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의 오리지널 프로그램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웨이브 유튜브 갈무리
20대 여성 양성애자 ㄱ씨는 추석 연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엘지비티(LGBT)’라는 단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ㄱ씨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이런 단어가 편집되지 않고 나왔다는 게 신기했다”고 했다.
20일 공개된 웨이브의 오리지널 연애 프로그램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에서는 여성 출연자 ‘자스민’이 남성 출연자 ‘타잔’에게 다른 여성 출연자 ‘백장미’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자스민의 고백을 들은 타잔은 자스민에게 “뭔 말이고? 장미는 여자잖아. 장난치지 말고. 장미한테 호감을 가졌다고?”라고 묻는다. 자스민은 “동성을 골라도 상관없는 거잖아”라고 대꾸한다. 이에 타잔은 말한다. “니… 엘지비티가?” 엘지비티(LGBT)는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의 영문 첫자를 딴 단어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용적인 단어다.
해당 장면을 본 성소수자들은 반가움을 표했다. ㄱ씨는 “여성이 여성에 대한 호감을 나타내는 것을 두고 단순하게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상대방의 여러 가능성(양성애자 등)을 배려해 말을 고른 것 같아서 좋았다”며 “덜 공격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고 했다. 30대 여성 범성애자 ㄴ씨는 “그간 일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담아 사용하던 ‘동성애자’ 등이 아니라,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도) 엘지비티라는 용어를 알고 사용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엘지비티가 가시화가 된 것 같아 반가웠다”고 말했다. 20대 레즈비언 ㄷ씨 “(해당 발언을 한 ‘타잔’은) 한국의 20대 이성애자 남성이다. 소수자에게 공감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포용적인 소수자 용어인 엘지비티를 택한 점이 의외였다“며 “특히 가부장적이고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말해서 더욱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이 공개된 직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엘지비티가 오르기도 했다. 아울러 엘지비티(LGBT)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엘지비티큐아이에이+(LGBTQIA+)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엘지비티큐아이에이+는 엘지비티 뿐 아니라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등을 확립하지 않은 ‘퀘스처너리’, 간성인 ‘인터섹스’, 무성애자인 ‘에이섹슈얼’ 등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이러한 관심이 성소수자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혐오 반대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대 게이 ㄹ씨는 “예전 같았으면 삭제됐을 장면들이 최근 방송에 많이 나오는 현상을 보면서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현실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지하철역에 붙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가 훼손당한 사건도 있었다. 단순한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넘어서 오프라인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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