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깐데 가족
끝은 새로운 시작, 오션월드의 추억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최고의 낭만주의자 혹은 최고로 긍정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헤르만(Herman Zapp)-깐데(Candelaria Zapp) 부부를 떠올릴 것이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사람들로 12년째 세계를 여행 중이다.
여행이라면 일상을 재충전하기 위한 휴식이나 놀이, 잠깐의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들에겐 여행이 일상이고 삶이다.
Somos los viajeros. 우리는 여행자들입니다.
이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이 말은 ‘우리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다르게 들렸다.
여행 가이드, 여행 작가, 여행 사진가 도 아니고 그냥 여행자.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회사에서의 직함을 내려놓은 지 오래되었고 우리가 낸 사진집도 잊혀지면서 누군가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나를 소개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10년간 세계일주 하면서 아이 넷 낳았어요.’
2년 전 여름, 포털에 뜬 기사 제목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여행’, ‘세계 일주’ 이런 단어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아르헨티나에서 알래스카까지 6개월 계획으로 길을 떠났던 부부가 4년이 걸려 알래스카에 닿았는데 여행을 그만두는 것이 아쉬워 10년이 넘도록 여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 아이를 넷이나 두었고 바로 며칠 전 한국에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어린 애들과 여행하는 가족을 많이 만났고 발리에서는 심지어 배꼽도 떨어지지 않은 갓난아기를 보았다. 동남아의 리조트에서 느긋하게 출산휴가를 즐기는 것도 괜찮겠네, 우리도 둘째를 낳으면 그래 볼까, 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길에 아이를 넷씩이나 낳고 10년간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는,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인지 호기심이 발동했고 만나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짧은 스페인어로 메일을 썼다. 우리 여행 사진이랑 가족사진을 첨부하고 우리도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 넘게 여행을 다녔고 아르헨티나에서 한 달 정도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적었다.
내가 보낸 메일을 못 봤으면 어떡하지?
바빠서 못 만날 수도 있어.
답장을 기다리며 가슴이 콩닥콩닥,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그러나 곧 우리 집에서 사나흘 머무르고 싶다는 답장이 왔고 메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그들이 왔다.
1928년산 그레이엄 페이지 자동차를 타고서!!!
차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눈에 봐도 일상의 도로가 아니라 자동차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클래식 카, 바퀴 휠이 나무로 되어 있고 냉난방도 안되고 와이퍼도 손으로 돌려야 하는 이 차를 타고 아르헨티나에서 알래스카까지 7만 킬로미터, 다시 아르헨티나로부터 2만 킬로미터,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를 한 바퀴 돌고, 뉴질랜드를 거쳐 우리나라, 여기 우리 집까지 온 것이다.
그날 헤르만 부부가 서울대에서, 아르헨티나 대사관이 마련한 자리에서 자신들의 여행에 관한 강연을 했고 강연장에서 만나서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내 차가 먼저 출발하고 헤르만 차가 뒤따라 왔는데 퇴근길 정체가 시작되어 길이 막히는데다 주유소에도 들르고 최고 속도 60킬로로 달리는 그레이엄에 맞추다 보니 한 시간이면 될 거리를 두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나는 몹시 흥분했고 깐데가 내 차 조수석에 타서 스페인어와 영어로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당시 두 돌이 안 된 해람이가 차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최대 한 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좀 참아주셨으면 하고 바랐지만, 역시나 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카시트에서 울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관심을 끌어 보았으나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절박한 마음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내 노래가 끝나자 깐데가 이어서 노래를 불렀다.
맥아저씨 농장에 이야이야호~ 하고 노래를 부르니 깐데가 같은 노래를 스페인어로 불렀고 이어서 In English! 라고 누군가 제안을 해서 Old MacDonald had a farm으로 시작하는 영어 노래를 함께 불렀다.
깐데가 내는 동물 소리에 잠깐 반응을 보였지만 해람이가 울음을 뚝 그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람이는 몹시 졸렸고 하루종일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냄새, 새로운 자극에 지쳐 있었던 터라 원하는 것은 꼭 하나, 차를 멈추고 엄마가 안아서 재워주는 것뿐이었으리라.
해람이 울음을 멈추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깐데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아이 어를 때 쓰는 온갖 소리 들을 내면서 첫 만남의 어색함을 잊고 한결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우리의 스물네 평 빌라에서 두 가족이 함께 지냈다.
내게 서울의 유명한 관광지를 묻지 않았고 나도 여기가 유명하다, 여길 꼭 가 봐야 한다, 이것은 꼭 먹어봐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이드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다.
