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의 운영자가 400만달러를 벌고도 한국 법정에서 고작 18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이 정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지난 1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에 붉은색의 큰 느낌표와 함께 나온 광고 문구입니다. 성착취물을 22만개나 유통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누리집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24)를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한국인 손씨를 강력 처벌해달라는 광고가 어쩌다 뉴욕 한복판에 걸리게 된 걸까요.
안녕하세요. 사회부 사건팀 기자 오연서입니다. 세계 최대 성착취물 누리집 ‘웰컴투비디오’에 대한 분노가 전세계로 향했습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이 광고를 내건 이는 바로 한국 여성들이었는데요. 트위터에서 활동 중인 ‘케도아웃―아동 성범죄 실태 공론화팀’(@Kedophile)입니다. 지난 2일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에게 “손씨 판결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아느냐”고 물으면서 ‘케도아웃’의 광고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케도아웃’은 지난 7월6일 서울고등법원이 손씨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내린 뒤 결성됐습니다. 법원이 손씨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하면서 손씨가 미국에서 엄중한 처벌을 받을 기회는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에 손씨가 석방돼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되자 분노한 여성 12명이 ‘케도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겁니다. ‘케도’는 한국을 의미하는 알파벳 케이(K)와 ‘소아성애자’를 뜻하는 페도필(pedophile)의 합성어입니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이들은 오로지 아동 성범죄를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목표 하나로 뭉쳤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아동 성범죄를 근절하기는커녕 아동 성착취물 유포자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며 광고를 내걸기로 결정했습니다.
결성 직후 시작한 광고액 모금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지난 7월15일 1차 모금액을 2시간 만에 모은 데 이어 20일 오후 텀블벅 누리집에서 펀딩을 시작한 지 5시간 만에 2차 목표액 2천만원을 달성한 겁니다. 그렇게 모금 기간 2주 동안 모인 금액은 모두 9090여만원. 목표액의 4배가 넘습니다. “연대합니다” “딸을 위해 후원합니다” 등 응원 메시지와 함께 4686명이 후원에 참여했습니다.
광고 진행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광고대행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일부 대행사는 “광고 내용이 너무 민감한 주제”라며 게재를 거부했습니다. 광고 내용을 수차례 수정한 끝에 ‘케도아웃’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두곳의 광고 게재에 성공했습니다. 거듭되는 거절에 힘이 빠지면서도 ‘케도아웃’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손정우 이전에도 성범죄에 대한 판사의 솜방망이 처벌은 계속 있어왔습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단 한번도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전세계에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사법부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판결에 변화를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주 간절했습니다.” ‘케도아웃’ 활동가 ‘알린’의 말입니다.
광고 게재를 위해 결성된 팀이지만 ‘케도아웃’의 활동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국경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케도아웃’ 활동가들은 <시엔엔>(CNN),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국 언론사에 손씨의 범행과 솜방망이 처벌의 현실을 제보했습니다. ‘케도아웃’은 공식 누리집에 ‘웰컴투비디오’ 사건을 영어로 설명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아동 성착취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광고가 게재된 지난 1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손정우법’이라고도 불리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문자 총공’(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집중적으로 보내는 운동)도 진행했습니다. 개정안은 현재 단심제로 진행되는 범죄인 인도 재판에 불복 절차를 보장해, 손씨의 미국 송환을 다시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씨는 고작 1년6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나왔습니다. 유료회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인원은 아예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이들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글도 올라왔습니다. ‘케도아웃’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요. ‘케도아웃’ 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고 게재는 손정우와 웰컴투비디오의 판결을 제대로 다시 쓰기 위한 투쟁의 시작입니다. 가해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합니다. 저희 광고에 대한 관심이 처벌에 대한 감시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오연서 사회부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