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 유해봉환식 행사.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지인들이 설립한 ‘노바운더리’가 수주한 행사다. 성남/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신문의 오늘자 삼정검 수여식 등과 관련한 보도는 명백한 오보이자 왜곡입니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최측근이 세운 신생 공연기획사 ‘노바운더리’가 국방부로부터 대통령 참석 행사 용역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거나 서류도 미비했다고 지적한 <한겨레> 보도(
▶관련 기사 : [단독] 탁현민 측근 수주 국방부 행사, 정식계약 않거나 서류 없거나)를 두고 청와대는 16일 강민석 대변인 서면 브리핑에서 이런 입장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한겨레>의 보도가 왜곡이거나 허위 사실을 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첫 번째는 “국방부와 노바운더리가 정식 계약을 안 했다는 보도는 왜곡”이라는 겁니다. 청와대는 국방부가 2018년 1월11일 ‘진급장성 삼정검 수여식’(삼정검 수여식) 행사를 법인등기도 되어 있지 않은 노바운더리에 정식 계약도 없이 맡긴 건 대통령 일정 등의 요인으로 삼정검 수여식 9일 전에 일정이 급하게 결정됐고, 이 행사 관련 국방부 예산이 사전에 편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긴급하게 대통령 일정이 정해져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사 종료 후 사후정산 방식으로 행사 비용을 집행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우선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아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공공계약의 기본 원칙과 어긋납니다. 공공계약에서 외부 업체에 용역을 주는 일은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산과 무관하게 계약을 맺어 근거를 남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 예산에는 ‘예비비’라는 게 존재합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급한 행사여서 행사를 진행한 뒤에 비용을 지급했다고 해도 계약서는 남겨야 합니다. 사후에 남길 수도 있어요. 게다가 국방부가 ‘일반용역비’가 아니라 (물품대금이나 각종 공과금 지급 명목으로 쓰는) ‘수용비’라는 항목으로 예산을 집행한 것도 이상합니다. 예산을 편성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출 수요를 쓰기 위해 있는 ‘예비비’로 나갔어야 하는 거지요.”
전 교수의 말대로 기획재정부의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을 보면, ‘수용비’는 소모품 구입 등에 쓰이는 예산입니다. 외부에 지급되는 경우에도 초청 강사료 등에만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청와대는 이런 지침 위반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한겨레>가 긴급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왜곡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아울러 “대통령의 긴급한 일정 확정에 따라, 국방부는 당시 ‘청와대 행사 경험’이 있고, 삼정검 수여식의 새로운 콘셉트과 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획사를 선정했다”며 “그런데도 ‘법인등기도 되지 않은’ 회사 운운하는 것으로 재탕으로 부당한 비난을 가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국방부가 얘기한 ‘청와대 행사 경험’이라는 것이 앞서 <한겨레>가 보도로 지적했던, 노바운더리라는 법인등기도 안 된 신생 공연기획사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민의 이목이 쏠린 굵직한 대통령 참석 행사 네 건을 잇따라 수주하게 되면서 쌓은 경험입니다. <한겨레>는 애초부터 탁 비서관의 최측근이 세운 신생 기획사가 어떻게 이 네 건의 대통령 참석 행사를 잇따라 수주했는지, 혹시 그 과정에 탁 비서관이 영향력을 행사한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는데, 청와대는 이 본질적 의문에 대해 속 시원히 해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오히려 2018년 1월 삼정검 수여식이 청와대 말대로 긴급하게 진행된 행사였다면, 법인등기도 되지 않은 신생 기획사가 아니라 검증된 기획사에 일을 맡겨야 했던 것 아닐까. 전 교수는 이에 대해 “시간이 없는데 수풀 속을 뒤져서 잘 안 보이는 진주를 찾아냈다는 주장이다. 상식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이라고 지적합니다.
두 번째, 청와대는 국방부가 2018년 10월1일 ‘국군의날 맞이 유해봉환식’(유해봉환식)을 노바운더리에 맡기면서 “계약 과정에서 갖추어야 할 모든 자료(견적서, 여성기업확인서, 행사과업지시서, 용역내용 검수조서 등 총 7건)를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겨레>는 이날 오전 보도에서 “국방부가 수의계약 절차를 거치면서 제출받아야 할 노바운더리의 제안서나 사전 검토보고서도 확보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는데요. 국방부도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청와대와 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한겨레> 보도 내용에 언급되어 있는 제안서는 수의계약이 아니라 협상에 의한 계약 시에 필요한 것이며, 사전 검토보고서는 계약상 필요한 서류가 아니다. 유해봉환 행사에 필요한 서류가 없다는 내용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국가계약법과 이 법 시행령에는 수의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시행령 30조 ‘견적에 의한 가격결정 등’ 1항에서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수의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는 2인 이상으로부터 견적서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견적서보다는 ‘2인 이상’에 무게를 두는 조항입니다. <한겨레>가 제안서와 사전 검토보고서를 거론한 것은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복수의 공연기획 업계 관계자들이 정부 기관의 행사를 맡기 위해 두 서류를 제출하는 과정이 필수였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20년 동안 국가기관의 행사를 담당해 온 한 행사기획자는 “업체 대표가 개인적으로 이력을 갖춘 유명 인사라고 해도 제안서와 사전 검토보고서 없이 일감을 주는 일은 찾기 쉬운 사례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행사 기획업체 대표 ㅇ씨도 “수의계약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몇 개 업체가 제안서를 내고 발주기관이 검토한다. 제안서와 이를 검토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한겨레>는 이번 사안을 취재하면서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받아낸 답변과 국방부 관계자와의 통화 등을 통해 국방부에 노바운더리의 제안서와 사전 검토보고서가 남아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노바운더리가 행사 전 보낸 제안서라는 것은 별도로 없다. 사전 검토보고서도 저희가 갖고 있는 게 없다. 구두로 이 업체를 추천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작은 기획사가 실무적으로 뛰어나 일감을 조금 수주받은 일”이라든지 “탁 비서관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지 않느냐”고 <한겨레>의 보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가 이 사안을 보도하는 이유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밝힌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일하고 있는 비서관의 최측근 회사가 특혜를 받는 모순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비록 탁 비서관과 이 업체가 결과적으로 행사를 잘 치렀다고 해도, 공적인 절차를 통해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이 특혜로 얼룩진다면 그 결과마저 훼손되고 맙니다. <한겨레>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공연기획사 ㄴ사 대표는 이 사안을 접하고 “주변에 아는 국회의원 한명 없는 나는 실력은 있어도 능력이 없는 것”이라며 상대적 박탈감을 털어놨습니다. 또 다른 공연기획사 대표도 “공정하지 않고 출발선이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의 의사결정이 이런 이들에게 ‘권력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먼저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줘선 안 되는 것 아닐까요.
박준용 김민제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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