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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총판이 초대한 ‘가족방’ 가보니…“공 숫자 맞히면 10만점 쏩니다”

등록 2020-05-26 04:59수정 2020-05-26 07:09

[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 ③불법에 물든 청소년들
대화방마다 40~200여명 참여
베팅할 곳 하루 수십차례 뿌려
한번 입장하면 정착해서 베팅
“총판들에겐 가족방이 곧 재산”

“여러분, 드디어 내일입니다.”

“슬슬 경기 한번 가볼까요! 케이비오(KBO) 5월5일 추천경기 조합입니다. 1조합 ‘SK 승, KT 승’. 2조합 ‘NC 승, 기아 +1.5 승, 두산 8.5 언더’. 오늘은 이 두개로 갈게요.”

코로나19로 미뤄졌던 프로야구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사설토토 이용자들이 모인 ‘가족방’이 들썩거렸다. 가족방은 불법도박 사이트의 홍보 담당자인 총판이 자신의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대화방이다.

<한겨레>는 지난달 23일부터 한달 정도 동안 5개의 가족방에 들어가 관련 대화를 수집했다. 사설토토 가족방 3곳과 파워볼 가족방 2곳인데, 방별로 최소 40여명에서 최대 200여명의 이용자가 참여하고 있었다.

가족방에는 휴대전화만 가지고 총판과 대화 몇번만 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총판들은 도박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플랫폼이나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 불법도박 사이트 주소, 자신의 카카오톡 혹은 텔레그램 아이디, 가입코드(불법도박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 입력하는 숫자)를 올린다. 이를 보고 총판에게 연락해 가족방 입장을 문의하면 곧 방 주소를 알려주는 답장이 온다. 불법도박 사이트 가입을 인증해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총판도 있는데, 사이트 또한 휴대전화 번호와 계좌번호 등 기본 정보만 입력하면 곧바로 가입할 수 있다. 입장을 망설이는 이용자에게 총판은 “그냥 도박하는 것보다 가족방 케어를 받는 게 훨씬 편하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가족방에선 본격적인 베팅의 장이 펼쳐졌다. 총판은 하루 수십번씩 ‘픽’(베팅할 곳을 알려주는 행위)을 뿌리고 이용자들은 픽에 ‘탑승’해 돈을 건다. 게임이 끝나면 총판은 자신의 픽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공지한다. 한 파워볼 가족방에서 총판은 ‘파짝적중’(파워볼 짝수 적중), ‘파언적중’(파워볼 언더 적중), ‘일짝적중’(일반볼 짝수 적중)과 같은 픽 적중 결과를 하루 수십개씩 올렸고 “오늘 최소 7연승 분위기”라며 추가 베팅을 유도했다. 픽을 따라 베팅했다가 돈을 딴 이용자들의 ‘간증 글’도 보였다. “픽스터(총판을 칭하는 은어)가 노련미 있다” “덕분에 잘 먹었다(돈을 땄다)”는 식이다. ‘이벤트’도 수시로 진행한다. 파워볼 가족방에서는 “금일 파워볼 게임에서 일반볼 3번째 공 숫자를 맞히면 10만 포인트를 지급하겠다”는 이벤트가, 사설토토 가족방에서는 “투수의 투구 수를 가장 가깝게 맞히면 1등에게는 3만 포인트, 2등에게는 2만 포인트를 지급하겠다”는 이벤트가 열렸다. 가족방 속 이용자들은 픽을 받고 베팅해 환호하거나 넋두리했고, 다시 베팅할 포인트를 얻기 위해 이벤트에 참여했다. 불법도박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위험요인이 아니라 재밌는 놀이이자 취미생활처럼 보였다.

총판이 이처럼 가족방 운영에 공들이는 건 가족방 참여자 수가 곧 총판의 수익이 되는 운영 구조 때문이다. 가족방 참여자들은 한번 입장하면 쉽게 나가지 않고 정착해서 베팅하기 때문에 가입만 시키면 돈을 벌어다주는 총판의 고정적 수익 기반이 된다. <한겨레>와 만난 불법도박 업계 관계자는 “총판들끼리는 ‘가족방이 곧 재산’이라고 말한다. 이용자들은 믿을 만한 사이트라는 생각이 들면 그곳에서 계속 베팅한다. 가족방 회원들이 이기든 지든 일단 게임을 하면 총판한테 계속 수익이 떨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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