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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미얀마 군부가 공개 수배한 소모뚜 “보람이죠, 제가 위협이 된다니”

등록 2021-04-02 23:24수정 2021-04-03 18:04

[토요판] 이란주의 할 말 많은 눈동자
(16) 소모뚜

미얀마 군부-문민정부 권력공유 5년
시민들, 군부 떼어버리려 ‘안간힘’
청년들이 총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면 쪽팔리죠

인천 부평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개소
노동문제와 이주자 인권문제에 집중
2년간 돌려받은 임금총액 15억원 달해

쿠데타 저항으로 시민불복종운동 전개
회원 400여명 추가모금과 시위에 동참
군부는 이재명 지사 만났다고 수배령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일러스트레이션 순심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운영위원장인 소모뚜(46·남)는 군부와 문민정부가 권력을 공유했던 지난 5년을 화장실에서 똥내 맡으며 밥 먹은 기간이라고 말했다. 지금 미얀마 시민들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빠는 군부를 떼어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나라 안팎에서 간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지키려 만든 센터

미얀마로 송금하려던 중에 쿠데타 소식을 들었어요. 한국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미얀마에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려고 돈을 모았거든요. 이 돈 보내면 군부가 가로채겠구나 싶어 일단 멈추고 상황을 살폈습니다. 군부는 주요 인사들을 빠르게 구금하고 정부를 장악했어요.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당이 크게 승리하자 군부의 권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여 순식간에 총칼을 빼든 것이죠.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날들이 벌써 두달이나 흘렀습니다. 초기 미얀마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리고 행진 시위를 벌였습니다. 군부에 진압 명분을 주지 않으려고 평화를 지키려 애썼지요.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군경은 시민들 가슴에 총구를 들이댔습니다. 거리는 피로 물들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500명이 넘는답니다. 매일 절절 끓는 심정으로 그런 소식을 듣고 있어요.

정말 놀라운 것이, 청년들이 총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2007년 사프란 항쟁 당시 총소리에 시위대가 다 흩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은 너무도 놀랍고 가슴 아픕니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목숨을 거는데 우리도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면 쪽팔리죠.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이 ‘독재타도위원회’를 꾸렸어요.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중년들과 새롭게 들어와 일하거나 공부하는 청년들이 같이 뭉쳤어요. 나이 든 세대는 대개 1988년 민중항쟁 때 거리를 달렸던 경험이 있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관련 활동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청년들은 비교적 평화롭던 90년대 말과 2000년대에 태어나 민주주의를 경험하며 성장한 이들이고요. 터져 나오는 청년들의 분노가 흩어져 사라지지 않도록 저항을 조직하고 집회·시위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미얀마대사관과 무관부 앞, 군부 쿠데타의 뒷배라고 의심되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청년들이 항의 활동을 합니다. 코로나 상황이라 많은 인원은 안 된다고 해서 주변에 흩어져 있다가 돌아가며 참여합니다. 평소 작은 일을 함께 하며 성장한 청년들이 이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살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왔어요. 여러 시도 끝에 2년 전 인천 부평에 ‘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이하 센터)를 열었습니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문제와 이주자 인권 개선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그 전에도 우리는 서로 결속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어요.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미얀마공동체를 비롯해 지역별 공동체, 민족별 공동체가 다수 있습니다. 그런데 늘 목마른 것은 숱하게 발생하는 노동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도 상담을 제공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역시 언어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요. 먼 지역에서 우리 센터로 도움을 요청하는 이에게 가까운 지원기관을 소개해주면, 노동자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거기에도 미얀마 사람이 있나요?’ 거리가 멀어도 미얀마어로 말할 수 있는 곳에서 상담하기를 원하는 거지요.

우리 센터는 주로 임금체불 문제에 집중합니다. 지난 2년간 노동자들이 우리 센터를 통해 돌려받은 임금 총액이 약 15억원에 달해요. 센터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미얀마인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으로 받은 상담신청서를 분석하고 노동자와 1차 상담을 해서 문제를 파악합니다. 근거자료를 확보해서 번역하고 그 자료를 노무사에게 넘겨주지요. 활동가는 매일 수십개나 되는 단체대화방을 드나들며 노무사와 노동자 간의 대화를 통역하여 상담·진정·조사·합의 등 사건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요. 이런 과정은 문제를 좀더 쉽게 해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용허가제’라는 엄격한 제도에 눌려 꼼짝도 못 하던 노동자들이 자기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해요. 이게 무척 중요합니다.