주말 내내 헤르만 가족은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마련한 공식 행사에 다니느라 바빴고, 틈틈이 우리랑 올림픽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보고 음식도 같이 해 먹었다. 아침마다 내가 식빵을 구우면 헤르만이 달걀을 넣어 토스트를 만들었다. 나는 불고기, 잡채 같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깐데에게 생크림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무더운 날씨에 좁은 집에서 두 가족이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스위스에서 마리안의 집에서 지낸 일을 떠올렸다. 마리안은 남미에서 만난 스위스 친구, 볼리비아에서 2주 같이 지낸 인연으로 우리가 스위스에 갔을 때 집으로 초대해 주었다. 손님 방이 따로 없어서 동생들이 쓰는 이 층 침대를 우리에게 내어주었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동생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캠핑용품을 챙겨서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온 가족이 우리를 기쁘게 맞아 주었고 버거킹과 맥도날드를 전전하던 우리에게 마리안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따뜻한 음식은 가슴이 뭉클하도록 고마웠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찍은 인증샷보다 이렇게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의 기억이 오래 남는 법이다.
깐데 Candelaria와 여행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통하는 점이 많았다.
'파나마에 갔을 때 ‘보까 델 또로(Boca del toro)에도 갔었어?'
'그럼!'
'별로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데...'
'그래서, 정말 좋았어. 파도가 꽤 높은 해변이었는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더라구.'
'우리가 갔을 때도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Nobody on the beach! 동시에 같은 단어를 내뱉으며 한참 웃었다.)
'배를 타고 작은 섬들을 돌아보는 것도 했어?'
'그 작은 배 말하는 거지? 그거 타고 다니면서 스노클링 했었지. 바닷속이 정말 멋지더라.'
같은 장소를 여행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
유명한 관광지보다 소박하지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더 좋아하는 점에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코스타리카보다 니카라과가 더 좋더라는...)
첫째 팜파(Pampa)와 둘째 테외(Tehue)는 병원에서 낳았지만 셋째 팔로마(Paloma)와 넷째 왈라비(Wallaby)는 산파의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가운데 수중 분만을 했단다. 나도 아루와 해람이를 조산원에서 낳았는데! 갓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리고 아이가 어릴 때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에 둘러싸여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엄마들끼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 명의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큰아이들은 제 뜻대로 하고 싶어하고 아가들은 불편하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 일쑤다.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학교를 안 보내도 되나?'
사람들은,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단다.
어릴 때부터 좋은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돈 많이 버는 전문직을 갖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보면 이 아이들의 미래는 심히 걱정스럽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자(El Viajero)인 이 아이들은 자유롭게 꿈꾸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누리고,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얻지 못하는 것들을 충분히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날씨가 너무 덥지? 끈적끈적하고...’
에어컨이 없는 그레이엄의 조수석에 탔을 때 무더운 날씨를 탓하며 내가 말했다.
헤르만이 ‘덥지만 추운 것보다는 나아. 자연 바람 에어컨이 있잖아.’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랑 함께 지내면서 헤르만이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perfect!'였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고 작은 호의에 고마워하고, 매사에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며 ‘perfect!'를 외쳤다.
고장 나면 부품을 구하기도 어려운 클래식 카를 타고 안데스 고원을 넘고 아마존 강을 건너고 게릴라의 위험 속에 에콰도르-콜롬비아 국경을 넘고, 혹한의 알래스카, 그리고 남반구 땅끝 우슈아이아까지, 네 명의 아이와 함께! 십 년간 여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인가, 비자 때문에 입국이 거절될 때도 있었고 차가 고장 나서 꼼짝할 수 없을 때도 있었고 만삭에 아이 낳으러 병원에 갈 돈이 없어 막막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 지낸 일주일, 나는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무한 긍정의 힘을 보았다.
오션월드 가려는데 같이 갈래?
지난달에 언니 전화를 받고 나는 헤르만 가족과 함께 지낸 2년 전 여름을 떠올렸다.
헤르만 가족은 주말에 무척 바빴다. 이태원처럼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주최한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 책과 기념품을 팔았다.
생각보다 책이 많이 팔렸다며 무척 기뻐했던 어느 늦은 저녁, 우리는 옥상에서 아사도 (Asado: 아르헨티나 BBQ) 파티를 열었다. 헤르만과 깐데는 대사관의 공식 행사가 끝났다며 홀가분해했고 책이 많이 팔려 기분도 좋아 보였다.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헤르만이 물었다.
워터파크를 갈까 하는데 어디가 좋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은 집에서 가깝고 규모가 작은, 어린아이들이랑 놀기 좋은 경기도 이천의 물놀이장이었다. 우리가 물놀이를 좋아해서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던.
내가 그곳의 이름을 말하자 헤르만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오션월드가 최고라던데.’ 라며 오션월드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아, 그래, 오션월드! 이름은 들어 봤지만, 섹시 아이콘으로 불리는 여자 가수가 광고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지만 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어차피 아이들이 어려서 슬라이드를 타지도 못할 텐데 비싼 돈 내고 사람 많은 데서 고생할 필요 있나 싶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둘러 인터넷에서 할인 티켓을 구하고 천호역에서 출발하는 무료 셔틀도 예약했다.
