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뒤집고 현행 유지 방침을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 간 깊은 정서적 교감과 긴밀한 유대감을 외면하고 사회 지원에서 배제하면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여성가족부가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뒤집고
‘현행 유지’ 방침을 밝힌 가운데,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현실과 다른 가족규정,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생계부양자 남성과 돌봄자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부, 그리고 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이성애 핵가족을 사회 제도 운영의 기본 단위’로 보는 ‘정상가족주의’가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희정 사단법인 한부모가족회 한가지 공동대표는 정상가족주의의 문제로 편견과 비난을 재생산하는 문제를 꼽았다. 장 공동대표는 “(현재 제도로는) 미혼, 이혼, 사별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편견이 어마어마해서 이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없다. 미혼이나 이혼한 상태로 아이를 낳는 것은 (배우자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 선택(미혼·이혼)에 비난 받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이런 편견으로 힘들어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저출산을 조장하는 것은 (‘정상가족’ 개념을 유지하는) 정부”라고 꼬집었다.
토론회에서는 애도와 돌봄에 대한 제약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법은 사망한 고인의 장례를 할 권리는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있다고 본다. 조카나 며느리, 사위는 장례를 치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미국 뉴지지주·코넷티컷주에서는 ‘가족과 같이 친밀한 자’, 워싱턴주에서는 ‘근로자로부터 돌봄이 기대되는 자’ 등을 유급가족돌봄휴가에서의 가족 범주로 본다”고 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현실과 다른 가족규정,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주빈 기자
참가자들은 특정 유형의 가족을 정책에 포함하는 식의 변화는 배제와 소외의 악순환을 부른다고 비판했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고령층 커플이나 위탁 가족의 경우 가족정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건강가족기본법은 협소한 가족개념에서 그때그때 특정 유형의 가족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는데, 이는 그 자체로 차별적이다. 추가되지 않은 가족들은 정책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했다. 건강가족기본법의 개정이 가족 개념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사회적 재생산 기능을 국민의 의무로 두는 것이 건강가정기본법의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기 연구위원은 “건강가정기본법의 기본 목적은 결혼-출산-양육-돌봄으로 이어지는 이성애중심적 생애주기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가족정책 변화는 이성애규범적 가족중심 패러다임을 폐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여가부의 입장 번복에 참가자들은 허탈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여명희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 성차별시정과 조사관은 “2000년대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논의가 시작됐다. 2010년에는 생활동반자법이 거론됐다. 이렇듯 논의가 진보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갑자기 2022년이 돼서 이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발언이 나오는 현실이 분노스럽다”고 했다. 여 조사관은 “2022년에 이르러서도 아직도 이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인권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무기력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한편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날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정상가족’을 대상으로 한 정책만 열거했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 시간 △가족 친화 인증 기업 △기업과 함께하는 공동 육아 나눔터 등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 장관은 ‘일·가정 양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표현이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정상가족’으로 보고, 1인·한부모 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생활 균형’으로 써왔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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