센터 운영비는 회원 400여명이 내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합니다. 센터가 회원들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면 상담지원을 받은 이들의 대다수가 비회원입니다. 회원들은 자신이 낸 회비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도와줘서 좋은 일이 생겼어.’ 그러면서 회원 수가 조금씩 늘어나지요. 회원들은 단체대화방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실시간으로 상의합니다. 이 대화방에 지금 237명이 들어 있는데, 무슨 얘기가 오가나 한번 볼까요? ‘이거 뭐예요? 나한테 문자 왔어요.’ ‘사장님이 이런 말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여기 사인해달라는데 사인해요?’ 정신없이 톡이 올라오네요. 활동가가 자기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고 정보를 찾아가며 모든 질문에 답해줍니다. 다 답하기 힘들 때는 저도 참여해서 지원합니다. 센터가 열어놓은 에스엔에스(SNS) 페이지에는 2만명 넘는 사람들이 가입해서 노동·건강·체류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합니다. 센터는 한국어, 컴퓨터, 노동법, 성평등 같은 주제로 강좌를 열고,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했어요. 노동자들이 지식과 기술을 넓히고 더 좋은 삶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뜨겁고 열정적인 연대

우리 센터가 소중하게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어요. 미얀마에 가뭄,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있을 때 모금해서 현장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도 그랬습니다. 온 힘을 기울여 돈을 모아 진단키트를 보내고 가난한 이들에게 방역용품과 먹을거리를 지원했어요. 이런 일은 미얀마 현장 시민단체와 연결해서 실행하면서, 지원금의 흐름과 활동내용을 빠르게 공유합니다. 자기가 낸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바로 알 수 있으니 자긍심이 매우 높아져요. 귀환 후에 현장 활동에 결합하는 이들도 있고요. 이런 실천을 통해 청년들은 조직의 중요성을 느끼고, 사회운동·정치운동을 배웁니다.

센터 회원들은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친군부 성향도 있고, 엔엘디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주의 성향도 있어요. 그래서 센터는 가급적 정치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미얀마 이주노동자의 복지와 인권 증진이 센터 운영 목적이니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센터를 세우고 운영하는 주축에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런 특성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2015년 미얀마 총선 당시 한국에서도 부재자 투표를 했는데, 그때 우리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 장려 운동을 했어요. 투표인 명부를 확인하는 작업, 서로 독려하며 투표 참여 운동을 했고 결국 좋은 결과를 얻어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기와 희망이 가득했어요.

쿠데타에 대한 저항으로 미얀마 내부에서 시민불복종운동(CDM), 즉 파업 투쟁이 광범위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파업에 공무원들이 참여해야 군부의 행정력을 흔들 수 있는데, 파업에 동참하는 공무원은 해고당하고 관사에서도 쫓겨나니 의지가 높아도 망설일 수밖에 없어요. 시민들은 곧 알아차렸어요. 공무원을 도와야 우리가 승리한다. 그래서 파업 공무원들 생계를 돕자는 모금 운동이 일어났어요.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요. 철도노동자들이 관사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하니, 자기 집에 빈 방이 있는 이들은 어서 오라 손짓하고, 빈 땅이 있는 사람은 서둘러 임시주택을 짓기도 했어요.

