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 조장하는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동성 간 성행위를 징계 사유로 명시한 규정을 지난해 11월 입법예고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침해 논란을 부른 국방부가 사적 공간에서 합의 아래 이뤄진 성행위에 대해선 징계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단체들은 국방부가 성소수자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징계 근거가 되는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을 궁극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방부는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상의) ‘추행’ 개념을 ‘군형법 제92조의6에 따른 행위’로 정의하고, ‘다만, 사적 공간에서의 합의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서면으로 밝혔다. 군형법 92조의6에는 “(군인·군무원·사관생도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징계 사유 중 하나인 ‘추행’을 군형법에 따라 ‘군인·군무원에 대한 동성 간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로 정의한 내용을 담은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성 간 성행위는 추행으로 보지 않고, 동성 간 성행위만 추행이라고 특정한 것이다.
이런 개정안을 두고, 대법원 판례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근무시간 외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성관계를 한 남성 장교와 남성 부사관이 군형법상 추행죄인 제92조의6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상고심에서, 사적 공간에서 합의하에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경우까지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대법관 13명 중 8명)이었다.
국방부로부터 지난해 8월 개정안 검토 요청을 받은 국가인권위원회도 대법원 판례와 같은 취지의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추행에 해당하는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진 경우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동성 간 성관계를 징계하는 내용의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비판이 일자 ‘사적 공간에서 합의된 성행위를 벌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궁극적으로 군형법상 추행죄 조항이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조항은 상호 합의한 동성 군인 간 성적 행위까지 처벌한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돼 왔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해 2017년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와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가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의 이종걸 활동가는 “최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된 유엔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책검토에서도 독일, 멕시코, 미국 등 7개국이 폐지를 권고했다”며 “지금은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권인숙 의원도 “국방부 입법예고안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무시한 것을 넘어, 군이 동성애에 갖고 있는 편견과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군이 진정으로 장병들을 존중하는 병영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군형법상 추행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