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선수가 떠난 자리에서 가까운 동료이자 후배였던 편차희 선수는 오늘도 숨죽여 달리고 있다. 달라진 것 없는 스포츠계 현실 속에서 남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최숙현이 지난해 6월26일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떠난 이후, 최숙현법이 생겼고, 스포츠윤리센터가 세워졌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포츠계의 폭력을 낳는 성적 중심의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고, 선수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최숙현 선수가 떠난 자리에서, 가까운 동료이자 후배였던 편차희 선수가 오늘도 숨죽여 달리고 있다.
“주문. 피고인 안주현에게 징역 8년과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한다.”
지난달 22일 대구지방법원 21호 법정. 편차희(22)는 이른바 팀닥터로 행세한 안주현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방청석에 앉아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안주현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안주현이 처벌받았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어진 공판에선 김규봉 전 경주시청팀 감독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피해 선수 가족들은 화를 냈다.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던 편차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숙현 언니가 살아 있을 때 뉘우쳤다면 이런 상황까지 올 필요도 없었을 텐데….” 차희의 어머니가 딸의 어깨를 감싸며 “마음이 너무 여리고 착하다”고 다독였다.
편차희는 현재 천안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에서 뛰고 있다. ‘남은 자’ 중 1명이다. 최숙현과는 2년간 함께 운동했다. 둘은 운동 동료이자 단짝이었다. 힘든 생활 속에서 숙현 언니는 한살 어린 동생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운동 같이하는 후배고, 평생 함께하고 싶은 동생.” 숙현이 적은 글귀를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있다. “숙현 언니는 제가 의지할 수 있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존재였어요.”
편차희는 한때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차세대 에이스였다. 2018년 경주시청팀 성인무대에 데뷔해 그해 전국체전에서 개인 2위, 단체 1위에 올랐다. 대형 신인의 등장이었다. 당시 개인 1위는 장윤정 전 주장. 편차희는 팀의 간판인 그를 잇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연고도 없는 경주에서 생활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팀 대표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땀을 흘렸다.
최숙현 선수가 2019년 적은 메모. 편차희는 이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뒀다. 본인 제공
땀방울로 쌓아 올리던 꿈은 바로 그 장윤정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윤정은 팀 내 영향력을 바탕으로 무소불위로 행동했다. 학생 시절 다정하게 말 걸며 경주시청팀으로 오라던 모습은 사라졌다. 어느 날은 멱살을 잡고 옥상으로 끌고 올라가, 죽고 싶으냐며 폭언을 퍼부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이유 없이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고, 선수들 사이를 이간질했다. 팀플레이라는 명목 아래 어린 선수들을 바람막이로 세우기도 했다. 바람을 피해 체력을 아낀 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버틴 건 숙현 언니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경주시청팀에서 훈련한 숙현은 차희가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언니는 항상 먼저 다가왔고, 잘못한 일이 있어도 감싸고 다독여줬다. 장윤정이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메시지를 보내면, 언니는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오해가 쌓이는 걸 막았다. 둘은 방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웃었다. 그렇게 운동의 꿈을 지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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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함께하고픈 동생”이라
최숙현이 말했던 편차희
괴롭고 버거웠지만
“언니 위해” 증언·조사 적극 임해
처벌·입법 등 진전 있었지만
다시 트랙에 오를 때면
변화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 들어
실업팀 7명중 1명 폭력노출
64%가 불이익 받을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편차희는 “그래도 언니 덕분에
세상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페달을 밟는다
숙현 언니의 죽음은 거짓말 같았다. 언니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언니는 경주시청-경주시체육회-대한체육회-국가인권위원회-경찰-검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폭행 상황을 녹취했지만, 기관들은 더 많은 증거를 요구했다. 전국민의 분노를 부른 녹취록이 당시에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절망한 숙현은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비극을 막을 수 있던 사람들이 언니를 외면했고 그것이 죽음을 몰고 왔다.
고 최숙현 선수가 2019년 3월 올린 것으로 보이는 네이버 지식인 질문 내용. 최 선수는 고민 끝에 1년 뒤 경찰에 가해자들을 고소했다. 네이버 갈무리
편차희는 그 절망감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러나 그게 언니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벽을 느낀 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최숙현이 경찰에 가해자들을 고소하며 조사가 시작됐다. 그때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보고 들은 것은 물론 직접 당한 폭행도 증언했다. 경찰은 “기껏해야 벌금 정도로 끝난다” “고소할 거 아니면 (다른 피해 사실은) 말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벌금형이 나온다면, 가해자들은 나를 어떻게 할까. 운동을 못 하게 되는 건가. 두려웠다. 결국 고소를 포기했다. 언니가 맞닥뜨린 벽은 훨씬 더 거대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언니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국회 기자회견과 청문회에 나갔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신경 쓸 게 많고 괴로웠다. 21살 어린 선수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이러다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다 놓아버리려다가도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는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언니가 내 입장이었다면, 분명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지난해 7월6일 편차희 선수가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가해자들은 법원에서 차례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언니의 한을 조금은 푼 듯했다. 조금은 세상이 바뀐 게 아닐까. 하지만 다시 운동복을 입고 트랙에 오르면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최숙현법이 생겼고, 스포츠윤리센터가 세워졌지만 현장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최숙현 선수 사망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8월3일부터 대한체육회 등록 실업팀 선수 9409명(응답 3007명)을 대상으로 벌인 ‘2020년 실업팀 선수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 제공)를 보면, 실업팀 소속 선수 7명 중 1명(13.9%)이 여전히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응답자 5명 중 1명은 ‘인권침해가 과거보다 줄지 않았다’ ‘운동선수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인권보호를 위한 충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답변은 19.2%에 그친 반면, 충분하지 않다는 부정적 답변은 42.1%에 달했다.
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때 불이익을 받을 거란 우려도 여전했다. 선수들은 폭력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 이유(중복 선택 가능)로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당할 거 같아서’(64.5%), ‘소속팀에서 인간관계가 불편해질까 봐’(50.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는 응답도 42.1%에 달했다.
체육계의 고질적 문제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여전히 강했다. 실업팀 인권문제가 발생하거나 개선되지 않는 이유(우선순위 2개 선택)로 선수들은 ‘개인의 인권보다 성적이나 실적이 강조되는 분위기’(56%)를 꼽았다. ‘문제제기가 어려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분위기’(33.4%), ‘인맥, 소문이 향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31.8%)가 뒤를 이었다. 차희는 “문제가 여전한데도 말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계 폭력 사태가 알려지면, 언제나 나오는 말이 있다. 즐기는 스포츠, 생활체육 강화.
현장에 있는 선수와 지도자들은 이런 대책이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방향에선 옳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전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실업팀에서 활동하고, 전국체전에서 성적을 내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선수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차희는 아직 고민의 답을 찾지 못했다.
2019년 경주시청팀 소속으로 경기도 시흥에서 열린 전국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한 편차희. 본인 제공
차희는 지난달 25일부터 전남 나주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를 한다. 곁에서 응원하는 감독님과 동료들을 보며 팀의 소중함도 느낀다. 차희는 카카오톡 배경사진에 이런 글귀를 담았다.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나는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바늘은 왜 하필 거기 있었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차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때로는 숙현 언니가 떠오른다. 슬픔에 빠지기도, 그리움에 잠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버티는 것 또한 언니를 위한 일이라고 믿는다. 꿈에 언니를 만나면 ‘그래도 세상이 언니 덕분에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