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역학조사관 130명, 권고 규모의 절반 수준 ① 대부분 계약직 ② 급여 적고 ③ 커리어 비전 없어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이대로는 전문성 못 키워” “중국 보고서 못 믿어” “위험도 과장된 측면” 의견도
한겨레TV ’코로나19 비상, 당신이 몰랐던 역학조사관의 속사정’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역학조사관은 130명(질병관리본부·1월31일 기준). 확진자가 이미 1000명을 넘어선 현 상황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눈 뜨면 백 단위로 확진자가 나오는 대구•경북의 경우도 역학조사관은 다섯명(대구 2명, 경북 3명)에 불과합니다.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불거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똑같은 지적이 나왔습니다. 당시 역학조사관은 34명, 이 가운데 2명을 빼고는 모두 공중보건의였습니다. 길어야 3년 일하고 떠나는 공중보건의에게 감염증 확산을 저지하는 임무를 전적으로 맡기기는 불안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018년 국회가 중앙 정부에 30명 이상, 각 시•도에 2명 이상(한 명 이상은 반드시 의사) 역학조사관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법을 개정(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했습니다.
그런데도 또다시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이유, 뭘까요? 얼마나 많은 역학조사관을 확보해야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하는 ‘비상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전직 한•미 역학조사관 세 명과 통화했습니다. 탁상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교수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며 신종플루 사태를 겪었습니다. 신상엽 한국 의학연구소 학술위원장은 2003∼2004년 공중보건의로 재직할 때 역학조사관을 지냈습니다. 이관 동국대 의대 교수는 2015년 메르스 때 민간 역학조사관으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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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감염증이 확산할 때마다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 무엇인가요? 신상엽: 일단 숫자(인원)가 중요한 게 아닌 거 같고요. 더 중요한 건 잘 훈련 받은, 지식과 경험을 모두 갖춘 역학조사관을 많이 확보하는 일입니다. 특히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저는 감염내과를 전공한 사람이었는데도 (현장에 나가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어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역학조사관의 업무는 환자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죠. 왜 경험이 중요하냐면, 현장에 나가면 대부분이 거짓말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거짓말파티에요. 잘못하면 격리되거나 방역 당국에서 귀찮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 있어도 없다고 하고, 타이레놀 먹고 열 없다고 우기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보고서에 담으면 완전히 잘못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거죠. 기자나 경찰도 계속 경험해야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걸러낼 수 있잖아요. 거짓말하고 병까지 앓는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그걸 바탕으로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어요.
그런데 경험이 쌓이려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최소 10년 이상 일한 역학조사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분 안정이 되어야 해요. ‘2년 계약직’으로 어떻게 그걸 할 수 있나요. 그러니 (감염내과 전공자는) 다 대학에 있고 질병관리본부에 남아 있는 분이 거의 없죠.
이관: 메르스 이후 각 시•도에 역학조사관 두 명씩 두고, 이 가운데 한 명은 반드시 의사로 뽑아야 하는 기준이 생겼어요. 그런데 일단 지원자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공무원이 대신해서 역학조사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서울과 경기도는 좀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지방 상황을 보면 보통 역학조사관 한 명은 의사로 채용을 하고, 나머지 한 명은 공중보건의나 공무원이 채우고 있습니다. 역학조사관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환자가 많이 나온 지역은 더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확진자 한 명 조사하는데 기본 하루 이틀이 걸립니다. 그 후에 신용카드 조회, GPS 자료 역추적, 확진자면 접촉자 분류하는 작업이 계속 이어져요. 그러다 보면 또 확진자가 발생하죠. 확진자가 한 명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현 수준의 역학조사관 규모로는) 물리적으로 (방역이) 되지 않아요.
탁상우: 전 세계 역학조사관 네트워크인 테피넷(TEPHINET)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여기서는 인구 20만 명당 한 명의 역학조사관을 적정숫자로 봅니다. 이 숫자가 절대적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나라마다 환경에 따라서 다를 수 있죠. 다만 ‘적정’수준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역학조사관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역학조사관은 현재 확진자 동선 파악하고 접촉자 정보 수집해 매일 보고서 쓰기 바쁘죠. 이런 식이면 환자가 늘어날 때마다 역학조사관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일만 시킬 거면 굳이 의사를 뽑을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역학조사관에 대한 정의가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게 제 판단이에요. 역학조사관은 이 질병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걸 검증하고, 예방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간단한 통계 분석이라도 할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매일 보고서만 쓰고 있으면 어떻게 이걸 하겠어요. 현장 역학조사관만큼 많이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리 민간전문가가 자문해도 역학조사관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보고서에 담지 못하는 정보가 얼마나 많겠어요.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가설을 내놓고, 검증하고 정책을 내놔야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다 민간전문가에게만 묻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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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역학조사관, 왜 지원자가 없을까요? 신상엽: 신분상으로도 불안정하고 연봉도 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좋은 인력이 지원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요. 특히 신분적인 안정감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2년 계약직으로는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없죠. 정규직, 전공자 위주로 충분한 대우를 해준다고 하면 그래도 할만한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이관: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겼잖아요. 