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비켜 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계약서 없어 퇴직금·산재 신청은 언감생심”
“근로계약서 없어 퇴직금·산재 신청은 언감생심”
청계피복노조 후신인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들과 전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이 11일 전태일다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태일재단 제공.
문재인 대통령님에게 드리는 글
- 50년 만에 부치는 조합원 전태일의 편지
대통령님……
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에 소재한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 52살의 홍은희입니다. 직업은 의류 계통의 미싱사로서, 37년의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직장은 도심의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벗어난 중구 신당동에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공장에서는 8명이 작업하는데,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합니다. 토요일도 나와서 6시까지 일합니다. 1주일에 80시간입니다. 법정 노동시간의 두 배입니다.
노동자가 5인이 넘으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사장은 우리더러 객공이 무슨 근로계약서냐고 개인사업자를 내라면서 외면합니다. 공장이 영세하다 보니, 사장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따지기도 힘듭니다. 사장도 일하니까요. 중국에서 싼 옷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단가는 자꾸 깎이고 일감도 줄어듭니다. 일감이 떨어지는 철이 점점 더 늘어납니다.
열여섯 살에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다였습니다. 사장이 주는 타이밍을 삼키고, 아침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다락방에서 일했습니다. 밥도 공장 안에서 먹고, 잠도 공장 안에서 잤습니다. 일요일에도 밖에 못 나갔어요. 바른말 잘하는 동료가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사장에게 대들었다가 뺨이 터지도록 맞는 걸 보고,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습니다. 그때 저에게 손을 내밀어준 분들이 바로 전태일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청계피복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조합원들이 함께 싸워준 덕분에, 반년 넘게 밀렸던 월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무서운 시절이었습니다. 여성 조합원들이 경찰에 머리채를 잡혀서 질질 끌려가면 남성 조합원들이 달려와 구해줬어요. 해고는 일상이었고, 노조 사무실을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까무러친 언니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홀가분했습니다. 독재 너머로 환하게 빛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 보였어요. 그 세상에 언제 닿을까 손가락을 꼽으며 살았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락방도 사라지고, 작업장에는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도 생겼습니다. 구사대도 백골단도 안 보입니다. 전태일 선배가 일했던 때처럼, 제가 시다로 시작했을 때처럼, 사장이나 관청이 강제로 일을 시키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세상은 아닙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힘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옷을 몇 벌 만들었느냐로 월급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몇 푼이라도 더 벌어놔야 일감이 없을 때 견딜 수 있습니다.
대목이 지나가면 한 푼도 벌지 못하는 날들이 몇 달이고 계속됩니다. 그럴 때 저는 완전 실업자 신세이지만, 실업수당 한 번 받지 못했습니다.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로 기관지병을 달고 살지만, 산재보험 신청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뼈가 휘도록 일했지만, 퇴직금은 언감생심입니다. 37년 경력의 미싱사가 한 달에 2백만 원을 벌기 위해 하루 14시간의 노동을 합니다. 법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이 된 건가요?
퇴직금을 받으려고 동료가 노동부에 진정을 냈습니다. 근로감독관은 사장과 합의를 해보라고 하더랍니다. 다들 쪼들리는 걸 서로 뻔히 아는데, 무슨 합의를 해요? 노동부에 들락거릴 시간에 차라리 미싱 돌리는 게 낫다는 걸 깨달은 동료는 그저 가슴만 쳤습니다. 이럴 때 노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두세 명이 어떻게 노조를 꾸려요? 우리처럼 영세한 공장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제와서 다른 일을 배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전태일 50주기인 2020년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국민을 하루 14시간의 작업에 내몰 수 있습니까?
저는 여기에서 대통령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에만 봉제 노동자들이 9만인데, 대다수가 저와 같은 처지입니다.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을 법 적용에서 제외한 근로기준법 11조 때문입니다. 서로 힘을 모아 뭔가를 해보려 해도, 이번에는 노동조합법 2조가 가로막습니다. 임금으로 먹고사는 저는 노동자가 분명한데, 정작 노동법은 저더러 노동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민주화가 되고 나서 30년이 지났건만, 그동안 근로계약서 한 번 써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올해 쉰두 살, 스물두 살의 전태일 선배처럼 피 끓는 청년은 아닙니다. 하지만, 평생 옷을 만들어온 미싱사로서, 이 부조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현실을 고치기 위하여 제가 젊은 날 몸담았던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후신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에 가입원서를 썼습니다.
전태일 선배가 그랬고,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그랬듯이, 저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작업장의 막내가 사십 대 중반입니다. 다른 곳도 다 똑같습니다.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공장, 자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일터에 젊은이들이 일하러 올까요? 봉제 노동자들의 대가 끊기면 우리나라는 국민이 입을 옷을 모조리 수입해야 합니다. 부자는 명품, 서민은 유니클로. 이렇게 구별되는 사회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60년 전 전태일 오빠는 학교에서 밀려났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학교에서 밀려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일자리에서 밀려납니다. 저는 시다로 시작했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편의점 알바와 배달의 민족 라이더로 시작합니다. 저는 비록 맞아가면서 봉제 기술이라도 익혔지만, 이 청년들은 무관심과 푸대접 속에서 아무런 기술도 배우지 못합니다. 만일 드론이라는 게 배달을 하게 되면, 라이더 일도 사라질 그때는 대체 무슨 일이 남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 경제발전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대통령님 혼자에게만 미루는 건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미 있는 일자리를 개선해 주십시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자가 3,587,000명입니다. 교섭권 행사를 제약받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3,465,239명입니다.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2,209,343명입니다.
저희의 요구는 대통령님께서 근로기준법 제11조와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에 즉각 나서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연평균 산재 사망 노동자 수가 2,323명입니다. 하루에 7명이 죽어갑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 제발 죽음의 행군을 멈춰야 합니다. 전태일 선배 곁에 누워 있는 용균이 어머니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용균이 같은 노동자들을 보호하십시오.
우리 노조는 노동자와 함께 일을 하는 10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에게는 노조 가입 자격을 주었습니다. 노사가 서로 돕는 공제회도 만들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노력을 차곡차곡 쌓아 봉제인의 권리를 찾겠습니다. 전태일 선배의 또 하나의 꿈이었던 태일피복을 설립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대통령님,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를 모아 사용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 더 많은 국민이 민주주의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동자가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헌법이 부여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력을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부치려던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전태일 오빠는 끝내 편지를 부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님께 이 편지를 부칩니다. 민주주의의 힘을 경험해봤기에,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2020년 11월 11일
전태일의 후배 봉제 노동자 홍은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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