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를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개최지의 8월 최고기온이 36℃를 웃도는 점을 감안하여 조경 및 시설물 설치를 통해 그늘이 있는 휴식장소를 확보할 것이다. (…) 간척지에 가장 잘 자라나는 나무를 잼버리장 곳곳에 심어 2023년에는 풍성한 숲 공간이 조성될 것이다.”
2018년 8월, 전라북도가 발간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활동 결과보고서’가 그린 새만금 잼버리의 모습은 장밋빛이었다. 보고서에 첨부된 상상도에는 바다를 앞에 둔 초록색 대지 곳곳에 야영 텐트가 놓여 있고, 넝쿨식물이 우거진 그늘 아래 청소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장밋빛 청사진의 현실은 ‘잿빛’이다. 잼버리 참가자들은 자연 그늘이 거의 없어 땡볕에 노출됐고, 녹지는커녕 침수된 땅 위에 텐트를 쳐야 했다. 5일 행사장 내 잼버리 병원을 찾은 환자는 모두 987명으로, ‘온열손상’ 83명, ‘일광화상’ 49명 등이었다. 부실한 폭염 대책, 침수된 야영장, 비위생적인 화장실, 곰팡이 구운달걀 등 어느 것 하나 정부가 개입한 행사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잼버리 개최 일주일 전인 7월25일 열린 브리핑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밝혔지만, 최다 참가국인 영국·미국 등의 단원이 ‘안전 미비’를 이유로 중도 이탈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했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델타구역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컨트롤타워 대체 누구
잼버리 파행의 주된 원인으로는 ‘컨트롤타워 부재’가 지목된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상 새만금 잼버리의 주무부처는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여가부다. 이 법에 따르면, 조직위원회는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자금을 차입하거나 물자를 도입할 수 있으며, 공무원 파견, 예산 요청 등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조직위원회 구성에서 비롯된다. 잼버리 조직위원장은 모두 5명이다. 애초 김현숙 여가부 장관, 김윤덕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전주갑) 2인 공동조직위원장 체제였으나,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공동조직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책임이 분산됐다. 실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장은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맡고 있다.
한 조직위 관계자는 “안전은 행안부, 홍보는 문체부 등으로 나뉘어 협업하는 구조”라며 “다섯명이 모두 공동(조직)위원장이라서 ‘특정 위원장이 책임자다’ 이런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총괄 조직위원장이 없으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서로 떠넘길 수 있는 구조가 된 셈이다.
다만, 여가부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조직위가 출범한 2020년부터 준비에 참여해왔고, 여가부 장관이 예산 집행 승인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을 지목하기도 한다. 임기 초반부터 여가부 폐지에 역량을 쏟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여가부 내부에서는 이번 일로 ‘여가부 폐지론’이 다시 흘러나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 사전 경고 무시한 정부
폭염과 폭우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 등에서도 지적됐으나, 정부는 줄곧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앞서 6월 초 조직위가 정부에 호우·폭염 대책으로 93억원의 추가 예산을 요청했을 때도 지원은 20억원에 그쳤다. 이런 소극적 조처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됐다. 온열질환자가 속출하자 행안부는 지난 3일 잼버리 대회가 열리는 전북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30억원을 긴급 지원하고 그 하루 뒤엔 임시 국무회의까지 열어 냉방버스 등 폭염 대응과 예방에 필요한 물품 확보에 예비비 69억원을 쓰기로 결정했다. 여가부도 자체 예산 9억원을 들여 손선풍기와 모자 등을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새만금 간척지가 야영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은 초기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대회장 일대는 대규모 배수시설 공사가 불가능한 ‘농업용지’다. 새만금기본계획을 보면, 잼버리 대회장 부지는 기존에 관광 레저 용지로 설정돼 있었지만, 일시적으로 농업용지로 전환해 조성됐다. 대회가 끝나면 원형지로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공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실제 잼버리 개최 3개월 전인 지난 5월에도 비가 내려 대회장이 침수되기도 했다.
준비 부족과 안일한 대처로 결국 파행을 빚게 된 이번 대회를 두고 6일 전북 지역 한 환경단체 상근자는 이렇게 말했다.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는데, 상처는 아이들이 받게 돼 너무 미안하다.”
채윤태 이주빈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