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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삼성, 물산 합병때 주가 띄우려 ‘에피스 나스닥 상장’ 발표했다

등록 2020-04-30 05:00수정 2020-04-30 10:33

‘바이오 상장계획’ 내부문건으로 확인
2015년 합병 주총 한 달 앞두고
“양사 주가, 의결권 행사에 영향”
상장발표 주가부양에 활용 사실로

주주 의사표시·매수청구권 기간
정밀 검토해 상장 발표일 택일
삼성 “급조 아니다” 주장 힘 잃어
삼성바이오에피스 고한승 사장.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삼성바이오에피스 고한승 사장.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삼성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를 동시에 띄워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발표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내부 문건을 통해 29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이날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과 고한승 삼성에피스 사장을 동시에 불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매개로 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 등을 조사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그룹은 2015년 6월3일 ‘바이오 상장계획 공표방안’이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을 작성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찬반을 묻는 주주총회를 한달여 앞둔 때였다. 합병 추진 사실이 2015년 5월26일 이사회 결의로 처음 알려진 뒤, 삼성물산 주주들을 중심으로 “‘1 대 0.35’(제일모직 대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유리하고 삼성물산에는 불리하다”는 문제제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삼성으로서는 그해 7월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승인받고, 이어 주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회사에 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수 있는 8월6일 전까지 두 회사의 주가를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높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문건에는 삼성이 합병 성사를 위해 최적의 ‘상장계획 발표일’을 정교하게 택일한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문건은 “양사의 주가는 주주총회 시(7.17)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주총회 이전에 주가 부양을 추진”해야 한다며 주총 전에 삼성에피스 상장 추진 사실을 발표해 주가를 띄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합병 반대 의사표시 기간(7.2~7.17)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7.17~8.6)이 주가 부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분석했다. 7월17일 이전에 상장 추진 사실을 발표하더라도 ‘주가 부양’ 효과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까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건은 “6월 중 상장계획 발표 시 주총 및 매수청구 행사기간까지 주가 부양 효과 유지가 불확실하여 7월 초 바이오 주체로 상장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검토한다.

실제로 삼성에피스는 문건의 내용처럼 그해 7월1일 나스닥 상장 추진을 공식화했다. 고한승 사장은 당시 “바이오 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이 있는 곳이 미국 나스닥 시장”이라며 “삼성에피스는 나스닥 역사상 최대 기업공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은 그해 12월 무산됐고, 삼성은 삼성에피스의 모회사인 삼성바이오의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삼성 쪽은 그동안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횡령’ 사건 재판에서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계획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유도하기 위해 급조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 내부 문건으로 삼성에피스 상장계획 발표를 ‘합병 성사’를 위해 활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런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에피스가 제일모직의 손자회사이므로 제일모직의 주가만 고려했으면 상장 추진 발표를 합병비율 산출 기간인 5월에 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며 “주식매수청구 기간과 호재가 영향을 미치는 기간까지 고려해 ‘7월1일’을 고른 셈이다. 상장 발표를 합병의 수단으로 이용했고, 이를 위해 절묘한 시점을 고른 게 드러난 것”이라고 짚었다.

임재우 장예지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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