아침 일곱 시에 출발하는 셔틀을 타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택시 두 대에 나눠타고 천호역으로 향했다. 여름방학이라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평일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이른 시간에 천호역에서 대여섯 대의 셔틀에 사람이 꽉 차는 것을 보며 놀라고 도착해서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버스에서 수많은 사람이 꾸역꾸역 내리는 모습을 볼 때는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헤르만도 Amazing Korea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일찍 가면 워터파크에 우리만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나.
현지인인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은 과연! 무서운 인파에 굴하지 않고 실내외를 누비며 가장 신 나게 놀았다. 불평하고 짜증 내는 법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왜 꼭 구명조끼를 입어야 하는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불만을 털어놓은 것 말고는. 중간에 테외가 없어졌을 때에도 허둥지둥 당황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야 미아 방송을 부탁했고 다행히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테외를 알아보고 우리에게 데려다 주었다.
해람이는 인파와 소음에 겁이 났는지 내게 착 들러붙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파라오 모습을 한 커다란 물통에 물이 가득 차는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사실 헤르만 가족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팜파와 테외는 헤르만과 함께 파도풀과 익스트림 유수풀, 슬라이드를 신 나게 타러 다녔지만, 해람이처럼 아직 인간이기보다는 침팬지에 가까운 팔로마와 왈라비는 깐데 곁에서 까르르 웃고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징징거리며 떼를 썼다. 눈앞의 상황에 허덕이지 않는 깐데의 정신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해람이와 왈라비가 낮잠에 빠져들자, 깐데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슬라이드를 타자고 했다.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싶었지만 나도 좀 놀자, 뭐 이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는데. 한 시간 줄을 서서 단 몇 초의 아슬아슬함에 몸을 맡기면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난 몇 년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고 살았던 나의 에고가 확 깨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워터파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설 연휴를 맞아 시댁 가는 길에 캐리비안 베이를 들렀다가 길이 엄청나게 막혀서 고생한 일, 아루를 임신해서 배가 잔뜩 불러서도 지칠 때까지 놀았던 일,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행의 시간들이 나를 일깨웠다. 해가 뜨고 지는, 매일 반복되는 풍경에서도 특별함을 찾아내는 여행의 시간, 여행할 때 나는 부족함과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 그중에서 가장 멋지고 좋은 것을 찾아낸다. 나의 오감은 깨어 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무위의 순간에도 코끝에 닿는 냄새와 아련하게 귀를 두드리는 소리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나도 이들처럼, 이 도시를 언제 다시 찾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여행자가 되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순수하게 열린 마음으로 즐겨 보기로 했다.
올해 여름,
해람이가 이제는 커다란 물통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울지 않았다.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했다. 잔뜩 긴장하고 코알라처럼 내 몸에 붙어 있던 아이가 스스로 즐길 줄 알게 된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제 키보다도 훨씬 깊은 물 속에서 발을 저으며 ‘물 속 자전거를 탄다’며 즐거워했다. 유수풀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엄마, 세상의 끝엔 뭐가 있어?
워터파크를 나와 숙소를 향해 걷다가 아루가 물었다.
아루는 요즘 제 주변의 공간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가까운 거리의 놀이터나 친구 집을 다녀오기도 하고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장서서 길잡이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제가 가늠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잘 모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글쎄, 세상의 끝? 세상의 끝이 어디일까? 예전에 아빠랑 여행할 때 남미 대륙의 땅끝, 우슈아이아(Ushuaia)라는 곳을 가 본 적은 있었지.
땅끝? 땅끝에는 뭐가 있었어?
항구에 배들이 서 있었어.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그 배들을 보니까 여기가 진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중에는 거기보다 더 남쪽, 남극대륙으로 가는 배들도 있었을 거야.
두어달 전에 헤르만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두바이에 머무르고 있으며 남아프리카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원래 그들은 아시아에서 2년을 지내고 그 후에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계획대로라면 아시아에서 2년을 보낸 지금.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 그들은 계속 더 나아가기로 했고 다음 목적지는 아프리카라고 했다. 계획했던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에서 또 다른 여행을 결심한 것이다. 8년전, 알래스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은... 모든 것은 시작점이 있지만, 끝은 또 다른 것의 시작일 뿐이다.
헤르만 가족의 블로그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짤막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세상에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 어떤 의미로는 어디든 끝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의 끝이 어디일까,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나는 오늘도 이런 생각에 가슴이 콩콩 뛰곤 한다.
* 이 글은 베이비트리(www.ibabytree.co.kr)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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