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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동의 20만 국민청원, 넷 중 하나는 ‘젠더폭력’…이젠 어디에 호소하나

등록 2022-05-08 20:59수정 2022-05-09 00:33

5년간 20만명 이상 동의 국민청원 286건
젠더 폭력 25.8%…이 중 9건은 ‘n번방’
“‘마지막 보루’였는데 사라져 안타까워”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갈무리

지난 5년간 20만명 이상 동의를 받았던 국민청원 게시글 중 25%가 디지털 성범죄, 강간, 살인 등 젠더폭력 사안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8일 <한겨레>가 지난 2017년 8월17일부터 2022년 4월30일까지 20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국민청원 게시글 286건을 확인한 결과, 이 가운데 74건(25.8%)가 젠더폭력 사안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명 이상 동의가 있으면 대통령이나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사안에 대해 답변한다. 답변이 달린 국민청원 4건 가운데 1건이 디지털 성범죄나 여성 강간이나 살인 등 젠더폭력과 관련한 호소와 요구였던 것이다.

20만명 이상 동의를 받은 젠더폭력 관련 청원 74건 가운데 9건은 ‘엔(n)번방’ 관련 국민청원이었다. 단일 이슈로는 가장 많았다. △엔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국제공조 수사 등 9개 청원에 769만여명이 동의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출소와 관련 청원이 3건, 아동 성착취물 누리집 운영자 손정우 미국 송환 관련 청원이 3건 있었다.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모두 17개 항목 가운데 국민청원 ‘신청 건수’가 가장 많은 분야는 정치개혁(16.3%·18만3994건), 기타(13.7%·15만4879건), 보건복지(9.6%·10만8319건)였다. 젠더폭력 관련 국민청원은 대부분 ‘인권·성평등’ 분야에 해당하는데, 이 분야 청원 신청 건수는 9만4161건(8.3%)으로 4위였다. ‘동의 수’ 순위는 달랐다. 신청 건수는 4위였던 ‘인권·성평등’ 분야가 전체 청원동의(2억3626만7674)의 18.2%(4294만4092)를 차지해 가장 많은 동의를 받았다. ‘인권·성평등’ 관련 국민청원에 대한 시민의 주목도와 동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 뒤는 정치개혁(14.6%·3459만8742), 안전·환경(11.2%, 2655만6561)이었다.

국민청원에 젠더폭력 관련 사안이 많은 점은 기존 행정·사법기관에 대한 피해자의 불신을 보여준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은 “젠더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은 이전부터 있었는데, 이런 감정을 해소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간소화된 창구가 생기면서 젠더폭력 관련 이슈가 더 많이 다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주로 여성단체가 부적절하게 처리된 개별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를 사실상 전담했는데, 국민청원 제도로 대중들이 이 역할을 함께 하고, 공분을 모으는 데 동참할 수 있게 된 점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9일 낮 12시 운영을 종료한다. 젠더폭력 피해자들은 국민청원 제도의 ‘부재’를 우려한다. 국민청원 제도가 법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젠더폭력 사건을 의제화하는 데 기여했던 만큼, 그 부재는 피해자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청원 신청을 검토하던 젠더폭력 피해자 ㄱ씨는 “국민청원이 있었기에 경찰·검찰·법원·인권위 등 다양한 기관에 문제제기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정 안 되면 국민청원이라도 할 수 있다. 나에겐 마지막 보루가 있다’는 생각에 문제제기에 나서며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조약돌을 모아 방패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국민청원이 폐지되어 너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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