다”는 평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정부의 성평등 정책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디지털성범죄를 규탄하자 이에 대한 응답이 겨우 이뤄졌을 뿐이다. 성차별적인 구조 자체를 개선해나가는 의지나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채용 성차별이나 성별 임금 격차 등 “고용 분야 성차별 개선이 중요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꼽았다.

고비마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있었다. 지난해 7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성평등 문제만은 이 정부에서 확실히 달라졌다 체감할 수 있게 각 부처가 여성가족부와 함께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성 분야 시민사회·학계 전문가들은 성평등 사회를 위한 대통령 개인의 노력은 대부분 호평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전 부처로 확산했냐는 물음엔 부정적인 응답을 내놨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사회학)는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관료들, 주요 정책을 입안하는 쪽은 성평등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20대 여성은 페미니즘 등으로 무장한 집단이기주의 감성”이라며 내놨던 보고서가 단적인 예다.

주요 성과로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과 고용노동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부처에 성평등 전담부서(양성평등정책담당관)를 신설하겠다고 최근 밝힌 점 등이 거론됐다. ‘미투’ 국면에서 여가부가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점검단을 이끌며 직접 ‘공공부문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를 운영해 온 점도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공동대표는 높이 평가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투’ 이후 일정 정도 (성희롱, 성폭력 관련) 추진체계를 갖춰가는 느낌”이라면서도 “정부가 애초부터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여성들의 용기와 연대에 정부가 응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전 정부와 견줘 성과로 꼽히긴 하지만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신설은 사실 애초 공약이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신설’이 쪼그라든 모양새다. 우려도 나온다. 여가부가 성평등 전담부서 협의체를 정례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는데, 그에 걸맞은 권한이나 예산 등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성평등은 전 부처가 해야할 일인데 행정부든 입법부든 여가부를 앞세워 ‘속죄양’으로만 만들고 (다른 부처는) 해야 할 일을 안 한다.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여가부가 발표한 성평등 방송·교육 관련 자료가 논란이 된 건 오히려 각 부처가 해야 할 업무를 방기했다는 방증이라고도 했다.

여성계는 “국무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고도 입을 모았다. 전 부처를 총괄, 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제역할을 못하고 있단 얘기다. 실제로 양성평등위원회는 지난해 단 한 번도 실제 위원들이 출석하는 회의를 열지 않았다. 단 2번 서면회의로 대체됐을 뿐이다.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설립된 이 위원회는 전 부처와 함께 성평등 관련 정책을 심의, 점검, 조정할 수 있는 기구지만 유명무실하다.

남은 3년 간 중점 과제로 가장 많이 꼽힌 건 고용노동 분야 성차별 해소다. 지난해 은행 등 금융권에서 채용 성차별 사례가 공개적으로 드러났고, 남녀 임금 격차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이전 정부의 역점 사업이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여성 노동자의 4명 중 1명 꼴로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20대와 60대에 몰려 있었는데 점차 중간 연령대로 확산하는 모양새”라며 “고용보험, 주휴수당 등을 못 받는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성평등 노동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이라고 짚었다.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등 소수자 혐오 문제는 방관하면서 지지율이 출렁일 때마다 ‘젠더갈등’이란 표피에 매달려 구조적 원인을 외면하는 점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김영순 여연 공동대표는 “젠더문제가 여성 대중의 이슈로 이제야 조명받기 시작했을 뿐이다. 정부, 정치인, 언론 등 기득권은 젠더를 둘러싼 권력 구조가 어떻게 차별을 만들어내는지 그 연결지점을 보지 않고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갈등의 문제로 왜곡, 축소하고 있다”며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재조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정치권이 말하는 ‘젠더갈등’이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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