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일인 7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제2동 제1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7 재보궐선거 결과는 뭐라 해도 야당의 ‘압승’이 아니라 여당의 ‘참패’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여당의 패배는 세대, 지역, 계층을 크게 가리지 않았다.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을 몰아줬던 민심이 불과 1년 만에 이토록 무섭게 돌아선 데는 직전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었던 이들이 기호 1번을 외면하거나 기권한 이유가 컸다. 스스로를 ‘민주당 지지자’였다거나 호감층이었다던 70여명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적잖은 이들이 “이번처럼 고민 많았던 선거가 없었다”고 말한 이유에서 이번 선거의 민심을 가늠할수 있었다.
부동산, 20대 남성 등 이번 선거에 대한 분석들이 여러가지 나오지만 <한겨레>가 8일 만난 이들 가운데에는 이번 선거에 임한 여당의 태도를 꼬집는 이들이 많았다.
직장인인 윤아무개(40)씨는 “심적으론 민주당 지지하지만 이번 선거에 당규 고쳐가면서까지 후보를 낸 점에 실망했다. 게다가 네거티브 폭로전으로 치닫고 1년 임기에 이루기 힘든 공약들이 남발되는 모습이 여야 모두에서 보이니 솔직히 여당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시 직장인인 김아무개(50)씨는 “캠프 꾸릴 때 제대로 사과했어야 하는데 결국 등떠밀린 사과 하지 않았나“며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용산공원 의자 어디에 박원순 이름을 새겼으면 한다는 발언도 실망했다. 86세대가 국민의힘과 지향은 다르지만 같은 꼰대구나 싶고 처음으로 불참을 고민한 선거였다”고 털어놨다.
39살 김아무개씨는 “재난지원금 10만원 공약에 충격먹었다. MZ세대가 즉시적인 보상을 원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오산이다. 선거에서 이겨보겠다는 생각만 있고 어떻게 서울을 발전시키겠다는 모습이 없었다”고 말했다. ‘매월 5기가 데이터 제공’ 같은 청년들 공약에 대해선 “반장선거에서 당선되면 햄버거 쏘겠다는 말 아니냐. 청년들을 무시한 느낌”(대학생, 22)이란 말도 나왔다.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 왜 2번을 찍냐며 한심해하는데 왜 1번을 찍어야 하는지 설득을 해야지 비판만 하면 뭐하나. 그래도 2번보다 1번이 낫지라는 이유로 더는 표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는 질타도 있었다.
단순히 이들의 지적은 이번 선거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선거 의미도 알고 박근혜 정권 겪어봐서 걱정도 되지만, 솔직히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삶의 질이 바뀌었나? 자기들 부동산은 깨알같이 챙기고 그러면서 역사인식이 어쩌고, 샤이진보가 어쩌고 하길래 기함했다”고 40대 여성 박아무개씨는 비판했다. 이번에는 2번을 찍었다는 자영업자 장아무개(44)씨는 “오세훈이 잘한다는 게 아니다. 이번 정부가 너무 못했다. 나도 촛불집회 매번 나갔던 사람이다. 근데 조국 사태 봐라. 윤석열 총장 본인들이 세워놓고 자신들 수사하니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고 말했다.
50대 직장인 김아무개씨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돌아선 건 오세훈씨나 박형준씨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기 욕망에 충실한 거짓말쟁이’보다 ‘자기가 옳다고 잘난척 하다 호박씨 까는 사람들’이 더 싫을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들은 “국민이 보기엔 여야가 부동산 반칙과 특권 면에선 본질적으로 같으며 더 가증스럽고 용납이 안되는 것은 여권의 위선적 행위와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는 야권을 타격한 게 아니라 여권에 대한 분노와 심판 의지만 키운 것 아닌가”라는 강세현 부산 신라대 교수의 지적과 맞닿아있다.
‘부동산’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송파구에 사는 권아무개(36)씨는 “결혼하며 대출을 끼고 집을 샀는데 보유세 부담이 커졌다. 주변 전월세 사는 친구들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문제가 해결 안되니 정부가 뭐하나 싶더라. 내 부담이 늘더라도 문제가 해결이 되는 조짐이 보여야 지지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동작구에 살면서 강남 이주를 희망하는 ㄱ씨(40)는 기권했다. “민주당은 못 찍겠고, 오세훈도 못 찍겠더라. 생애주기를 맞춰 거주지를 옮기려는 자연스러운 필요가 일순간 ‘적폐’가 됐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투표소에 들어가 그래도 민주당을 찍거나, 결과를 보고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 또한 많았다. 마포구에 사는 ㄱ씨(43)는 “20대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그가 떠나는 과정에서, 기득권에 대한 반발심 같은 걸 갖게 됐다. 그나마 대안이던 정의당도 자멸한 것 같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1번을 찍었다. 선거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이 후보 냈다고 비판하는데 실패한 시장인 오세훈이 다시 나오는 것 또한 코미디 아니냐. 다만 뒤로 갈수록 네거티브공세가 커진 건 불만이었다”고 말했다. 40대 여성 ㄱ씨는 “난 대통령 믿고 집 판 사람이다. 그 집이 2.5배 올랐다. 친구들이 한강 가야 할 사람이라 말할 정도다. 그래도 자기 경제논리만 갖고 투표를 할순 없지 않나. 선거가 왜 LH나 부동산 같은 문제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하나”고 비판했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언론과 포털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처절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공통된 것이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정아무개(40)씨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오세훈 시장이라니 허탈하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게 정신차리라고 시민들이 외치는 호통”이라고 말했다. 40대 여성 ㅅ씨 또한 “참담하다. 180석으로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번 결과가 옐로카드가 아니라 레드카드가 될수도 있을 것 같아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의 질문에 민주당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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