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한겨레 자료사진
오늘, 그 무언가 작은 설레임이 찾아온다. 처음으로 로또복권을 구입하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면서 편의점에 들렀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주인에게 “로또 한 장에 얼마예요?”라고 물었다. 그저 금액을 몰라서 본능적이었다. 그런데 젊은 주인은 힐끗 나를 0.5초 동안 쳐다봤다. 그 순간, ‘아, 내가 지금 실수를 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았다. 주인은 나를 보면서 속으로 ‘이 사람 도데체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황급히 “5,000천원 어치 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자동으로 해달라고 했다. 수동과 자동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뒷머리가 간질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하여튼, 나의 첫 번째 로또 구입은 성공적이었다.
로또를 구입한 이유는 대단한 길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꿈속에서 갑자기 용변을 봤는데 그 색이 너무도 선명한 황금색이며 두 개의 덩어리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황금이라고 수근거린다. 그리고 잠이 깼다. 순간, 본능적으로 복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판단을 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바로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어머니가 좋은 꿈을 꾸신 경우, 늘 그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귀신같이 좋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나도 언감생심, 몸속에 기억된 DNA를 되살려서 복권을 사려고 결정을 한 것이다. 집에서 나오면서 아내에게 오늘 복권을 산다고 했더니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마, 결혼 후 23년간 복권을 산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꿈을 꾸었다고 하니 피식 웃는다.
토요일 밤, 10시쯤 집에 귀가를 했다. 그리고 11시쯤 방에서 누워있는데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아빠, 아빠’를 큰 소리로 연달아 부른다. 그리고 로또를 구입했냐고 확인을 하고 로또를 사지 않겠다고 하고 약속을 어겼다며 그 부정(?)을 폭로한다. 그러면서 오늘 발표인데 그 결과가 궁금하다며 로또를 보여달라고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 두고 와서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들은 처음으로 로또를 구입한 아빠를 놀릴 심산인가 보다. 아빠가 기분이 좋아서 입 꼬리가 올라간다고 놀린다. 또한 좋은 꿈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며, 천기누설이라고 말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들이 더욱 궁금한지 당장 사무실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다시 가기는 싫었고 그 대신 내일 알려주겠다고 했다. 사실, 복권 추첨을 하는 날이 토요일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미리 알았다면 사무실에서 확인을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순간 스친다.
일요일, 아침 사무실에 들렀다. 그리고 벽에 붙여 놓았던 복권을 펼치고 인터넷을 통하여 숫자를 확인했다. 첫 숫자부터 하나도 맞지 않았다. 두 번째도 없다. 겨우 세 번째에 한 숫자가 맞았다. 결국 5개의 복권 35개의 숫자 중에서 겨우 2개의 숫자만 동일함을 확인했다. 그래도 사실, 수요일에 복권을 사고 일요일까지 약간의 설레임은 있었다. 그런 감정을 얻었기에 5,000원 이상의 값을 한 듯하다. 그리고 어머니의 경우와 달리 나의 꿈은 아직도 개꿈이란 것도 알았다. 그냥 어머니처럼 나의 꿈도 무슨 운이 따르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자 아들이 다짜고짜 복권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2개의 숫자만 맞았다고 하자, 깔깔거리며 2개의 금덩어리와 2개의 숫자가 일치한다며 웃는다. 그리고 아빠가 원칙을 깨고 복권을 산 것을 봤으니 자기도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나도 한 번은 사서 확인을 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복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 집안의 가풍의 특징이다. 사람이란 자고로 성실하게 살아야지 일확천금을 꾸어서는 안되다는 생각이다. 명절이 되어도 그 흔한 고스톱을 볼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아들은 대뜸 ‘아빠는 고스톱 칠 줄 아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빠의 약점을 파고드는 함정 질문이기에 긴장해야 한다. 그러면 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런 사람들과 함께 섞이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첫 명절에 처갓집에 가서 고스톱을 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한 세월이 흘렀다.
