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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망원동우체국 지켜주세요” 노란 깃발 108개가 나부낀다

등록 2020-03-07 14:29수정 2020-03-07 14:30

[토요판] 뉴스분석 왜
전국 677곳 우체국 폐국 논란

4년 내 동네 우체국 절반 줄어
소규모 민간취급국 전환 예고
“전자우편 활성화로 물량 감소 탓”

마포구 망원동 등 주민 반대 운동
노조 “직원 일자리 줄어들 것”

고령자·서민 위한 서비스 유지론
도서산간 지역경제 쇠퇴 우려도
지난 2일 저녁 ‘망원우체국 지키기 주민모임’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사거리 인근 도로에 주민들의 메시지와 이름이 적힌 현수막 108개를 설치했다.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제공
지난 2일 저녁 ‘망원우체국 지키기 주민모임’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사거리 인근 도로에 주민들의 메시지와 이름이 적힌 현수막 108개를 설치했다.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제공

▶ 잠자던 단톡방들이 죄다 살아나 ‘요즘 별일 없지?’ ‘마스크는 있냐’ ‘건강 조심해’라며 서로 안부를 묻는 요즘이다. 웬만한 소통은 메신저, 이메일, 전자문서로 해결되는 시대에 동네 우체국을 지켜달라는 주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4년간 전국의 동네 우체국 절반가량을 줄이겠다는 우정사업본부의 계획에 대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지를, 소포를 부치고 싶어요.”(조현익)

“추억과 삶은 폐국할 수 없습니다.”(조영권)

“(우체국은) 지역의 상징이자 소중한 마음들이 모이는 곳.”(재우)

때아닌 감염병이 도시를 집어삼킨 지난 2일, 해 질 녘 서울 마포구 망원동엔 샛노란 펼침막이 하나둘 내걸리기 시작했다. ‘망원우체국 사거리’ 6차선 교차로엔 가로수마다 어른 키만한 펼침막 108개가 연달아 이어졌다. “우체국이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사거리 도로를 향해 거는 게 좋아요.” 먼저 건 이가 시범을 보이자 두세명이 다른 가로수에 따라 걸었다.

‘망원우체국 지키기 주민모임’은 지난달 27일부터 개인 현수막 걸기를 추진했다. 짤막한 메시지와 자신의 이름 또는 별명이 적힌 현수막을 걸겠다는 이들이 107명 모였다. 1만원의 제작비용 외에도 성금이 200여만원 모였다. 이처럼 망원우체국 사거리에 현수막이 줄을 이은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애도 현수막이 걸린 이후 두번째다. 주민모임 명의의 현수막 하나를 추가해 총 108개의 노란 물결이 거리를 환히 비췄다.

이날 사거리 모퉁이 한쪽에 행인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 또 있었다. 퇴근길 직장인도, 부모님 손을 잡은 어린이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바로 망원동우체국 폐국 반대 서명이었다. 행인들은 서명용지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기꺼이 내주었다. 이날 현수막 걸기에 참여한 주민 고아무개(52)씨는 “동네 주민센터, 학교,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은 없어진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한다. 이미 동네 일부분이 된 우체국은 늘 그 자리를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 우체국이 없어진다니 삶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우정사업본부는 경영합리화 방침으로 전국의 우체국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까지 전국 동네 우체국(6급 이하 직영 우체국) 1352곳 중 절반가량인 677곳(50%)을 줄이기로 목표를 세웠다. ‘창구망 합리화 추진계획’이란 이름으로 축소 첫해인 올해만 경기도와 인천 28곳, 부산 29곳, 충청 25곳, 경북 22곳 등 전국 171곳이 그 대상이 됐다. 우정사업본부 산하기관 서울지방우정청은 서울에서 4년 이내 96곳, 올해 24곳을 줄이기로 하고, 올해 상반기 임차기간이 만료되는 네 곳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그중 한 곳이 마포구 망원동우체국이다.

우체국 직원들과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2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의 기자회견과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주민들의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는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 주민자치모임 등을 중심으로 지난달부터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망원동우체국 폐국을 반대한다는 서명운동엔 한달 사이 총 3500여명(3월3일 기준)이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서울 망원동우체국 폐국 반대 건의문’에는 수백명이 참여했다.

전자우편과 온라인 메신저 등 첨단 정보기술(IT)로 인한 의사소통이 활발한 이때, 동네 우체국이 꼭 필요하다는 주민들이 왜 이토록 많은 것일까.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주민들이 우체국 폐국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주민들이 우체국 폐국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주민들이 우체국 폐국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앞에서 주민들이 우체국 폐국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31년 된 동네 우체국이 문 닫는 이유

지난 2일 저녁 6시30분께, 출입문은 닫혔지만 우체국 내부엔 여전히 대여섯명의 이용객이 차례를 기다렸다. “588번 분 계세요?” 직원이 부르자 대기석 손님이 우편물을 들고 창구로 향한다. 업무 종료 시간인 저녁 6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월요일인 이날은 영업 종료 3분 전에도 대기자가 30명이 넘었다.

