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들머리에는 이곳에서 생활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야지마 쓰카사 씨가 그 곁에 서 있다. 광주/이정아 기자
“할머니 한분 한분을 획일적인 정사각형 프레임 속에 배치해 촬영했지만, 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이름과 역사를 지닌 개인입니다. 역사적 피해자라는 큰 틀로 할머니들을 인식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 개인의 삶과 존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야지마 쓰카사(49)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쉼터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국제실장이다. 사진가이기도 한 그가 오랜 시간 작업해온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초상사진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야지마씨가 기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초상사진들. 왼쪽부터 고 지돌이 할머니, 고 배춘희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 그가 찍은 흑백사진 속 할머니들은 반듯한 자세로 서서 정면을 응시한다. 그는 고통 속에 침묵을 깨고 피해 사실을 알린 할머니들의 당당함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지마 쓰카사씨 제공
역사학도였던 그는 대학 시절 사귄 아시아 친구들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눈을 떴다. 2000년 동아시아공동워크숍에 참가해 나눔의 집을 처음 방문한 뒤 2003년부터 약 3년 동안, 또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나눔의 집 방문객 중에는 일본인도 많았지만 일본어에 능통한 직원이 없었던 탓에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피해자가 나서야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 재현 등이 포함된 안내를 피해자가 반복하게 하는 상황은 적절치 못했다. 이를 고민하던 나눔의 집의 제안으로 합류하게 된 뒤 국제교류 업무와 생존자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까지 그의 업무 폭은 넓었다.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왼쪽부터)과 원종선 간호팀장, 야지마 쓰카사 국제실장이 지난 5월 15일 오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 교육관에서 <한겨레> 기자들과 만나 나눔의집 후원금 횡령 의혹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광주/이정아 기자
그러나 그가 나눔의 집 동료들과 함께 운영상 문제를 지적하는 공익제보에 나선 뒤 나눔의 집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이후 “나눔의 집이 거액의 후원금을 모은 뒤, 이를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용하지 않고 주로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쌓아두었다”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그러나 후속조치는 미흡해 직원들의 업무환경 개선과 할머니들의 처우 개선, 투명한 회계 등을 촉구하는 공익제보자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급기야 지난달 나눔의 집 들머리 외벽에 펼침막이 내걸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 일본인 직원이 웬 말이냐?’ 시설의 묵인 아래 나눔의 집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유족들의 주장이었다. 많은 시민들의 항의로 펼침막은 철거됐지만 그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았다.
8월 21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들머리 외벽에 ‘일본인 직원 나가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다산인권센터 제공
나눔의 집 들머리에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공간은 세계적으로 나눔의 집이 유일합니다. 피해자들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이곳에서 존중받으며 좀 더 편안히 생활할 수 있기를, 또 이분들이 세상을 뜬 뒤에라도 할머니들의 삶과 고유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곳이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장으로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할머니들의 흉상 곁에 서서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처럼 단정한 한국어로 풀어낸 일본인 야지마 쓰카사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흉상 곁에 선 야지마 쓰카사 나눔의 집 국제실장. 광주/이정아 기자
광주/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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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1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