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왼쪽)과 고은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최영미 시인에 대한 성폭력 사실에 해명이나 사과 없이 5년 만에 시집을 출간한 고은 시인을 두고 ‘문단 권력자의 성찰 없는 복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12일 ‘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죄는 잊힐 수 없다’는 성명을 내 “고은의 복귀는 수많은 미투가 있었음에도 그가 잠시 ‘떠난’ 것일 뿐, 문단계 권력의 최고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며 “최영미 시인이 고은의 성폭력 사실을 밝히고, 최영미 시인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1·2심에서 고은이 패했음에도 고은은 여전히 당당하다”고 비판했다.
고은 시인의 시집을 출간한 ‘실천문학사’에 대해서도 “무감각함에 통탄한다”고 했다. 단체는 “실천문학사는 문학 업계를 ‘사과 한마디 없이도 가해자 자신이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만약 그가 복귀 의사를 밝혔다면, 그에게 명예와 권력을 줬던 모든 주체들은 피해자에게 사과 없는 가해자의 복귀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이번 고은 시인의 복귀를 두고 “(문단)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라며 “고은은 1980년 <실천문학>의 설립멤버이자 편집책임으로 있었다. 그리고 실천문학사에서 이번 신간을 냈다. 누가 권력을 가졌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고은의 ‘평생의 전기와 지혜’가 담겨있다며 홍보되는 책에는 성폭력 가해자라는 한마디 없이 ‘전 지구적 시인’으로 이름 붙여 유명 서점에 진열되고 있다”며 이를 ‘그들만의 카르텔’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고은 시인의 사과를 촉구했다. 단체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침묵하는 고은은 이제라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고은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며 “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죄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최영미 시인은 13일 <헤럴드경제>에 보낸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는 기고문에서 “원고 고은의 대법원 상고 포기로 나의 승소가 확정되었으나, 2019년 겨울에 재판이 끝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실을 증명해야 했다”며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실천문학의 윤한룡 대표는 앞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시집과 대담집을) 회수한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라며 “계획도 없다. 그럴 책이면 처음부터 출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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