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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베이비트리

회사, 나의 힐링 캠프!

등록 2013-03-28 15:18

한겨레 육아사이트 베이비트리 바로가기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오늘 아침에도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앞으로 당분간 쭈~욱 치러야 ‘출퇴근’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내가 낳은 세 아이 때문이다. 아침에 깨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겨 초등학교·유치원·어린이집을 보내는 이 일이 전쟁이다. 내가 일어나는 오전 6시부터 아이들을 등교·등원시키는 9시까지… 비록 3시간뿐이지만, 오죽하면 전쟁이다 싶을까!

내겐 전쟁이 또 하나 더 있다. 퇴근 뒤에 이어지는 전쟁…. 세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저녁밥 먹이고, 돌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그렇다. (그러면 안되지만) 집은 내게 전쟁터다. 더이상 휴식과 힐링의 장소가 아니다. 전쟁을 함께 치러야 하는 남편과의 관계도 요즘엔 그래서 소원해졌다. 나만큼 남편도 힘든 것이다.

가장 짜증이 날 때는 아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아니다.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을 때,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어지러진 방과 거실, 쌓여 있는 설거지를 볼 때다.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지금 힘들어서 못하면, 다음날 아침에, 아침에 못하면 퇴근 뒤…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하는 광경을 볼 때, 더 나아가서는 큰 맘 먹고 집안일을 싹~ 해치우고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다시 엉망이 되어 있을 때다. 정말 맥이 빠진다. 심지어 ‘같이 일을 하는데 왜 집안일은 항상 내가 해야 하지?’ 남편한테도 짜증이 확 치밀어오른다. ‘같이 돈 벌면서 왜 집안일은 나만 해?’

그렇지만 회사는? 내게 힐링의 장소다. ‘힐링캠프’라고 할까? 아이들한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고, 남편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되고... 그뿐인가! 엉덩이를 의자에서 거의 떼지 않아도 되며(온라인편집팀에 근무 중이었으므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신문과 시사잡지를 읽을 수 있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으며, 종종 회사 동료들과 즐겁게 수다도 떨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쓰레기장’ 같은 환경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 무언가를 하면 성과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1.

오전 전쟁 일과는 이렇다. 일단 오늘 아침 풍경을 한번 보면. 아침 6시에 눈을 떠 30분가량 뉴스를 본다. (이건 내가 잠을 깨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다!) 이후 30분간은 내 출근준비 시간이다. 씻고, 옷입고 등등.(언제부터인가 화장은 아예 안한다.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보통 7시부터인데 전기밥통에 밥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 없으면 재빨리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그것도 쾌속취사로. 아이들이 먹을 반찬이 있는지 찾아본다. 없으면 해야 한다. 아침에는 주로 국 위주로 차린다. 미역국, 콩나물국, 오뎅국, 북어국, 감자국 등등. 끓이기 쉬우니까. ^ ^;.

굳이 아침밥이 아니더라도 우리집 식사는 평상시에도 1식1찬(?)이 원칙이다.(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아이들 셋을 그 누구의 도움 없이 공교육·공보육 시스템에 맡기고 있는 맞벌이인지라….) 저녁 식사는 나와 남편이 먹을만한 얼큰한 찌개나 볶음류, 아이들이 먹을 만한 감자볶음, 멸치볶음, 스파게티, 계란찜 등 가운데 1개로 대충 차린다. 그것조차 할 여유가 없을 땐 시켜먹거나, 라면 삶아먹거나... 여튼 식사 얘기는 여기서 그만.

아침식사 준비를 대충 하고 난 뒤에는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아이 가방 챙기고(알림장 및 숙제 체크, 준비물과 물통 준비 등),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가방 챙기고(숟갈과 젓가락, 물통 등), 셋째 가방(어린이집 수첩에 글 적기, 식판 및 수젖가락, 준비물 등)을 챙긴다. 그나마 투약할 약이 없을 땐 한결 수월하다. 셋 다 감기에 걸려 약을 복용해야 할 때는 투약의뢰서 쓰고, 3명 분의 가루약을 까서 한번 먹을 물약과 섞어 일일이 가방에 넣어줘야 한다.

그러면 정말 1시간이 후딱 간다. 그래도 이때는 그나마 낫다. 내 몸뚱이만 바삐 움직이면 되니까. 고된 일과는 이후부터 이어진다. 아이들의 울음 또는 짜증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아야, 일어나” 7시30분~8시 사이에 큰딸을 깨운다. 초등학교 입학한 뒤로 낮잠을 자지 않는 수아는 그나마 잘 일어나는 편이다. 이제는 일어나 세수하고 이빨 닦고, 옷 입는 것까지 스스로 알아서 한다. 그리고 수아의 머리를 묶어주고 아침밥을 준다.

2. 

수아가 아침밥을 먹는 동안, 대충 8시~8시10분쯤 된다. 3살(20개월)된 셋째를 깨운다. 요령이 있다. 깨우기 전에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와 다리에 로션을 발라준 뒤 옷을 먼저 입히는 것. “엄마야, 사랑해~”라는 말도 한번 해준다. 그 사이 아이는 보통 잠에서 깬다.

“두나 일어났어요? 치카해야지?” (셋째는 이빨 닦는 걸 좋아한다...)

보통 이렇게 말하고, 욕실로 데려가서 세수시키고 이빨을 닦아주면 어느새 컨디션 회복. 셋째 아이 머리 묶어주고, 밥을 먹인다. 다행히 먹성이 좋아서 아무거나 입에 넣어주면 좋다고 잘 받아먹는다.

