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오른쪽 두번째)이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텔레그램 n번방' 재발 방지 등을 위해 열린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성인 대상 성범죄물을 갖고만 있어도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해도 처벌하는 죄도 신설하기로 했다. 현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만 소지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은 23일 이런 내용 등을 담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방안은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위원회, 대검찰청, 경찰청 등 9개 관계부처가 참여해 마련됐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목표로 △무관용 원칙 △아동·청소년 보호 강화 △처벌 및 보호 사각지대 해소 △중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의 ‘4대 추진 전략’을 설정했다. 아울러 4대 분야에서 17개 중과제와 4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처벌의 실효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물 제작 등을 중대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정형량을 상향할 계획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매 행위는 형량의 하한을 설정하기로 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폭력을 모의한 뒤 오프라인에서 범죄를 실행하는 사례가 많은 점을 고려해, 합동강간과 미성년자 강간도 중대범죄로 취급해 실제 범행에 이르지 않더라도 준비하거나 모의만 해도 예비·음모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국외 도피, 사망 등의 경우 기소나 유죄판결 없이도 몰수가 가능한 독립몰수제(검사가 기소 없이 법원에 몰수·추징만을 별도 청구해 법원이 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범행 기간에 취득재산을 범죄수익으로 추정하는 규정도 신설해 범죄수익 환수도 강화하기로 했다. 신상공개와 관련해선 유죄 확정된 범죄자의 신상공개 대상도 종전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 등 성폭력범으로 한정하던 것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사람도 추가하기로 했다.
아동·청소년 보호도 강화된다. 아동·청소년을 유인해 길들임으로써 동의한 것처럼 가장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을 신설해 아동·청소년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로 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폭행·협박이 없더라도 13살 미만이라는 점을 알고 간음하면 성립하는 죄)는 13살 미만에만 적용됐지만, 미성년자 보호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논란이 있어 기준 연령을 16살 미만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성범죄물의 수요 차단 및 인식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수요 행위도 범죄라는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행위의 형량이 높아진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로 벌금형을 받은 사람은 학교·어린이집 등에 취업이 제한된다. 나아가 현재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에 대해서만 소지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성인 대상 성범죄물을 소지하는 경우도 처벌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하지 않고 구매만 해도 처벌하는 구매죄도 신설된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도 내실화할 계획이다. 성매수에 연루된 아동을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고 처벌 대신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여가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기능을 강화해 피해영상물 신속 삭제 지원 등 24시간 원스톱 지원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삭제 절차를 더욱 간소화해 ‘선 삭제 후 심의’ 절차가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인터넷 사업자가 발견 시 바로 삭제해야 할 성범죄물이 종전에는 불법 촬영물로 국한돼 있었지만 디지털 성범죄물 전반으로 확대하고, 유통 방지를 위한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처 의무가 웹하드 사업자에게만 적용되던 것을 모든 사업자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반하면 제재수단으로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된다.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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