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나무 아래 1일 오후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꽁꽁 언 땅을 뚫고 흰 눈 사이로 빼꼼히 얼굴 내미는 봄의 전령사 복수초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봄꽃들은 한 마디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화려한 신호탄이다. 그 꽃 내음 속 누군가의 마음은 설레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으리라. 그러나 2020년의 봄 풍경은 여느 해와 사뭇 달랐다. 수십만 상춘객을 반겼던 광양 매화축제가 취소되었고, 벚꽃으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와 경남 창원 진해의 경화역 공원 등은 폐쇄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어 강원 삼척과 제주 서귀포 녹산로의 유채꽃밭은 갈아엎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풍경의 한 자락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천주교가 현장 미사를 취소한 가운데 5일 오후 한 성당의 화단 꽃너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다. 이정아 기자
이름난 봄꽃 명소로 향하지 못한 발걸음이 머문 동네에서 해마다 그 자리를 지켰을 봄의 풍경을 만났다. 미사가 중단된 일요일 어느 성당의 화단 구석에서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봄볕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동네 뒷산과 골목길 어귀, 여염집 담벼락에 활짝 핀 꽃들은 다시 시작되는 생명의 기운을 알리고 있었다. 이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와도 같아서 눈 밝은 누군가는 감탄하고, 어떤 이는 미처 보지 못한 채 지나친다. 양손에 든 무거운 짐에 온통 신경이 쓰이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 길을 걷는 동안 놓쳐버린 찬란한 이 순간들을 사진으로 모아보았다.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소박한 모습인데다, 혹여 이곳이 또 하나의 ‘명소’가 되는 일은 피하고자 각각의 취재 장소는 부러 밝히지 않는다.
4일 오전 한 어린이가 가로수에서 떨어진 벚꽃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에른스트 슈마허는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과 인간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맹목적으로 성장지상주의를 따르던 걸음을 멈춰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 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며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이는 ‘큰 것’의 가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큰 것으로만 가득 채운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작은 것’에 대한 느낌표이다. 코로나19는 거대한 물음표가 되어 지금껏 달려온 우리 삶의 다음 이정표를 묻는 듯하다. 그 커다란 고민에 저 들꽃의 소박한 미소를 얹어본다. “작은 것도 아름답다.”
흐드러지게 핀 꽃가지를 흔드는 조팝나무 아래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겨우내 마른 가지에 돋아난 새싹 뒤로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는 시민이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봄볕에 고운 색을 드러낸 황매화 꽃송이. 이정아 기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자목련 아래로 지나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직박구리 한 마리가 자목련 꽃잎을 쪼아먹고 있다. 이정아 기자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봄바람에 살랑이는 벚꽃나무 아래를 지나쳐가고 있다. 이정아 기자
가로수 아래 벚꽃 잎들이 떨어져 있다. 이정아 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20년 4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