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이는 친구 서진이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윤찬이 엄마와 서진이 엄마는 거실에서 차를 마신다. 열린 문으로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이 보인다.
“싫어! 난 이거 갖고 놀 거야.” 서진이가 윤찬이 손에 있는 장난감을 달라고 하는 것 같다.
“나도 그거 갖고 싶다고.”
“넌 그거 있잖아.... 어?”
서진이가 윤찬이 손에 있는 자동차를 획 뺏었다. 자기의 빈 손과 서진이 손에 있는 자동차를 번갈아 보던 윤찬이는 잠깐 울상을 짓는다. 그렇지만 소리 내어 울거나 다시 자동차를 뺏거나 하지는 않는다. 잠시 후 윤찬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른 자동차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 자주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그럴 때마다 윤찬이 엄마는 속이 상한다. 몇 번 너도 같이 때리고 뺏으라고 했지만 아이는 속상하지도 않은지 번번이 장난감을 뺏기고 만다.
유치원 아이들이 놀 때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 아이는 뺏고, 다른 아이는 뺏기고, 뺏기는 아이는 뺏기는 일이 많고, 뺏는 아이는 뺏는 경우가 훨씬 많으면서 뺏겼을 때는 가만히 있지 않고 상대방을 때리거나 다시 뺏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뺏는 아이의 엄마는 자기 아이가 주장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뺏기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자신감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전자보다는 후자인 경우 걱정이 훨씬 더 많다. 속상한 마음에 아이를 붙들고 “넌 바보야? 왜 못 때려?”라고 해보지만 아이를 한 번 더 울리는데 그칠 뿐 효과는 없다.
어린 아이들이 친구와 놀면서 보이는 뺏고 뺏기는 모습은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다!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기질이 유순한 아이는 아기 때부터도 환경변화에 그리 예민하지 않고, 좌절에 대한 반응이 강하지 않으며, 공격적인 행동을 잘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엄마에게 수월한 아이다. “이건 나중에 먹자. 지금은 자야 할 시간이야. 그 옷은 너무 더우니 이걸로 입자.” 등 수시로 하는 엄마의 지시에 별 저항 없이 순순히 따른다. 그런 것들이 특별히 좌절로 느껴지지 않고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매사에 까탈스럽고 격한 반응을 보이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격적인 행동으로 반응하는 아이들도 있다. 먹고 싶은 간식을 주지 않는다고 자지러지고, 엘리베이터 층별 버튼을 엄마가 먼저 눌렀다고 펄펄 뛰고, 동생이 자기 물건 가까이 오기만 해도 때리려는 제스추어를 보인다. 이런 두 아이가 만나면 ‘만날 뺏기고, 만날 당하기만 하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
기질이 유순한 아이는 그 장난감이 아니라도 괜찮고, 다른 걸 갖고 노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는 원하는 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 너무 커서 격한 행동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 두 아이가 학교에 가면 두 아이의 상황은 역전되기 쉽다. 유순한 아이는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고, 또래들과 잘 협동하며, 다른 아이를 잘 도와주고, 규칙을 잘 지켜 인기 있는 아이가 된다. 반면 좌절을 참지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던 아이는 몸만 조금 움직여도 규칙이 적용되는 학교생활이 힘들게 느껴지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모둠활동이 괴롭기만 하다. 예전의 성질대로 행동하면 또래 아이들의 원성이 쏟아지며 선생님의 지적도 나에게만 향하는 것 같다.
뺏기는 아이는 ‘자신감 없는 아이’가 아니라 미래의 ‘협동을 잘 하고 인기 있는 아이’로 커나갈 아이이다. 아이가 뺏기고 오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자! 속상해 하면 안아주고, “저걸 갖고 놀고 싶었는데 속상했구나.”라고 말해주면 되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면 “이거 갖고 놀까?”라며 주의를 환기시키면 된다.
글 조선미
[베이비트리 다른기사보기] 왼손잡이 우리 아이 페친에게 상담해보니
<한겨레 인기기사>
■ 고래 뱃속 ‘새끼 괴물’ 정체 180년만에 밝혀졌다
■ 처음엔 노숙인의 범행이라더니 이제는 가출 10대가 ‘진범’이라고…
■ 목에 밧줄을…재난 방송 아닌 종편의 “자해 방송”
■ 늘 뺏기는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서 일까
■ 분노 쌓는 절망은둔자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 김성근, 한화 감독 안 간다
■ [화보] 태풍 볼라벤 북상으로 전국에 피해 속출
한겨레 자료사진
■ 고래 뱃속 ‘새끼 괴물’ 정체 180년만에 밝혀졌다
■ 처음엔 노숙인의 범행이라더니 이제는 가출 10대가 ‘진범’이라고…
■ 목에 밧줄을…재난 방송 아닌 종편의 “자해 방송”
■ 늘 뺏기는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서 일까
■ 분노 쌓는 절망은둔자들 “죽고 싶다, 죽이고 싶다”
■ 김성근, 한화 감독 안 간다
■ [화보] 태풍 볼라벤 북상으로 전국에 피해 속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