사행성이란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수많은 복권들이 난무하고, 당첨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미국에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5년 뒤의 결과를 보면 자살을 하거나, 파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돈이란 주인을 알아본다. 내가 성실히 일하여 번 돈은 내가 지키기가 쉽다. 그러나 불로소득의 돈이란 사실 내 돈이 아니다. 거기에는 나의 땀과 애정이 없다. 그러기에 지키기가 어려워 금방 사라진다. 교육의 기본 이념을 보면, 사람이란 무릇 성실하게 살아야 하고, 성실한 사람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현실은 영 딴판이다. 명절에도 놀이는 없고 고스톱을 국민오락이라며 그 자리를 꽤 차고 있으며, 수많은 경마, 경정 등과 복권들이 나눔이라는 명분으로 개장하고 발행한다. 이는 교육의 근본 초심을 잃고 있는 이율배반적이며 심각한 현실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 현상을 틈타서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치 비가 온 뒤의 독버섯이 자라듯이 지하경제의 규모는 무려 70조원이 넘는 다고 한다. 이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각종 도박의 유혹으로 성실한 사람조차 유혹에 빠지기 쉽고 또한 수많은 중독자가 생기고, 가정이 파탄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은 아마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다. 결국, 소탐대실이다.
꿈이나 희망은 꿈꾸는 사람이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과 같이 인생의 진지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되기는 번개불에 맞아서 죽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확률을 갖고 있다. 혹시나, 그리고 혹시나 하며 불확실한 미래에서 갑자기 갑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생 역전의 로또는 꿈이 아니다. 망상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자기 불신의 반작용으로 구입하고 있다. 스피노자가 사과 나무를 심자는 말을 하듯이, 나의 작은 실천과 행동이 그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씨앗을 심는 일이다.
딸은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10년이 넘게 ‘꿈 점검표’를 쓴다. 원래는 고3까지 쓰기로 했는데 딸의 부탁으로 지금도 쓰고 있다. 거기에는 자신의 꿈과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매달 적는다. 그렇다고 아빠가 그것을 일일이 보지 않는다. 그저 딸이 스스로 매달 쓰면서 자신을 체크하는 용도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냉장고 옆에 매달 한 장씩 추가 되어 붙어있다. 딸이 대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남자를 선택할 때, 노름, 복권 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배우자 대상에서 제외라는 사실이다. 이 말에 딸도 동의했다. 딸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라가 아니라,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먼저 가르쳐 주었다.
성실하다는 말을 해석하면 내가 하는 말이 이루어져서 그 어떤 결실을 만든다는 뜻이다. ‘내가 저 산의 정상에 올라갈거야’ 라고 했으면 정상에 한걸음씩 발을 움직여서 도달하는 것이 성실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말이 많은 사람은 결코 성실한 사람이 적으며, 성실한 사람은 말이 많지 않다. 실천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이 한다. 모션은 이모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결코 로또로 채워질 수 없으며, 로또로 완성될 수 없다. 삶은 리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로또란 너무 가까이에 있다. 바로 가족과의 관계형성에 있다. 미취학 아이에게는 아빠가 조금만 놀아줘도 까르르 웃고, 천상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함께 목욕을 하자고 하면 뛸 듯이 좋아한다. 펫트병에 물을 넣어 물총싸움도 하고, 거품으로 산타할아버지나 삐삐머리도 만들어주면 행복 그 자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아내를 가장 크게 도와주는 일이 된다. 나의 작은 행동으로 인하여 아이가 행복하고, 아내가 남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행복한 가정이며 인생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로또이다.
우리가 이 땅에 때어난 이유는
돈을 떼 돈을 벌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늘, 행복하게 살려고 태어났다.
돈 속에는 행복을 담을 수는 없지만
행복 속에는 돈을 담을 수가 있다.
글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아빠가 하루 1분만 놀아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1분 놀이’의 달인이다. 13년간 광고대행사 대표로 재직하다 IMF 때 부도가 난 뒤 그저 아이들이 좋아 함께 놀아주다보니 아빠놀이 전문가가 되었다. 놀이는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이자,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15가지 인성 발달뿐 아니라 9가지 신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저서로는 <아빠의 놀이혁명>, <아빠의 습관혁명>, <아빠학교>, <아빠가 달라졌어요>, <아빠 놀이학교> 등이 있다.
이메일 : bnz999@hanmail.net
블로그 : http://cafe.naver.com/swdad
권규리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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