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의 한 병원 독감 예방접종 창구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에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뒤 목숨을 잃은 사례가 잇따르면서 백신 접종을 둘러싼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 당국은 백신 접종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가 22일 오후 독자적으로 ‘백신 접종을 1주일간 잠정 유보할 것’을 권고하고 나서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의협이 백신 접종 유보를 권고한 이튿날인 23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누리집에는 “백신을 놔주는 병원이 있고, 맞지 말라고 하며 주사를 처방하지 않는 병원도 있어 백신을 접종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쏟아졌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한 시민(아이디 pa7***)은 포털 사이트 카페에 글을 올려 “동네 소아과에 갔는데 23일부터 예방접종을 1주일 보류한다고 했다. 미리 맞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맞고 이상이 없으면 괜찮다’고 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 맘카페 회원(아이디cs***)은 “지난 주말에 내과에 백신 여분이 있다는 글을 보고 남편과 아들이 접종을 했는데 오늘 전화해서 맞으려 하니 백신이 떨어졌다 한다. 통화가 안되는 병원도 있는데 다른 지인들도 접종을 못 받고 있다”고 토로다.
정부에선 백신 접종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병원이 속출하면서 시민들 사이에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더 큰 불안감을 나타냈다.
경기 광명의 한 시민(아이디 jjb****)은 “13개월 아기 2차 접종을 23일 하기로 했는데 병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 독감접종이 말이 많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맞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9월에 1차 접종을 했는데 이렇게 늦게 2차를 맞아도 효과가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인천 서구 주민(아이디 mom****)도 “10개월 된 아이 2차 접종을 해야 하는데 연이어 터지는 (사망)사고로 마음이 무겁다. 백신이 있다고 해도 막상 접종해야 할지 찝찝하다”고 썼다.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의실에서 열린 ‘독감 예방접종 사망 사건 의협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권고문을 읽고 있다. 의협티브이(TV) 갈무리
정은경 질병청장은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백신 접종 후 사망 원인이) 제품 문제라면 바로 중단하는 게 맞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중단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저희와 전문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협은 비슷한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일선 의료 현장에 1주일간 예방접종을 잠정 유보할 것을 권고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불안한 의료기관은 환자들을 보건소에서 접종하도록 하고, 의료기관에서 맞기를 원하는 환자들에게는 놔주면 된다. 권고지 강제사항은 아니다”면서도 “의협 전 산하단체에 대해 의료기관에 공문을 발송하고 있고 전체 회원에게 문자 안내도 나갈 예정이어서 내일부터는 본인이 원하면 보건소나 국공립의료기관으로 전원할 수 있지만 실제 접종 케이스가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의협이 정부의 지침과 반하는 권고를 하면서도 정확한 방침은 정하지 않아 일선 의료현장에서 백신 주사를 처방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직 의사들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게이트’에도 23일 백신 접종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의사는 “의협과 질병청이 다른 이야기를 해서 예방접종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다. 다른 병원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글을 올렸다. 병의원 의사들은 대체로 “독감 백신은 안전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직접 백신을 접종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독감 백신이 안전한 것은 맞지만 사망자가 많이 나와서 아무래도 찝찝해 접종을 하기가 꺼려진다”는 의견과 “접종은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일부 의사들은 의협이 정부 지침에 반해서 일주일 유보를 권고한 것이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의료인은 “독감 백신은 가장 안전한 백신 중 하나인데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느냐. 상온보관의 문제점이 있을수 있지만 일주일간 전국민 접종을 지연시키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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