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는 놀이터의 중심은 아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놀이터를 만든다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진은 경북 안동 편씨의 집 앞마당에서 동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이다. 편해문씨 제공
놀이가 떴다. 놀이학교, 책놀이, 블록놀이, 놀이수학 등등 놀이라는 단어가 안 붙는 곳이 없다.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 등이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각종 기업과 단체에서 놀이터 짓기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놀이 전성시대다.
아동문학가이면서 15년 넘게 어린이 놀이 운동을 펼쳐온 편해문(46)씨를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최근 그는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소나무 펴냄)라는 도발적인 책을 펴내 주목받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놀이를 강조해온 그가 한국의 놀이문화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또 한국의 놀이터가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놀 권리, 놀이터 논의 늘었지만
안전 신화 속 위험 없앤 놀이터
아이 삶에 재미·의미 제공 부족
“간섭·감시 있다면 놀이 아냐”
아이 중심 놀이터 혁신 나서야
“거품입니다. 거품. 가짜 놀이가 판치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놀이터 토건에 그치고 말 거예요.”
편씨는 놀이 전성시대가 달갑지 않다. 과거 어느 때보다 놀이를 강조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놀지 못한다. 놀이마저도 이제는 학습하는 시대가 됐고, 아이들은 엄마아빠 따라 여기저기 끌려다니느라 자유시간이 없다. 편씨는 “놀이라는 말이 이제는 퇴색됐어요. 다른 말을 찾아야 할 지경”이라고 말한다.
놀이가 강조되면서 그저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놀이터 짓기에만 관심 갖는 사람들도 늘었다. 아이에게 어떤 것이 놀이인지 제대로 알고 놀이터 혁신에 나서야 하는데, 놀이터만 그럴싸하게 설치해 놓으면 아이들이 잘 놀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편씨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놀이터가 엉망이어도 놀이터에 갈 시간만 준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터를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어른들의 놀이에 대한 인식 변화 없는 놀이터 혁신은 놀이터 토건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진짜 놀이란 무엇일까? 놀이는 창의성 계발을 위한 것도 아니고 어른들이 주도하면 놀이가 아니다. 놀 때 특정 도구나 교구가 필요하지 않다. 돈이 있어야만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씨는 “놀이란, 부모나 어른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모든 몸짓과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놀아야 하는데 부모가 여기저기로 아이를 끌고 다녀요. 특히 배웠다는 부모들이 더 그래요. 이렇게 놀려 봤다 저렇게 놀려 봤다 하지요. 아이들이 노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놀고 있어요. 그렇게 질질 끌려다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묻습니다. ‘우리 언제 놀아요?’”
그는 놀이가 강조되는 사회는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그냥 일상에서 ‘밥’처럼 꾸준히 아이들이 ‘놀이밥’을 하루에 ‘한두 그릇’씩 먹을 수 있어야 아이들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놀기 좋아하고, 놀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발 “아이들을 그냥 놔두라”고 호소한다. 어른들이 통제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잘 논다. 그는 아이들이 도저히 심심해서 안 되겠다 싶어 뭔가 행동을 취하는 그 순간 진정한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본다.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는 놀이터의 중심은 아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놀이터를 만든다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진은 경북 안동 편씨의 집 앞마당에서 동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이다. 편해문씨 제공
자유놀이 시간 확보와 함께 그는 한국 놀이터 혁신도 강조한다. 한국의 놀이터는 너무 천편일률이어서 개성이 없다. 안전 신화 속에서 아예 위험을 제거해 아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편씨는 한국 놀이터가 아이들 중심이 아닌 어른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고,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의 놀이터를 가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놀이터 디자이너’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지난해 8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를 만나러 독일에 다녀왔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벨치히를 만나 그는 많은 영감을 받았다. 벨치히는 40년 동안 놀이터와 놀이기구 디자인에 몰두했고, 은퇴 뒤 자기가 사는 곳에서 20년 가까이 직접 놀이터를 가꾸고 있다. 편씨는 그가 가꾼 놀이터에 직접 가서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벨치히는 놀이기구 중심이 아니라 놀이터 공간 자체를 중시했다. 또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를 꿈꾸고, 궁극적으로 놀이터가 사라지는 세상을 꿈꾼다. 세상의 모든 길에서 아이들이 놀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씨는 그런 그를 존경하고 역할모델로 삼는다. 편씨는 독일 이외에도 덴마크의 공공 놀이터를 들러 다른 나라의 놀이터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놀이문화도 직접 보고 경험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편씨는 현재 전남 순천시가 추진중인 ‘기적의 놀이터’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이 놀이터는 오는 10월 완성된다. 편씨는 단순히 놀이터 짓기에만 열중하지 않는다. 놀이터 디자이너 학교를 열어 지역 주민과 아이들, 학교 등 지역사회 사람들 모두가 참여해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논의할 계획이다. 언덕이나 바위 등 주변 지형과 지물을 이용해 주위와 잘 조화를 이루는 놀이터를 만들 예정이다.
“아이들은 놀 권리도 있지만 놀다가 다칠 권리도 있습니다. 다치지 않으려면 가만히 있으면 되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죠? 아이들은 일상에서 위험을 만나고, 위험과 한계를 넘어섰을 때만 배울 수 있어요. 놀이터에서 안전만을 강조하면 정작 아이는 삶에서 진짜 필요한 기술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있는 자리에서 세월호 사건을 성찰한 결과입니다.”
그가 추진중인 놀이터 혁신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놀수록 더 놀려는 아이가 고민인데…“이 정도 놀면 충분하다는 접근 마세요”
편 디자이너에게 묻고 답하다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를 만나기 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미리 놀이 관련한 고민들을 받았다. 부모들의 놀이 관련 고민과 그에 대한 편씨의 답을 정리했다.
-놀기 정말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딸은 아무리 놀아도 “더 논다”고 떼를 씁니다. 놀수록 더 놀려고 하는 아이가 걱정입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의 학습, 생활습관, 체력 등을 고려해 놀이시간을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이가 덜 놀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충분히 놀았으니까 그만 놀아도 된다는 식의 단계적인 접근을 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가 정말 충분히 놀았는지 보세요. 아이들이 논다고 계속 노는 것은 아닙니다. 잘 논 아이들은 초등학교 끝나기 전에 “이제 노는 것도 지겹다”고 합니다. 아이가 이제까지 잘 놀았다면, 그 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돌아갑니다. 아이가 충분히 놀 수 있도록 해주세요.
-놀이가 심심하거나 재미없어도 놀이일까요? 재미없을까봐 재미있는 놀이를 유도하거나 돈을 주고 시설을 찾기도 하거든요.
=아이들이 빈둥거리면서 ‘아, 정말 심심하다. 뭐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 창의성이 시작됩니다. 어른들은 자꾸 무엇을 던져주고 싶어하지요. 그렇지만 조금 더 기다리세요. 외동아이라면 동무와 함께 놀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아요.
-형제자매끼리, 남매끼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데요. 어른들이 같이 끼어서 노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어른이 거기에 끼면 방해가 될까요?
=어른들은 쉬세요. 형제끼리 잘 놀아도, 치고받고 싸워도 부모님은 제발 쉬세요. 형제자매 관계는 아이들이 최초로 만나는 사회입니다. 그러니 자기들끼리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놔두세요. 그리고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라면 말썽쟁이 이웃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세요. 부모님이 아무리 높은 학력이 있고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해도 말썽쟁이 친구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친구는 더 넓은 세상을 선물해줍니다. 이웃들을 필사적으로 찾아 나서서 아이에게 친구와 많이 놀도록 해주세요.
정리 양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