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학교폭력이 줄어든 반면 아동학대 범죄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학교나 돌봄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비대면과 에스엔에스(SNS)를 이용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청소년 마약 범죄도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14일 <한겨레>가 대검찰청에 요청해 받은 최근 5년치 아동학대 등의 범죄 통계를 보면, 지난해 ‘아동학대 사범’으로 입건된 이들은 8801명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4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5년 전 2016년 4580명에 견줘 2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특히 올해 1~5월까지 접수된 아동학대 사범은 5572명으로 2016년이나 2017년의 한 해 전체 건수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학교폭력 사건은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학교폭력 사건으로 접수된 이들은 1만2607명으로 전년 대비 17.4% 감소했다. 2016년 1만4418명이던 학교폭력 사범은 2017년 1만5291명, 2018년 1만5746으로 꾸준히 증가한 뒤, 2019년 1만5272명으로 소폭 감소세를 보이더니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올해 감소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5월까지 접수된 학교폭력 사범은 3380명으로 한 달 평균 676명을 기록했다. 최근 5년 동안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해 한 달 평균 학교폭력 발생 사범은 1050명이었다. 35% 이상 급감한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또 하나의 특징은 ‘19살 이하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검이 최근 발간한 ‘2020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지난해 청소년 마약사범은 313명으로 전년(239명) 대비 31.0% 증가했다. 2016년 121명이었던 것과 견주면 4년 사이 158.7%나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집 밖의 범죄가 집 안으로 옮겨왔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아동·청소년들이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 등으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특정 허가를 받아야 접속할 수 있는 이른바 ‘다크웹’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청소년도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마약 구매를 쉽게 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최근 공판 추세를 살펴보면, 학교폭력이나 주취폭력 등 집 밖에서 시비가 일어 발생하는 사건은 줄어든 반면 아동학대나 마약 범죄 등 집 안이나 직접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일어나는 범죄가 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또 다른 검사는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아동들이 집안에서 학대를 받아도 외부에서 모르는 경우가 있고 고립된 상태로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더 큰 피해가 생기고 있다”며 “수사기관과 정부, 지방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고위험 가정을 찾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소년 마약 범죄에 대해서도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소년도 손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유통도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져 너무나 쉽게 범죄에 노출되는 현실”이라며 “외국 서버를 기반으로 한 마약 거래 문제는 국제 공조수사가 절실한 분야”라고 덧붙였다.
아동보호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방정부 차원의 보호시설 확충과 이웃들의 적극적인 신고, 피해 아동 전수조사, 의료지원 등을 통해 아동학대 피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아동학대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진희 변호사는 “학교나 어린이집 등 제3자에 의한 학대가 발생하면 친부모 등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지만 친부모나 양부모, 가정위탁에서 발생하는 학대는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모가 아이를 유기·방임하지 못하도록 의료기관이 출생신고를 곧바로 하게 하거나, 이혼할 경우 친권·양육권자를 철저히 관리 감독하고, 영유아 보육수당을 받을 때 부모를 상대로 학대 방지 교육을 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아동학대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 아동을 신속하고 적절히 분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정인이 사건’ 등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신고·치료·분리·수사가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24시간 운영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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