이처럼 하루 이용객 600여명인 망원동우체국은 1989년 11월에 문을 열어 올해 31년째를 맞이한 공공기관이다. 이사 한 번 없이 한 건물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까닭에 우체국 앞 교차로는 ‘망원우체국 사거리’란 공식 명칭을 얻었다. 시민들이 택시를 타고 망원동에 가고자 할 때 “우체국 사거리 가주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이 지역 랜드마크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건 불과 한달 전이다. 지난 2월 서울지방우정청은 오는 4월27일 임차계약이 만료되는 망원동우체국을 우편취급국 전환 대상으로 정했다. 우편취급국은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민간위탁시설로, 금융업무는 하지 않고 주로 기계를 이용해 우편물만 취급한다. 따라서 우체국 직원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31년간 자리잡았던 건물의 주인마저 임차계약 종료에 맞춰 새 세입자를 구한 터라 망원동우체국의 폐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로 계약을 마쳤다. 서울지방우정청은 인근에 들어설 우편취급국 위탁운영자를 모집 중이다. 아직 접수된 운영자가 없지만, 오는 4월24일에 망원동우체국은 공식 업무를 종료하기로 했다.

동네 우체국이 문을 닫고 민간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되는 데는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의 비용절감 논리가 숨어 있다. 이메일, 전자문서가 활발히 쓰이면서 우체국의 우편물량은 십수년째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인건비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우편서비스는 점점 사양산업이 되자 우정사업본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수년 전부터 우체국 수를 줄이고 우편서비스를 민간이 운영하는 우편취급국에 맡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서울지방우정청 관계자는 “망원동우체국이 문을 닫아도 인근에 우편취급국이 생기기 때문에 주민들은 불편을 겪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공공기관들은 적자가 발생하면 세금을 지원받지만 우체국은 직접 수익을 창출해 운영한다. 우편서비스의 주요 비용인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 3500여곳의 우체국을 운영하는 우정사업본부는 우편물량이 감소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전국의 우편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말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렇게라도 우체국 수를 조정해야 해마다 적자가 나는 전국의 우편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촛불집회, 일자리마저 불안

하지만 개별 우체국의 상황과 지역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정사업본부가 폐국 목표 수치를 제시해 일방적으로 추진한 게 문제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신명춘 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장은 “임차계약 만료를 이유로 1호 폐국 대상이 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망원동우체국은 보통 20~30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다. 업무상 등기우편을 보내는 기업 이용자가 아닌 일반우편을 보내는 개인 이용자가 주 고객이어서 폐국했을 때 주민 피해가 큰 곳이다. 우편취급국은 주로 기계로 업무를 하기 때문에 고령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우체국 폐국을 놓고 논란을 빚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전북 군산시와 울산광역시 등 지자체들은 최근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 경제가 우체국 폐국으로 더욱 쇠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전북 군산시의회는 ‘군산시 우체국 폐국 반대 건의안’을 의원 전원 동의로 채택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전달했다. 군산시는 네 곳의 우체국이 4년 이내 문을 닫는 대상에 포함됐다. 시의회는 “군산지역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지엠 공장 폐쇄로 전국 최초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된 상황”이라며 “공공기관인 우체국이 문을 닫는다면 열악한 지역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고 금융소외계층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울산 동구의회도 현대중공업 우체국 등 동구에 위치한 우체국 2곳이 폐국 대상이 되자 지난달 23일 의원 전원 동의로 결의안을 통과시켜 관련 기관에 보냈다. 동구의회는 “아직도 많은 국민이 고지서와 각종 생활 관련 정보를 우편으로 받아보고 있다. 우편은 국민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서비스”라고 지적했다. 울산에서는 지난달부터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우정사업본부 규탄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4만여 우정사업본부 직원 중 1만여명의 행정기술직이 소속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조는 이번 계획이 2천여명의 구조조정을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 677곳의 우체국이 문을 닫으면 직원 일자리도 장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에는 7개 노조가 있는데, 동네 우체국 직원들은 이 노조에 가장 많이 속해 있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사거리 인근 도로의 모습
지난 2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망원동우체국 사거리 인근 도로의 모습

취약계층 많이 이용하는 우체국마저…

구성원 3만여명이 모인 페이스북 ‘망원동좋아요’ 페이지에서는 지난달 짤막한 논쟁이 있었다. 누군가 망원동우체국 폐국 반대에 동참하자며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하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체국 축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반박 의견이 달린 것이다. ㄱ씨는 “(우체국이) 없어지는 건 아쉽지만 손편지도 쓸 일이 없어지고 각종 명세서도 우편으로 받지 않고 소포마저 택배회사를 주로 쓰는데 우체국 몇 개 없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라는 의견을 올렸다.

하지만 전국 각 지역에 실핏줄처럼 수십년간 존재해온 동네 우체국이 줄어들면 고령자 등 정보통신 취약계층과 서민금융이 더욱 소외될 것이란 걱정이 주민들 사이에 오갔다. 망원동 주민 장운영(37)씨는 최근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 ‘마포청년 ㅁㅁㅁ’에서 망원동우체국 살리기 성금을 보내는 데 동의했다. 우정사업본부 누리집에 민원을 넣고 폐국 반대 서명운동에도 동참했다. 장씨는 “우체국의 주요 고객이 어떤 계층이냐를 생각해보면, 이메일을 잘 쓸 수 없는 어르신이 우체국에 간다. 예금이나 보험 상품도 우체국은 서민 대상”이라며 “국민들의 삶과 가까운 공공기관을 경영합리화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3년부터 전국 각지에 연결된 우체국 인프라를 통해 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며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 정보화에 취약한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실시하는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정의당 마포구위원회는 지난 20일 논평을 내어 “우체국 폐국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우체국은 정보통신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용해왔다는 점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공공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번에 전환 대상이 된 677곳은 4년간 목표치일 뿐 개별 우체국의 우편취급국 전환 여부는 전국 9개 각 지방우정청이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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