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만났던 일본 여자 친구와의 수다중에서 재미있던 것은 '부부의 잠자리'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은 부부도 각각 다른 이부자리를 사용한다는 일본 친구의 말에 내가 '한국에서는 부부를 뜻하는 말에 '내 이불 친구'라는 표현이 있다. 결혼하면 한 이불을 덮고 자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다'라고 했더니 정말 재미있어 했던 것이다.
하긴 '쉘 위 댄스'라는 일본 영화에서도 정작 내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 부부가 한 방에서 각각 벽에 붙어 있는 자신들의 싱글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친구 사이인 남자들 둘이 한국으로 배낭여행을 와 여관에 들어갔다가 이부자리가 한 채 뿐 인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는 얘기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는 한 이불을 써야 비로소 부부인 것이 인정받는 사회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결혼 11년째 딴 이불을 쓰고 있으니 한국 정서에서 볼 때 별거나 이혼 직전인 상황으로 보여질 판이다. 이유는 물론 애들 때문이다.
결혼 1년 만에 첫 아들 낳았는데 남편은 그 날부터 침대 위에서 혼자 잤고 나는 침대 아래에서 아들과 둘이 잤다. 그래야 젖도 맘 놓고 먹이고 애도 편하게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아들 다섯살 때 둘째를 낳았는데 이때부터 내 양 옆은 두 아이들이 차지했다.
둘째가 네 살때 셋째가 태어났으니 남편은 더 멀어진게 당연했다. 어쩌다 남편이 내 옆에 누울라치면 세 아이가 다 아우성이었다.
우린 그렇게 10년 넘게 살았다.
올 1월에 막내가 세 돌이 지나면서 젖도 거의 떼었다. 늘 내 옆만 고집하던 막내는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아빠 옆으로 가서 자기도 한다. 오래 이어지던 밤 중 수유가 사라지자 남편은 슬슬 내 옆자리를 노리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 잠들고 나면 슬그머니 내 옆에 잠든 아이들을 밀어내고 눕는데 당연하게 누렸어야 했을 권리를 10년 넘게 유예 당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어서 이제부터라도 부부끼리 알콩달콩한 시간들을 누려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은 신혼때도 제대로 못 해 준 게 맘에 걸렸는지 내 옆에만 누우면 팔베개를 해 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대단히 불편한 것이다. 남편은 내게 팔베개를 해 주고 다른 팔을 내 가슴에 얹고 자고 싶은 모양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나는 뒷 목이 뻐근하고 숨이 턱 막힌다. 얼마되지 않아 다시 내 베개로 돌아오고 남편의 팔은 슬며시 밀어 낸다. 그래야 편해진다. 남편은 또 자다가 아무렇지 않게 내 몸 위에 발을 올리는데 이게 또 나를 어마어마하게 압박한다. 나는 잠시도 못 참고 남편 발을 밀어내고 만다.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작고 여리고 보들보들한 아이들을 끼고 자던 내게 갑자기 내 옆을 차지한 남편이란 존재는 낯설었다. 놀랍게도 낯설었다. 너무 크고 무거웠다.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숨결도 낯설었다. 가늘게 코 고는 소리도 한 발 떨어져 잘때는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바로 내 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별안간 잠을 설치게 했다.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싫은건 물론 아니다. 아이들을 재운 후 다른 방에서 갖는 부부만의 시간도 여전히 뜨겁고 짜릿하다. 그런데 긴 밤을 내 옆에서 자는 남편은 낯설다. 싫은 것이 아니라 낯설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의 뒤척임, 숨결, 작게 코 고는 소리, 남편의
무게, 중량감, 체쥐.. 모든게 익숙하지 않은데서 오는 불편함이다. 늘 자면서도 엄마의 존재를 손으로 발로 몸으로 부대오며 확인하던 아이들과 10년을 물고 빨며 지내는 동안 내 몸과 의식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엄마라는 존재는 자면서도 아이들에게서 의식을 거두지 않는다. 자그마한 뒤척임, 조금이라도 다른 숨소리에도 잠이 깨어 아이들을 살피게 된다. 애 입에서 잠결에 '엄-마'라고 가느다란 소리라도 나면 '엄마, 여기 있어' 하며 다시 애를 품에 안고 잠을 청하며 살아왔다.
'엄마'라는 것을 자면서도 놓지 못하는 내게 '아내'로 나 자신을 인식하는 일이 낯설었다. 이런, 이런...
기껏 마누라 옆에 누워 다정하게 잠을 자 보고 싶었던 남편은 그럴때마다 내가 남편의 손이나 발을 밀어내고, 팔베개를 풀어버리고, 안고 있었던 손을 풀어 반듯하게 눕는 것에 상처를 받는 듯 했다. 이런 내 반응에 나도 당황해서 내 감정이나 상태를 남편에게 정확하게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나도 그간의 내 감정을 돌아보고 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다른 방에 재웠더라면, 처음부터 부부가 한 방을 쓰고 한 이불을 덮고 잤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린 처음부터 아이를 우리 사이에 재웠고 그렇게 다섯 식구가 얽혀 10년 넘게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몇 년은 이렇게 더 지낼지도 모른다. 막내까지 제 방으로 독립을 해야 비로소 부부만의 방에서 부부만의 이부자리를 쓰게 되리라.
늘 결혼해도 배우자가 제일 소중하다고, 아이보다 남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결혼 생활 내내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어쩌면 남편과 내 사이를 돌보고 가꾸는 노력엔 소홀했던 것일까. 부부사이란 결혼했다고 완성되는 것일리 없다. 결혼이란 평생 이 사람과의 관계를 보살피고 가꿔가면서 완성을 향한 노력을 하겠다는 서약이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그 시간이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했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남편과의 관계를 돌보고, 키우고, 가꾸어 가는 노력을 해야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린 평생 내 앞의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며 살고 싶어 결혼한 부부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고백하자면 잠자리에서의 내 거부는 당신이 싫다는 표현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10년간 익숙해져 있던 감각에 대한 어색함이다. 그러니 화내기 전에 기다려 달라. 어쩌면 우린 중년이 되어 서로 다시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고맙고 설레기도 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연애를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얼마전에 당신이 내 옆에 누워서 귓가에 '이제부턴 좀 예쁘게 입고 다녀'라고 한 말.. 나는 고마왔다. 10년 간 늘 어린 애를 돌보며 지내는 동안 나를 꾸미는 일에 제대로 관심도 기울이지 못했던 마누라지만 중년이 넘은 아내가 여전히 이쁘기를 바라는 말..
고마왔다. 이제부턴 조금씩 굽 높은 신발도 도전해 보고 이쁜 옷도 장만해 보리라. 그리고 내 이불친구에게 익숙해지도록 부지런히 애들 밀어내고 남편 옆에 누워봐야지. 부부사이에도 적응과 노력이 끝없이 요구된다. 우린 지금 그 시간들을 맞이한 것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당신이 여전히 좋다. 그러니 삐지지 마시라..
엄마 이기전에 아내로, 아내 이기전에 여자로,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 존재로.
새 봄엔 변신 시작이다!!!
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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