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자 필드하키 대표팀의 니케 로렌츠 주장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가 담긴 밴드를 찼다. 도쿄/연합뉴스
48.8%(여성 선수 비율), 분홍색 마스크(성폭력 피해자에 연대하는 뜻으로 미국 남자 펜싱 에페팀이 쓴 마스크), 무지개 밴드(성소수자 인권 지지의 뜻으로 독일 여자 필드하키팀 주장이 찬 밴드)
2020 도쿄올림픽에서 성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요구하는 선수들의 행동이 여느때보다 활발했다. 이번 올림픽의 여성 선수 비율은 약 49%로 역대 올림픽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런 변화를 보면 도쿄올림픽 기치로 내건 ‘성평등 올림픽’이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올림픽은 성평등하지 않고, 여성 선수들 앞에 진입장벽이 놓여있다. 2024 파리올림픽이 성비 외에 부문에서도 ‘성평등한 올림픽’이 되기 위해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선수를 제외한 올림픽 코치진과 아이오시 구성원은 대부분 남성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코치진(감독과 코치 포함)은 10명 가운데 1명(13%)이었다. 지난 10년간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코치진 비율은 10% 안팎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올림픽 기술위원회 여성 비율은 30%였다. 도쿄올림픽에선 30.5%였다.
토마스 바흐 아이오시(IOC) 위원장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겸 아이오시 위원이 지난 7일 면담을 가졌다. 도쿄/연합뉴스
아이오시 구성원을 살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이오시 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37.5%, 아이오시 집행이사회 여성 비율은 33.3%였다. 이제까지 여성 아이오시 위원장은 없었다. 이런 성비가 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선수들이 겪는 진입장벽, 성차별까지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여성 선수에 대한 진입장벽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불러온 것은 ‘모유 수유’ 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엄마가 된 여성 선수들은 모유 수유를 포기할 위기에 처했었다. 아이오시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 유행을 이유로 선수들이 가족과 동반 입국하는 것을 막았다. 캐나다 농구 선수 킴 가우셔는 지난 6월 본인의 에스엔에스(SNS)에 “현재 나는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가 될 것인지, 올림픽 국가대표가 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강제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미국 여자 육상 마라토너 알리핀 튤리아무크도 젖먹이 아이와 도쿄에 갈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조직위의 결정에 반발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조직위는 결국 모유 수유 중인 선수의 자녀를 동반 입국 할 수 있도록 했다.
올림픽 내내 선수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평등의 가치를 몸소 보여줬다. 독일 여자 필드하키 대표팀의 니케 로렌츠 주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영국과의 시합에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무지개색 밴드를 발목에 차고 나왔다. 앞서 아이오시는 경기 중 무지개 양말과 밴드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니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무지개는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한다.
미국 남자 펜싱 에페 대표팀은 지난달 30일 열린 팀 단체전에서 분홍색 마스크를 끼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성범죄 혐의를 받는 앨런 하지치가 대표팀에 선발된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전문가들은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진짜’ 성평등 올림픽이 되기 위해선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셸 도넬리 캐나다 브록대 교수(스포츠경영학과)는 <더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은 지금까지 가장 성평등한 올림픽으로 불리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아이오시 집행위원의 여성 비율 확대, 유니폼이나 경기 규칙 등 참여 환경 개선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더 근본적으론 여학생들의 스포츠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커스티 코번트리 아이오시 선수위원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 청소년, 여성이 안전하고 포용적인 환경에서 스포츠를 할 수 있도록 평등한 접근과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모범을 보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오시는 2024년까지 올림픽의 성평등 기치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이오시는 6월30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세대평등포럼에서 △2024 파리올림픽에서 완전한 젠더 평등(남녀 선수 비율 50:50)을 이룰 것 △유해한 사회적 규범, 성 고정관념 및 관행을 깨기 위해 모든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성평등하고 공정한 묘사를 보장할 것 △스포츠 조직의 여성 대표성을 가속화하고, 의사 결정 기관에서의 여성 대표성을 최소 30% 달성할 것 등 성평등 공약을 제시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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