문제는 여섯살짜리 둘째다. 사실 아침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이 녀석 때문이다. 왠만해서는 알아서 일어나는 법이 없고, 깨울 때마다 눈물바람이다. 이달부터 병설유치원으로 옮겨 등원시간이 획기적(?)으로 앞당겨진 걸 위안삼는다. 전에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10시~11시가 평균 등원시간이었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대학생 아란이~”라고 불렀을까.

둘째의 눈물바람은 이후에도 한참 계속된다. 밥 먹자 해도, 옷을 입자 해도, 화장실 가서 쉬하자 해도, 세수하고 이빨 닦자고 해도... 무조건 “싫어~” 하면서 운다. 아니면 “안아달라”고 떼를 쓰거나, 소변을 참지 못하고 내복이나 잠옷에 실수(?)를 하고 만다. 그러면 옷을 벗기고 다시 씻겨야 한다. (이불에 실수를 한 날도 많다.) 머리를 묶어줄 때도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면 울고, 옷을 입을 때도 자기가 직접 코디를 해서 입지 않으면 또 운다. 둘째의 눈물바람은 집을 나설 때까지 계속된다. 둘째가 울 때 가끔 멀쩡하던 셋째까지 내 다리를 잡고 늘어지며 서럽게 운다... 쩝~

그렇게... 정신 없이 세 아이 뒤치닥거리 하다보면 어느새 8시30~8시40분이다. 세 아이를 끌고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다. 보통 둘째는 첫째 손에 맡기고, 나는 셋째 아이를 안는다. 그리고 셋째부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첫째와 둘째를 맡긴다. 그나마 첫째와 둘째가 학교 라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어서 다행이다. 남편이 일어나 도와주면 좋으련만 아이들이 집을 나설 때까지 남편은 수면에 취해 있을 때가 많다.(하긴 남편은 내가 일찍 출근해야 했던 지난 1년간 혼자 감수하긴 했다.) 남편 역시 아이들이 잠들고 난 늦은 밤 개인적으로 묶혀두었던 일, 회사 일 등을 주로 처리하기 때문에 늦게 잠들 때가 많다. 이해한다.

그리고 출근. 휴~ (부서를 옮겨 출근시간이 조금 늦춰졌다. 대신 퇴근시간도 ^^;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9시에 출근해야 하는 대부분의 직장맘들은 나보다 더 이른시간부터 전쟁을 치를 것이다.)  

전쟁은 저녁에 또 한차례 이어진다. 수위가 낮아 그나마 다행이다. 퇴근 길에 둘째 아이 찾은 뒤 막내를 찾아 집으로 오는 일과다. 그때가 7시30분쯤이다. 아이들 손만 씻기고, 둘을 거실에 풀어놓는다. 알아서 둘이 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한다. 7시50분쯤 큰아이가 귀가한다. 그럼 셋이 알아서 어울려 논다.(자녀가 많아서 좋은 점은 이럴 때다. 엄마한테 의존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노는 것.) 그 사이 나는 부리나케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든다. 먹는둥 마는둥 저녁을 먹고 나면 8시30분~9시. 큰아이 숙제를 봐주면 9~10시.

이 중간중간에 둘째, 셋째는 함께 놀아달라거나, 책을 읽어달라거나, 안아달라거나, 간식을 달라거나 등등 엄마를 괴롭혀댄다. 여튼 아이들과 씨름하는 시간을 마무리하고 반강제(?)적으로 세 아이를 씻긴다. 막내아이 먼저 씻기고, 첫째와 둘째는 함께 목욕탕에 데려와 씻긴다. 그 사이 남편은 거실에서 아이들 머리 말려주고, 옷 입히고, 로션을 발라주는 역할 분담을 한다. 다 마치고 나면 밤 10시30분~11시 즈음.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늦은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좀처럼 자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아빠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서인지, “잠이 안온다”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침실을 뛰쳐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녹초가 된 나 역시 잠에 빠지면 비로소 나의 하루 일과도 마침표를 찍는다.

 

상황이 이럴진대 집이 어찌 힐링과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있겠나! 나와 나의 남편에게 집은 오로지 자녀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물론 딸 셋이 내게 주는 기쁘과 힐링의 가치는 그 이상이긴 하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고된 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대부분의 직장맘, 직장맘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가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고, 조용한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 할 것이다.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입에서 “회사가 힐링캠프”라는 말이 종종 튀어나왔다. 의식한 건 아닌데, 지난 1년 온라인편집팀에서 일할 때는 적어도 그랬다. 내 업무는 기사의 제목을 뽑고, 편집을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고독(?)과 나름 창작의 고통(?)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난 9년간 얼마나 바랐던 고독과 고요의 시간인가! 편집팀에 있을 땐 출퇴근 시간도 대체로 정해져 있었기에 스케줄 조절도 가능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사무실을 힐링의 장소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독하지만, 조용하고. 그런 분위기에서 신문들, 한겨레21 같은 잡지들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흐름도 살펴보고, 제목 뽑는 내 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얼마 전 부서를 옮기면서 남편과 내가 교대로 하던 아침 전쟁이 전적으로 나의 몫이 되었다. 이제는 기꺼이 즐겁게 아침은 물론 전쟁을 맞아보려고 한다. 더 힘을 내어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회사가 힐링캠프인 엄마들이 어디 나 뿐이랴!

그리고 또다른 결심을 해본다. 지난 1년여간 못했는데, 다시 새벽 6시 운동을 시작하겠노라고.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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