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가 지난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려 윤석열 대통령(앞줄 오른쪽 둘째)과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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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책을 엠제트(MZ) 세대, 청년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3월28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주 최대 69시간’ 노동 개편안에 반발한 청년 세대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청년’은 누구일까. 취임 1년도 안 돼 국가정책에서 ‘성평등’ 가치를 하나씩 지우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여성’은 ‘청년’에 포함되는 걸까.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응답자 중 65.4%가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같은 대답을 한 남성 응답자 비율도 41.4%다. 특히 모든 성별·연령을 통틀어 20~30대 여성들이 불평등을 가장 크게 인식했다. 응답자들은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성불평등 문제로 ‘여성 경력단절’(28.4%), ‘고용 성차별’(27.7%), ‘여성에 대한 폭력’(14.4%), ‘남성의 낮은 돌봄 참여’(12.5%)를 꼽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 기조에 맞춰 성평등 실현에 역행하고 있다. 청년들의 성평등 문화 확산 활동을 지원하는 ‘버터나이프 크루’ 사업을 중단했고, 여성폭력 방지와 국가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또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 교육과정에서 ‘성평등’, ‘재생산권’, ‘섹슈얼리티’ 용어를 일괄 삭제했다. 여성 대상 폭력 대응에도 소극적이다.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하는 ‘비동의 강간죄’ 신설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28일 윤석열 정부가 처음 내놓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와 추진 방안’은 ‘성평등’ 지우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출생 대책엔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차별 인식 개선 노력도 담기지 않았다.
성평등 실현 의지가 없는 정부,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가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정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온갖 대책을 쏟아낸다고 해도 여성의 마음을 바꾸긴 어렵다.
윤 대통령이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부디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20~3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남긴다.
“바쁠 때는 주 80시간씩, 휴일 없이 거의 한달 내내 일할 때도 있어요. 수많은 여성 선후배와 동료들은 출산과 동시에 시간 빈곤, 직장 내 성차별을 경험해요. 아이 양육을 돕는 조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을’이 되고, 아이 교육에도 쩔쩔매요. 반면 남성들은 그렇지 않죠. 이게 현실이에요. 저는 그런 희생을 책임질 자신이 없어요.”(직장인 39살 김아무개씨)
“1990년대생의 인구 비율이 높으니 출생률 반등을 기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도대체 청년 여성을 뭐로 보는 건가요? 그저 아이 낳는 도구인가요, 우리가? 청년들은 기득권의 정치적 도구가 아닙니다. 그리고 청년 안에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국가가 자꾸 지우는 것 같아서 화가 나요.”(버터나이프 크루 활동을 했던 23살 조혜원씨)
오세진 젠더팀 기자
5s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