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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여가부 장관의 ‘성평등’, 구조적 성차별 해답 없인 ‘단세포적’ 사고”

등록 2022-09-17 09:00수정 2022-09-17 21:34

[한겨레S] 인터뷰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권인숙 의원

n번방·스토킹 살해 등 거듭돼도
정부, 밀어부치기식 여가부 폐지
“젠더갈등 해소, 구조적 성차별 해답 없이
‘남성 만나기’로 균형 잡기는 ‘단세포적’”
“성평등 해법은 여가부 총괄 기능 강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인숙 의원실 제공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인숙 의원실 제공

“너무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스토킹 범죄가 쉽게 살해로 이어지는 범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도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해서 벌어진 사건이다. 피해자 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여성가족부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오후 역무원 스토킹 살해가 벌어진 신당역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스토킹 살해를 비롯해 여성폭력과 구조적 성차별은 정부, 의회, 수사기관 등이 모두 나서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여성폭력 문제와 여성정책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여가부 폐지를 포함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지난 5월 취임 전후 인사청문회,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업무보고,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내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 사이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되풀이되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권인숙 의원을 만나, 정부의 여가부 폐지 움직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주당은 ‘여가부 폐지 반대’”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다시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텔레그램 엔(n)번방’은 엄청난 범죄였지만, 한국 사회가 단순 가담자를 제대로 처벌했는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경고 효과를 초기에 제대로 주지 못했다. 성착취물을 소지했더라도 구속되는 비율이 낮고, 재판까지 가더라도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단순 소지만으로도 무겁게 처벌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줘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나.

“가해자들이 디지털 성착취를 하는 원인 중 하나는 돈이다. 지난 엔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이나 손정우(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공유 플랫폼 운영자)의 사례만 봐도 이들이 디지털 성착취로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벌어진 제2엔번방인 ‘엘 사건’에서는 금전 거래가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래가 없었어도 추후 이익을 취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디지털 성착취와 돈을 연결지을 수 없게 범죄수익 환수가 확실히 이뤄져야 한다.”

―국회에서 여가위원장이면서 법제사법위원이기도 하다. 법사위를 함께 택한 이유는?

“법사위에 작정하고 들어갔다. 디지털 성착취를 포함한 성폭력·성평등 의제 관련 질문을 법원행정처나 대법관에게 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봤다. 법원과 검찰의 노력이 큰 변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신중지는 비범죄화가 된 상태지만 임신한 여성이 구치소 등에 들어갔을 때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입법이 진척되지 못한 것이나 매뉴얼의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의 영상진술이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증거 효력을 상실해 발생하는 인권 침해 위험을 해결할 법안도 빨리 통과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권 의원은 관련 법안을 지난 4월 발의했다) 여가위와 법사위 업무가 많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안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의 방침은 무엇인가.

“민주당은 ‘여가부 폐지 반대’라는 입장이 확실한 상태다. 대선과 인수위 기간을 거치며 지도부가 여러 번 그런 입장을 밝혀왔다. 당론으로 공식화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제출되면 당의 입장을 정할 계획이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젠더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여성’을 지우고 ‘남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젠더 갈등 해소를 목표로 삼는 것은 좋다. 하지만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해답 없이 ‘남성을 만나는 것’으로 균형 잡힌 것처럼 보이려는 행동은 굉장히 ‘단세포적’이다. 남성들이 단순히 ‘우리를 만나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성평등’을 말하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는 시각도 잘못됐다. 김현숙 장관이 ‘인하대 성폭행 사망 사건’을 두고 ‘학생 안전의 문제고 성폭력이지, 여성폭력이 아니다’라는 무모한 이야기를 했다가 결국 ‘여성 폭력이 맞다’고 정정하지 않았는가.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게 어떤 면에서 젠더 갈등 완화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젠더 갈등 해소는 (‘여성 지우기’가 아니라) 성평등이 남성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스웨덴처럼 여성이 경제 활동하면서 남성도 가부장적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변화 등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변화는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

“답은 여가부 ‘총괄 기능’ 강화다. 성평등 의제를 국무회의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입법할 것인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양성평등 담당관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모을 것인가 등을 총괄해 조정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이런 핵심을 놓치고 다른 기능들을 (여러 부처로) 나눈다는 건 위험한 선택이다. 부처 이름을 바꾸고 아동 등의 영역을 다른 부처에서 가져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노력의 일환으로 설계가 되어야지, 관점 없이 정책 대상자 하나 늘린다는 수준으로 가선 안 된다.”

“장관이 자기 부처 폐지하겠다니”

―만약 지금 여가부 장관이라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

“성별 임금 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단위를 만들고 싶다. 독일은 노동부가 있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는 여가부 격인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에서 다룬다. 캐나다는 모든 부처가 성별 임금 격차를 고민하고, 관련 정책을 서로 조율해 만든다. 단 하나라도 실제로 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 성평등 관점이 없으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나 성별 임금 격차 문제는 해소될 수 없다. 이처럼 성평등 관점이 세게 들어가야 하는 문제는 여가부가 가져와 해결해야 한다. 저출생 문제도 마찬가지다. 합계 출산율 0.81명인데, 여가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끊임없이 이 문제를 강조하고, (성평등 관점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자고) 싸워도 모자랄 상황이다. 그런데 여가부 장관 본인이 부처를 폐지하겠다고 하니 참혹한 일이다.”

―김현숙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추천하고 싶다. 성평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이대남(20대 남성)에 천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공정 이후의 세계>와 <그런 세대는 없다>다. 또 남녀가 서로 공평해야 모두 자유로울 수 있다는 북유럽 모델을 이야기하는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도 권한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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