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자동 탐지 시스템을 개발해‘2020 스타트업 스토리텔링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딥트’팀의 강미현(왼쪽부터) 김연희 유현선씨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인터뷰 중 미소짓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루에 열몇시간씩 게임하며 모은 아이템을 해킹을 당해 모두 잃은 적이 있었어요. 완전 부들부들했죠.”(김연희)
게임에 푹 빠져 있던 초등학생은 이때부터 ‘해킹을 막는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관심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열정으로 바뀌었다. 이화여대 1기 ‘사이버보안전공’ 대학생이 됐다. 학과에는 게임이나 컴퓨터에 빠져 살던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연희씨와 동기들은 길잡이가 돼줄 ‘과 선배’가 없는 대신 스스로 ‘개척자’, ‘도전자’가 되기로 했다. 강미현(24)·김연희(24)·백현정(24)·유예린(22)·유현선(23)씨가 ‘딥페이크(얼굴 등을 합성해 가짜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 자동탐지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이러한 마음에서였다.
지난 4일 미현·연희·현선씨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최근 <에스비에스>(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소개돼 화제가 된 딥페이크 자동탐지 시스템, 여성과 정보기술(IT)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소위로 군 복무 중인 현정씨와 미국에 있는 예린씨는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9년 말 이들은 졸업작품 제작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모두 머릿속에 ‘딥페이크’를 떠올렸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결과물이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활용되며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겪고 있는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이버 보안 연구 회사 ‘딥트레이스’가 201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딥페이크 영상의 96%가 성착취물로 소비됐고, 여기에 나온 얼굴 25%가 한국 여성 연예인이었다. 최근에는 일반인도 대상이 되고 있는 추세다. 딥페이크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에 에스엔에스(SNS)에 얼굴 사진을 삭제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딥페이크 탐지 프로그램이 남성들에게 평탄한 도로 위의 안전벨트라면, 저나 다른 여성들에게는 달려오는 트럭을 막는 생존 기술 같은 거예요. 당장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백현정)
이들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은 ‘윤리’다. 데이터를 수집·활용할 때 그만큼 신경을 썼다. 올바른 윤리의식, 섬세한 공감능력, 풍부한 감수성 등이 기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대예요.”(백현정) “인공지능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대중의 관심입니다.”(유예린)
딥트(DEEP’t)라는 이름으로 팀을 만들고 8개월을 시스템 개발에 매달렸다. 이들이 만든 시스템은 ‘2020 스타트업 스토리텔링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딥페이크로 의심되는 이미지나 영상을 저희 웹사이트에 업로드하면 몇%의 확률로 딥페이크인지를 판별해 알려줘요”(유예린) 딥트가 개발한 시스템은 기존의 시스템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짜 영상을 가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로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더 많은 여성들이 경험했으면 좋겠어요.”(유현선) 딥트는 여성들이 아이티 분야에서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동안 아이티 관련 대회에 나갈 때마다 여성 참가자는 극히 드물었고, 딥트가 유일한 여성 참가자일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 때부터 이공계 여성을 향한 사회적인 편견에 움츠러들었다. “고등학생 때 이과를 지망하는 여학생들은 남학생의 절반이 안 됐어요. 선택과목별로 분반을 하기에는 인원수가 부족해서 남학생과 달리 원하는 과목을 마음대로 고를 수가 없었어요..”(유현선) 이들은 앞으로 많은 여성청소년이 이러한 편견을 뚫고 사회로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올해 5명은 직장인·대학원생·취업준비생 등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그러나 ‘목표’는 모두 같다. “아이티 업계에서 계속 일할 거예요. 저희는 진심이거든요.”(강미현) 이들이 인터뷰 중 제일 많이 말한 단어는 ‘진심’이었다.
왼쪽부터 강미현(24)·백현정(24)·김연희(24)·유예린(22)·유현선(23)씨. 딥트 제공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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