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이 걸어온 길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 민족사진연구회 제공
내 살아온 꼴은 한마디로 땅불쑥해. 땅이 평평하지 않고 툭툭 튀어나온 꼴이니, 특이하다 말이지. 그 큰 줄기를 뽑아보니 통일 싸움꾼이 하나요, 이야기꾼이 둘이야. 그래서 그 특이한 내력을 남겨볼라 그래!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9.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1933년 1월 24일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자락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45년 해방 뒤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백 소장 가족도 남북으로 나뉘어 살게 됐고, 갈라진 집안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유년시절 그는 초등학교만 다니고 혼자 공부했음에도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을 읽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해외유학장려회’ 첫 수혜자로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지만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50년, 열여덟 살의 백기완 소장. 학교를 다니지 못해 사진으로나마 교복을 입었다고 한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여든다섯 살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 소장. 정택용 작가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노동자생존권을 요구하며 차려진 광화문캠핑촌에서 예술 노동자들과 함께한 백 소장.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141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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