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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정권도 보수·진보도 아닌 천안함 생존장병 편이다”

등록 2021-03-21 14:33수정 2021-03-22 02:46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전역 뒤 첫 인터뷰
천안함 왜곡 “결국 정치 때문”
“군 안팎의 냉대와 홀대에 생존장병들 지쳐가”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비극은 하루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 2010년 3월26일 밤 9시22분, 4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생존자 58명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천안함 사건은 11년째 그 슬픈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한국사회를 표류 중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해석은 이념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렸고, 생존자에 대한 관심은 정치 지형에 따라 출렁였다. 그러는 사이 그날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은 잊혀갔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2018년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기획 기사를 통해 천안함 생존자들이 우리 주변에서 숨 쉬고 있으며,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설 땅이 없어 프랑스로 건너간 최광수씨(사건 당시 병장)는 “보수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는 말로 그 고통의 이유를 함축했다. <한겨레> 보도 이후 2년이 지나 그날 그 배에 타고 있던 또다른 한 명이 천안함 11주기를 앞두고 군을 떠나 사회로 돌아왔다. 최원일(53) 전 천안함 함장이다.

지난달 28일 전역한 그는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냉대와 홀대는 익숙해졌지만 우리 사회가 천안함을 잊으려고 하는 것이 두렵다”며 지난 11년 동안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최 전 함장이 2013년 이후 언론과 직접 대면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천안함이 북의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굳게 믿는다. 좌초, 이스라엘 잠수함과의 충돌, 내부 폭발 등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확신했다. 다만 그 의혹이 불거진 책임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대응 때문이었다고 짚었다.

최 전 함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 청와대의 첫 반응이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데 배가 생각보다 쉽게 부러질 수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처음 이렇게 시작을 하니 국방부장관은 청와대 눈치를 보고 참모총장은 장관 눈치를 보면서 누구도 북한 공격 가능성을 주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 전 함장은 사건이 왜곡된 것은 결국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심스럽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당시 이같은 청와대 반응에 대해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격이 벌어지고 남북 경색국면이 이어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맞아 찾아온 북한 조문단과 막후 접촉을 해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다 보니 북한의 공격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고 의심한다. 천안함을 선거에 활용한 것이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가 있었다. 천안함 사건이 정쟁의 대상이 되니 당시 정권에서는 서둘러서 5월20일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5·24’ 조치를 했다. 선거 일주일 전에 이런 행동은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반대 진영에서는 (조사 결과를) 인정 못 하게 된 것이다.”

극심한 갈등 속에서 천안함 생존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됐다. 최 전 함장은 “보수 진영은 나를 이용하려고 했고 진보 진영은 외면했다”며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를 떠나 젊은 생존장병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 진보가 어루만져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보수라면 천안함을 이용하지 말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게 예산을 들여 국방력을 강화하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정치권과 언론이)3월이면 생존장병들을 데리고 사진을 찍다가 4월이 되면 시큰둥한다. 현충일에 잠깐 반짝하고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된다. 이러니 대원들이 지치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도 선뜻 잡지 못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군대 안에서의 일관된 냉대도 생존장병들을 벼랑으로 더 몰았다. “함장이 죽었어야 너희들이 보상 받았다”, “졸다가 당했다”, “살아 온 애들은 창피할 줄 알아야 한다”, “최원일은 숨어다닌다”….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58명이 들어야 했던 말들이다.

