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보안선진화 TF 소속 서아무개 상무(왼쪽)와 사업지원 TF 소속 백아무개 상무(가운데)가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에 대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의 임원이 현업으로 복귀해 다시 삼성바이오 경영에 개입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반면, 티에프의 지시로 증거인멸에 동원됐던 삼성바이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임직원들은 검찰 수사 뒤 좌천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운영 담당 임원인 백상현 상무는 최근 삼성바이오와 에피스의 임직원들에게 다시 업무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백 상무는 삼성바이오와 에피스의 임직원들에게 내부자료 삭제 등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은닉교사)로 구속기소된 뒤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심 판결문을 보면, 백 상무는 2018년 5월,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임원들에게 검찰 수사에 대비해 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 3개월 뒤에는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 공장과 수원 에피스 사옥 등을 직접 찾아가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고한승 에피스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60여명의 컴퓨터와 휴대전화에서 ‘제이와이(JY,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칭), 부회장, 콜옵션’ 등의 열쇳말을 검색해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과정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 상무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올해 초부터 삼성바이오와 에피스에 은밀하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백 상무같이 사업지원티에프에 소속된 ‘계열사 운영 담당’ 임원들은 티에프가 가진 인사권을 활용해 공식적인 ‘전결권’ 없이도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 뒤 쇄신책의 일환으로 2017년 3월 해체된 미래전략실이 티에프 형태로 부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바이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백 상무가 본인이 직접 지시하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한 것인지, 삼성바이오에 전자우편을 보낼 때는 다른 사람 주소를 빌려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백 상무의 지시는 삼성바이오 재경팀장을 통해 다른 임원들에게 전파된다고 한다.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가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을 주도한 사실까지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지만 여전히 그룹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백 상무와 함께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에피스의 양아무개 상무와 이아무개 팀장은 재경파트에서 밀려나 기획업무를 맡게 됐다. 증거인멸을 실행한 재경팀의 차장급 실무자는 올해 1월 그룹장에서 해임되고 후배 밑에서 일하게 되는 등 징계성 인사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자료가 담긴 대용량 서버를 자신의 집에 숨겼던 에피스의 아이티(IT) 담당 부서 직원은 생산부서로 발령이 났다. ‘윗선’의 지시를 수행한 ‘실무자’들만 인사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무색하게 하는 ‘꼬리 자르기’”라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관련 제보를 받아 조처에 나서겠다고 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에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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