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우리 마을 봄 풍경

등록 2020-04-10 08:00수정 2020-04-10 08:05

멀리 못 가니 보이네
동네 꽃의 아름다움
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나무 아래 1일 오후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나무 아래 1일 오후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꽁꽁 언 땅을 뚫고 흰 눈 사이로 빼꼼히 얼굴 내미는 봄의 전령사 복수초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봄꽃들은 한 마디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화려한 신호탄이다. 그 꽃 내음 속 누군가의 마음은 설레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으리라. 그러나 2020년의 봄 풍경은 여느 해와 사뭇 달랐다. 수십만 상춘객을 반겼던 광양 매화축제가 취소되었고, 벚꽃으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와 경남 창원 진해의 경화역 공원 등은 폐쇄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어 강원 삼척과 제주 서귀포 녹산로의 유채꽃밭은 갈아엎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풍경의 한 자락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천주교가 현장 미사를 취소한 가운데 5일 오후 한 성당의 화단 꽃너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다. 이정아 기자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천주교가 현장 미사를 취소한 가운데 5일 오후 한 성당의 화단 꽃너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름난 봄꽃 명소로 향하지 못한 발걸음이 머문 동네에서 해마다 그 자리를 지켰을 봄의 풍경을 만났다. 미사가 중단된 일요일 어느 성당의 화단 구석에서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봄볕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동네 뒷산과 골목길 어귀, 여염집 담벼락에 활짝 핀 꽃들은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기운을 알리고 있었다. 이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와도 같아서 눈 밝은 누군가는 감탄하고, 어떤 이는 미처 보지 못한 채 지나친다. 양손에 든 무거운 짐에 온통 신경이 쓰이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 길을 걷는 동안 놓쳐버린 찬란한 이 순간들을 사진으로 모아보았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소박한 모습인데다, 혹여 이곳이 또 하나의 ‘명소’가 되는 일은 피하고자 각각의 취재 장소는 부러 밝히지 않는다.

4일 오전 한 어린이가 가로수에서 떨어진 벚꽃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4일 오전 한 어린이가 가로수에서 떨어진 벚꽃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에른스트 슈마허는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과 인간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맹목적으로 성장지상주의를 따르던 걸음을 멈춰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 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며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이는 ‘큰 것’의 가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큰 것으로만 가득 채운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작은 것’에 대한 느낌표이다. 코로나19는 거대한 물음표가 되어 지금껏 달려온 우리 삶의 다음 이정표를 묻는 듯하다. 그 커다란 고민에 저 들꽃의 소박한 미소를 얹어본다. “작은 것도 아름답다.”

흐드러지게 핀 꽃가지를 흔드는 조팝나무 아래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흐드러지게 핀 꽃가지를 흔드는 조팝나무 아래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겨우내 마른 가지에 돋아난 새싹 뒤로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는 시민이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겨우내 마른 가지에 돋아난 새싹 뒤로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는 시민이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봄볕에 고운 색을 드러낸 황매화 꽃송이. 이정아 기자
봄볕에 고운 색을 드러낸 황매화 꽃송이. 이정아 기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자목련 아래로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자목련 아래로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직박구리 한 마리가 자목련 꽃잎을 쪼아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직박구리 한 마리가 자목련 꽃잎을 쪼아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쳐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쳐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가로수 아래 벚꽃 잎들이 떨어져 있다. 이정아 기자
가로수 아래 벚꽃 잎들이 떨어져 있다. 이정아 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20년 4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2020년 4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혐의 부인’ 윤석열 담화…법조계 “재범 위험, 신속 구속해야” 1.

‘혐의 부인’ 윤석열 담화…법조계 “재범 위험, 신속 구속해야”

윤석열 담화에 시민들 ‘충격과 분노’…“이번주 무조건 끝내야 한다” 2.

윤석열 담화에 시민들 ‘충격과 분노’…“이번주 무조건 끝내야 한다”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3.

[단독] 도이치 주범 “주가조작은 권오수·김건희 등 합작품인 듯”

“정! 말! 대다나다!!” 정영주·이승윤…윤 담화에 혀 내두른 연예인들 4.

“정! 말! 대다나다!!” 정영주·이승윤…윤 담화에 혀 내두른 연예인들

저속노화 교수 “그분, 고위험 음주로 인지 저하…작은 반대에도 격분” 5.

저속노화 교수 “그분, 고위험 음주로 인지 저하…작은 반대에도 격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