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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베이비트리

다섯 살 아들의 무시…못 들은 건지, 못들은 척하는 건지

등록 2012-10-26 15:43수정 2012-10-26 15:46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들이 많이 쓰는 방어기제 ‘부정’

영준이는 집안의 귀염둥이이다. 열 살짜리 형아와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서인지 부모의 사랑은 물론 성격이 순한 형까지도 영준이가 원하는 것이면 아끼지 않고 양보한다. 그래서인지 영준이는 장난이 심하고 고집이 세다.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따르지 않고, 무슨 일이든 자기가 정하는 대로 되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영준이를 데리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가족들은 영준이가 언제 떼를 쓸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그런데 최근 영준이 엄마는 색다른 고민에 빠졌다. 늘 그러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부르면 못 들은 것처럼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심지어 옆에까지 가서 말해도 돌아보지 않아 청력에 이상이 있나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좋아하는 만화도 잘 보고 스마트 폰으로 게임도 잘 하는 모습이라 소리가 안들리는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못 듣는 건지,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영준이 엄마는 감을 잡을 수 없다.

아이가 커 가면서 간혹 이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분명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고, 평소라면 금방 돌아보고 달려올 텐데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하던 일에 열중하는 경우가 있다. 못 들을만한 거리도 아니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아닌데 혹시 귀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은근히 마음이 쓰인다. 아이 때 흔히 걸릴 수 있는 중이염이 청력을 손상시키기도 하는데 아이 스스로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하니 부모로서는 중요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는 아이가 대부분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 아니면 특정한 말에만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 되면 엄마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의 음조나 톤만 들어도 그 다음 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아빠가 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오셨네.”. “이거 얼른 먹고 우리 놀이터에 갈까?”라는 말과 “영준아, 그만 놀고 밥 먹어야지.”, “얼른 씻고 자자. TV는 꺼야 돼.”라는 말은 굳이 끝까지 듣지 않아도 부르는 소리부터 다르기 마련이다. 특히 반복되는 일상의 문제라면 언제쯤 엄마가 무슨 말을 하겠구나 하는 어림짐작이 가능해지는 게 서 너 살 때부터 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좌절, 불안, 우울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이런 감정을 겪을 때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방어기제”라고 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기 위한 마음의 도구를 갖고 있다. 방어기제는 상당히 다양해서 수 십 가지에 이른다. 어른이 될수록 방어기제는 성숙해져서 유머나 이타주의, 승화와 같이 자신의 삶에 문제를 초래하지 않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방어기제가 거의 없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갖게 되는 방어기제 중 하나는 ‘부정’이다. 부정은 말 그대로 있는 현실을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고, 귀에 들리지만 듣지 않은 것처럼 반응한다. 다 보고 들으면서 “대답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요술을 부리는 것이다.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조심하지 않아 컵을 깬 아이에게 혹은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 벌 받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네가 했지?”라고 무서운 얼굴로 물어보면 자기도 모르게 “아니요”라고 대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부정이라는 방어기제이다. 정말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의 어른도 간혹 부정이라는 방법을 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아직 어린 아이들이 세련되게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 쓰는 방법이 부정이다.

이런 상황은 어른이 보기에 거짓말로 보인다. 분명 바로 전에 그 행동을 했는데, 아이가 하는 걸 여러 명이 보았기 때문에 발뺌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니오’라고 하는 그 상황은 아이가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를 발동하는 순간이다. 이 때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끝까지 추궁해서 자백을 받을 필요도 굳이 없다. 아이가 정말 무서워하는 걸 알아주고, 분노의 수위를 낮춘 뒤 적당한 꾸지람을 하면 된다.

듣지 못한 것처럼 반응하는 아이는 ‘지금 하고 있는 놀이를 중단하고 싶지 않아서, TV를 끄고 싶지 않아서, 씻고 싶지 않아서’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를 발동시킨 경우이다. 그런 아이에게는 일단 다가가서 부드럽게 부르는 게 좋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하지 못해야 아이가 주의를 기울이고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돌아보고 엄마에게 주의를 집중하면 그 때 분명하게 말하면 된다. 그러고도 못 들은 척 한다면 그 때는 손을 잡고, 장난감을 치우게 하거나 목욕탕에 데리고 가면 된다. 아이가 못 들은 척 할 때 그대로 넘어가면 싫거나 불편한 상황에서 못들은 척 하는 행동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몰론 좋아하는 만화의 주제가가 울리는데도 반응하지 않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부르는데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소아과에 데리고 가서 청력검사를 해보는 게 필요하다.

■ 새로 쓰는 육아 베이비트리 바로가기

조선미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성모병원 임상심리실, 성안드레아 병원 임상심리실을 거쳐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전문가 패널로 출연 중이며, <부모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마음 다치지 않게>, <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 특강> 등을 펴냈다.

이메일 : smc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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