최 전 함장은 아직도 천안함 직후 한 장군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는 최 전 함장에게 “너희 때문에 우리 부서가 매일 야근한다. (제2연평해전 때) 참수리 357함은 (생존장병에게) 배 청소도 시켰다. 너희는 다행일 줄 알아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이 벌어진 지 1년 반이 지난 2011년 12월 발령받은 경상남도 진해 해군교육사령부에서 그는 늘 식당 구석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등 뒤로는 “천안함 애들 때문에 골프도 못 치고 힘들다”, “술도 제대로 못 먹고 이게 뭐냐”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최 전 함장은 “함장이었던 나마저도 외면받고 살았는데 대원들은 어떻겠냐”며 “아픈데도 정신과 진료를 못 받는 대원들이 많은데 지휘관이 앞장서서 병원을 다녀오라고 지시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지금 군에 남은 현역이 24명인데 ‘서해수호의날’(3월 넷째주 금요일) 행사를 가고 싶어도 부대 일이 바쁘다 보니 눈치를 보고 있다. 차라도 한 대 대절해서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주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는 그날 그 바다에서 차가운 바닷물에 몸과 마음이 젖은 그대로 11년 동안 고통을 겪어 온 생존자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 전 함장은 “유공자 인정도 그동안 계속 잘 안 되고 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다만 조금 더 전향적으로 검토해서 천안함 생존장병들을 모두 유공자로 등록해주면 좋겠다. 실제 트라우마가 심각해 숨어지내는 대원들은 연락조차 잘 안 된다. 사건 후유증이 심각해 상태가 안 좋을수록 오히려 유공자 신청을 못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국가가 먼저 나서는 것이 바로 보훈이고 안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이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장애 상태가 되어 퇴직할 때 지급하는 상이연금의 문제도 지적했다. 천안함 생존자들은 전역을 할 때 상이연금 제도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최 전 함장은 “상이연금 제도가 있다는 것을 지난해에야 알았다. 생존장병 7명이 신청을 했는데 결과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과거 2년 치를 소급해서 주고 어떤 사람은 아예 소급을 안 해줬다. 형평성에도 안 맞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2018년 <한겨레> 보도로 ‘천안함 46용사’ 중 문영욱 중사가 직계가족의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에서 누락됐다는 사실이 8년 만에 드러난 것은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만 바라본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얼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최 전 함장은 “문 중사는 바로 내 옆 방에서 근무했다. 천안함 사건 일주일 전에 정박했을 때 대원들과 술을 한잔 했는데 그 자리에서 문 중사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아직 기억에 선하다”며 “문 중사의 유공자 누락은 국가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나라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에게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이 벌어진 3월 넷째주 금요일 열리는 서해수호의날 행사 역시 정치의 장이 아닌 추념과 기억의 날이 되길 바랐다. 최 전 함장은 “서해수호의날은 유족들과 생존한 장병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날 아닌가. 그런데 늘 이곳에 참석한 정치인들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정쟁의 대상이 된다. 지난해에도 생존장병들은 맨 뒤 구석자리에 앉아야 했고 헌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선거를 앞둔 이번 행사 역시 각자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정쟁의 대상으로 삼을지 진심으로 46용사를 추념하는 자리로 만들 지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역을 앞두고 몇몇 보수단체에서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 전 함장은 이런 제의을 모두 거절했다. “나는 정권의 편도, 보수나 진보의 편도 아니다. 유족과 생존장병의 편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진보건 보수건 천안함을 기억해주고 유족을 어루만져주는 누구와도 소통을 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것이 굳건한 진실이라고 믿는다. 여러번 극단적인 생각을 했지만, 스스로가 증거라고 생각해 “살아남아야 한다”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고 한다. 다만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들이 둘로 나뉘지 않기를 바랐다. 최 전 함장은 “폭침을 믿고 안 믿고는 더이상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안보만 생각하고 어떻게 나라를 더 잘 지킬 수 있을 지를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천안함 장병들에 대한 모욕은 되풀이되지 않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에서 배를 타고 육지에서 고통받으면서 내가 왜 살아 돌아왔는지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2시간 인터뷰를 하는 동안 딱딱한 군인의 말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최 전 함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환봉 장필수 기자 bonge@hani.co.kr

▶바로가기: <한겨레> <한겨레21>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기획연재

https://www.hani.co.kr/arti/SERIES/1135/home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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