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면 안드리 애거시
* 베이비트리 바로가기
연주는 네 살치고는 말을 잘한다. 연주가 새로운 말을 배워서 할 때마다 가족들은 오물거리는 입과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앙증맞은 단어 때문에 박장대소를 하곤 한다. 그런데 요즘 연주 엄마는 연주를 데리고 다니는 게 겁이 난다. 연주가 무심코 한 말 때문에 민망한 경우를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를 보면서 큰 소리로 “엄마, 저 아저씨는 왜 머리카락이 없어?”라고 말하는 바람에 당사자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고,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참느라 진을 빼는 모습을 보았다. 엊그제는 마트에 가느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때는 탔는데 추운 날씨에 반바지를 입은 남학생을 보고 “저 오빠는 안 추워?”해서 얼굴이 벌개지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그 때마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일렀지만 그 때 뿐이다. 연주와 함께 외출했을 때 연주가 눈을 반짝거리며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을 때마다 엄마는 쟤가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지레 놀라곤 한다.
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무심코 한 말 때문에 난감한 상황을 겪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민망하고 적나라한 표현을 하는가 하면, 할머니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고 가면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그 말까지 전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싶다가도 아무리 어려도 하면 안 되는 말인지 아닌지를 이렇게 구별 못할까 싶은 속상한 마음이 울컥 치밀기도 한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나중에 사회생활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면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밀려온다.
네 다섯 살짜리에게 자기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 판단하고 조심하라는 것은 마치 이제 막 ABC를 배운 아이에게 영자신문을 줄줄 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떠가고 있다. 집에서, 가족들과 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세상의 원형은 가족의 모습과 집안의 풍경에 익숙해져 있는데 바깥에 나가게 되면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머리카락이 풍성한데 왜 저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몇 개밖에 없는지,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은 모두 검은 색인데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머리가 하얀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키 큰 오빠의 얼굴에 빨갛게 돋은 것은 무엇인지, 머리 긴 언니들은 왜 손톱을 색연필로 칠했는지 마냥 신기하고 궁금하기만 한 것이다. 아이는 아직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들릴지 전혀 알 수 없다. TV에 나오는 사자가 신기해서 엄마에게 손가락질하며 물어보는 것과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물어보는 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같은 것이다.
이런 순간이 엄마에게는 당황스럽겠지만 아이 나이로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주고,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의 말이 상당히 불쾌할 수 있는 말이면 엄마가 대신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아이에게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아이에게는 바깥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엄마에게 귓속말로 물어보라고 일러둔다. 한두 번 말해서 바로 행동이 고쳐지지 않을 수 있으나 반복해서 타이르고 훈련시키면 아이는 아무데서나 큰 소리로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거나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점차 배우게 된다. 버릇없는 행동이라고 받아들여 무조건 통제하고 야단치면 아이는 지금 막 갖게 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마음 안에 가둬둘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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