우리 회원들은 백신 지원금을 시디엠 기금으로 보내자 결의하고 추가 모금을 했습니다. 여러 조직과 연대하는 ‘독재타도위원회’를 만들어 저항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노동자들이 모금과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감동 또 감동입니다. 자기 한달 월급을 몽땅 넣기도 하고, 승리할 때까지 매달 100만원을 내겠다고 결의하는 이도 있어요. 그 돈이 어떻게 번 돈인지 아니까 눈물이 납니다. 욕먹어가면서 회사에 휴가 내고 시위에 나왔다는 말에 안쓰러워 또 눈물이 나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센터를 포함해 한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크고 작은 미얀마 그룹이 거의 다 연결되어 협력하고 있어요. 힘을 합쳐 군부와 싸우고 또 한국 사회에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외 그룹 중에 집회와 시위를 조직해서 직접 저항 활동을 하는 것도, 후원금을 모아 보내는 것도 한국 그룹이 으뜸입니다. 일상 활동으로 젊은이들의 성장을 도운 것이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우리 호소에 이토록 뜨겁게 호응하시는 한국 시민들 덕분이기도 하고요. 한국 시민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결성한 ‘미얀마 민주주의 네트워크’에서는 매일 뜨겁고 열정적인 연대를 경험합니다. 이런 활동은 실제 군부에 큰 압박이 되고 있어요. 군부는 시디엠 자금을 보낸 것을 이유로 저와 엔엘디 한국 대표 얀나잉툰을 공개수배하더니, 얼마 전 이재명 경기도지사님을 만나 미얀마 상황을 나눈 것을 이유로 또 수배를 했어요. 보람이죠, 우리 활동이 그만큼 위협이 된다는 거잖아요.

소수민족 아픔 외면한 역사 반성

투쟁 과정에서 우리는 아픈 일을 떠올렸어요. 공식적으로 135개 민족이 살고 있는 미얀마는 민족 간 분쟁으로 무겁고 힘겨운 역사를 겪어왔습니다. 민주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17년,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군부의 학살과 방화로 큰 고통을 당했어요. 그 일로 70만여명이 방글라데시 등 다른 나라로 피난해서 난민이 되었고요. 그 일에 대해 다수자인 버마족은 상당히 냉담했습니다.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민주 정권을 흔드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로힝야족이 처참하게 압살당하는 것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135개 소수민족에 속하지 않는다, 군부가 흔들고 국제사회가 비난하는 우리 지도자를 지키자’며 운동을 전개했어요. 로힝야족을 미얀마가 공식 인정하는 소수민족에 포함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복잡하게 엉킨 역사를 되짚고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당장 도륙당하고 쫓기는 이들을 외면한 것은 정말 큰 잘못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번 쿠데타를 겪으면서 우리가 무슨 짓을 했던 것인지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버마족 청년들이 말합니다. ‘이렇게 무자비하고 잔인한 군부인 줄 몰랐어요. 로힝야족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이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어요.’ 시위 현장에 ‘카친족부터 로힝야까지 탄압받은 모두에게 사과드립니다’라는 펼침막이 걸렸어요. 버마족인 한 유명 연예인은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렸어요. ‘이제야 소수민족들이 왜 버마족을 싫어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지금 우리 편에 서지 않은 아세안 국가들을 우리가 미워하는 것처럼 이들 소수민족들도 우리를 미워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자신에게 약속하자. 소수민족들, 로힝야족이 인권침해 당할 때 우리는 가만있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고.’

고통스럽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로힝야족 중에 ‘우리도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에스엔에스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이들이 있어요. 더 미안하고 아픕니다. 며칠 전 카렌족은 쿠데타 군부에 타격을 주기 위해 군부대를 공격했는데, 그 보복으로 마을에 비행기 폭격을 당했어요. 아기 안아 들고 아픈 노인 둘러업고 타이로 피난 갔는데 거기서도 오지 말라 밀쳐냈어요. 참담하고 고맙고…. 그동안 버마족의 지지를 받지 못한 소수민족들이 이렇게 함께 싸우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지도록 고맙고 미안합니다.

곧 시민군을 조직하고 소수민족 군대와 연합해서 군부와 내전을 벌이게 될 듯합니다. 잘 싸워 꼭 이겨야 합니다. 소수민족이든 누구든 미얀마에 사는 모두가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온전히 국민의 힘으로 이룬 민주주의가 아니면 언제든 뺏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은 군부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이제 똥냄새 안 맡고 밥 먹어야죠. 젊은 세대가 그 일을 해낼 거라고 믿어요. 부족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 젊은 세대를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일꾼. 국경을 넘어와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주민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 떠나온 사회와 살아내야 할 사회에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 말은 발화되지 못한 채 눈동자에 잠기곤 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 당사자 시점으로 전한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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