의전원 졸업생들은 아무래도 기초학문보다는 임상을 선호하죠. 그러다 보니 젊은 분들은 젊은 분대로 지원을 안 하게 되고, 경력 있는 분들은 굳이 내가 의사로서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급여, 복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지원하지 않는 거죠.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은 ‘전문임기제’로 뽑는데 이러면 급여 부분은 좀 자유롭지만 (※연봉 하한액만 있기 때문) 승진은 어렵습니다. 이 말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역학조사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과장급 일반 공무원한테 지휘를 받아요. 아주 이상하게 되는 거죠. 현재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급여도 만족스럽고 승진도 가능한 게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체계를 좀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탁상우: 안정적인 건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전문인력이다 보니 안정성만큼이나 중요한 게 ‘흥미’입니다. 미국에서는 역학조사관을 ‘학력’이 아니라 ‘경력’에 따라 베이식(Basic) 인터미디에이트(Intermediate) 시니어(Senior) 세 단계로 나눠요. 시니어가 되면 관리자와 멘토 역할을 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내가 평생 이 일만 하지는 않는다’는 커리어 비전이 보이는 거죠. 내가 멘토가 되고, 주나 연방 정부에서 중요한 일도 맡아서 하고 정책도 결정하고 이런 비전이 있어야 (역학조사관 직무에) 지원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없어요. 미국에서는 역학조사관 채용을 질병통제예방센터 고급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으로 인식해요. 고급 인력을 뽑아서 이 사람을 관리자로 키우고, 나중엔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혀요. 그래서 경쟁이 박터져요. 제가 입사했을 때 내국인 경쟁률은 7대1, 외국인 경쟁률은 10대1이었어요. (※미국에선 외국인 쿼터가 따로 있음)
Q. 비상상황을 대비해 너무 많은 역학조사관을 뽑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신상엽: 역학조사관은 소위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분명하죠.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놀고 있는 인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비수기에는 미국 같은 방역선진국에 보내서 공부도 시키고, 경험도 시키고, 연구도 시켜서 역량을 키우도록 해야 합니다. 이분들을 역량을 키우도록 지원해서 평시에는 보건소 직원들 교육을 맡게 해야 합니다. 보건소 직원들이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상시적인 교육이 필요하거든요. 교육이 안 되면, 막상 (감염병이 확산하면) 걸리면 자기도 죽을 수 있는데 얼마나 허둥지둥하게 되겠어요. 평시에는 ‘교육’, 전시에는 ’방역’을 맡도록 해야 합니다.
이관: 지금은 시•도에 역학조사관들이 있는데, 사실 시•군•구에도 그런 분들이 한 분 정도 있으면 좋죠. 또 전국 254개 보건소에도 한 분씩 있고요. 보건소-시•군•구-시•도-중앙의 체계가 좀 갖춰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탁상우: 현장 역학조사관이 감염병에만 대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만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듯이요. 우리나라에는 식중독도 많고, 환경성 질환, 병원 의료감염 같은 다양한 질병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일들을 조사하는 게 다 현장 역학조사관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Q. 2015 메르스 때와 비교했을 때 나아진 점, 여전히 부족한 점을 꼽는다면? 이관: 메르스 때에는 역학조사관에게 병원 폐쇄라든지, 신용카드 기록 조회를 결정할 법적 권한이 없었는데 이제는 할 수 있어요. 그때는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이제는 시스템이 따라주는 상황입니다. 저는 대구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하기 전까지 보건당국 대응이 거의 완벽했다고 봐요.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탁상우: 일단 역학조사관 숫자가 늘어서 확진자 동선관리, 접촉자 관리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메르스 때와 달리 지금 지역사회 전파가 진행되고 있다는 건데, 지금도 이런 고전적 방식을 취할 거냐는 거죠. 아니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Q. 코로나19 발생 한 달, 고군분투하고 있을 후배 역학조사관에게 한 마디?신상엽: 역학조사관이라는 게 정말 희생정신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역학조사관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조금 더 힘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역학조사관을 만나는 시민분들께는 역학조사에 잘 협조해주시고, 특히 아는 걸 최선을 다해서 말씀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탁상우: 한 달씩 현장 나가 있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저는 2주 하고도 쓰러질 뻔했는데 그걸 4주나 한다니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일할 때는 멘토 선배가 매일 같이 전화로 “건강 괜찮냐”고 관리해줬습니다. 감염병 대응인력의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이분들이 쓰러지면 이제 현장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훈련되지 않으면 이 두려운 현장에서 (환자와) 제대로 대화조차 못 합니다. 지금 현장 역학조사관들 ‘내가 아니면 누가하겠어?’라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분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Q. 코로나19 관련, 보건당국이나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신상엽: 저는 중국에서 나온 보고서 하나도 믿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역학조사도 제대로 안 됐을 거고, 거짓말이 걸러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탁상우: 현재 중국에서 보고되고 있는 ‘위험도’는 좀 부풀려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당국은 사망률이 2∼3%라고 밝혔음) 오히려 일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례를 가지고 통계 내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유람선은 3700명이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600명이 넘는 환자가 나왔는데 사망자는 2명(※인터뷰 당시는 2명이었으나 26일 현재는 4명으로 증가) 인데 그러면 사망률은 0.3%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신종플루보다는 높고 메르스보다는 낮은 거죠. 이런 정보들이 우리 질병관리본부에서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관: 이제부터는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위생수칙을 지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람 모이는데 피하고,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잘하셔야 합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게 의료기관 방문수칙입니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응급실을 가면 그 병원 문 닫아야 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불필요한 의료기관 방문은 최대한 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취재/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연출/ 김현정 피디 hope021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