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도 이룰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성착취-불법도박 공생 사이트를 취재하며 만난 수많은 사이트 회원들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관계의 단절을 이야기했습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질 전망도 없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연애하기도 어려웠다는 얘기를 여러명에게 들었습니다. 이들은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언제든 접속 가능한 랜선 속 가상 세계에 의존했습니다. 정서가 공유될 틈이 없이 포인트 등으로 이뤄지는 화폐 거래도, 사회적·성적 관계도, 심지어 사람의 목숨도 건조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세계지요.
특히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휴대전화를 쓴 지금의 10대들은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게임을 하고, 세상을 봅니다. 특히 지금의 10대들은 스스로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을 예감한 이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포기를 내면화합니다. 그렇게 일탈을 정당화하고 쉬운 성공 유혹에 취약해집니다. 그러다 성착취물을 접하고, 불법도박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26살 최재혁(가명)도 그런 청년입니다. 10대 때 게임 커뮤니티에서 도박 광고를 봤습니다. 그러다 도박 단톡방이 있는 걸 알게 됐죠. 그곳 사람들은 “도박은 안 해도 된다. 성착취물만 봐도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매일 누군가가 수익 인증을 해댔고, ‘쉽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불법이라도 누군가는 딸 것이 아닌가. 그게 내가 아니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이후로 도박은 최재혁의 머리를 지배하고 맙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전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온라인 불법도박 세계에 대처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온라인 도박 사업 면허를 민간 회사에 내주면서 그 회사에 청소년 도박 방지 책임도 함께 지웁니다. 온라인상 도박 광고물은 연령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게 하고, 조금이라도 사행성이 보이는 광고 문구는 제한합니다. 2018년 광고에 ‘아기돼지 당첨금’ ‘산타 할아버지의 백만금’ 등의 단어를 쓴 업체에 경고가 주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도박 사이트에 ‘미성년자 도박 금지’ 경고를 의무화했습니다. ‘사이버 순찰’ 제도도 운용하고 있지요. 온라인 규제위원회 직원과 경찰이 불법도박 사이트에 잠입해 실제 베팅을 하면서 운영자를 적발합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2014년 온라인 도박 접속 때 신원과 연령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권고안을 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이 권고안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청소년 도박중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러해 전 제비뽑기 방식의 사행성을 가진 ‘컴플리트 가차’ 게임이 10대들한테 인기를 끌자 일본 소비자청이 규제를 결정했고, 게임업체들은 곧 이 게임 사업을 종료했습니다. 아이티(IT) 강국 한국에선 이런 대책들보다 더 강력한 방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빨리 수렁에 빠진 청년들을 도울 대안을 찾아내 실행까지 옮기길 바라봅니다.
박준용 김완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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