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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폰터뷰] 스스로 목숨 끊는 경찰들...‘아프다’ 말하지 못했다

등록 2020-01-29 22:00수정 2020-01-30 11:06

경찰 자살률 전체 공무원의 2.5배
인력 부족해 규정보다 빈번한 야간근무
수면장애-알코올 의존증-우울증으로 이어져
“아프다” 말하는 순간 커리어 꼬여
경찰 치유기관 늘었지만 “여전히 눈치 보여”
한겨레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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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내 동료, 선배, 후배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4년 차 현직 경찰이 쓴 에세이 <경찰관속으로>에는 이런 글귀가 등장합니다. 그만큼 죽음을 향하는 경찰이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실제 최근 석달여(2019년 10월 21일부터 2020년 1월 28일까지) 동안 여섯 명의 경찰이 자살을 시도하고 이 가운데 다섯 명이 숨졌습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찰(16명·2018년·경찰청)이 직무 수행 중 사고로 순직한 경찰보다(11명) 더 많고, 경찰 자살률(19.8명·2014년∼2018년 평균)은 전체 공무원 자살률(7.8명)에 비해 2.5배 높습니다. 무엇이 경찰을 죽음으로 내몰까요? 어떻게 해야 죽음 가까이 간 경찰을 막아설 수 있을까요? 폰터뷰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경력 20년 차 경찰 히어로(익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겨레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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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근무 중 동료 경찰의 자살시도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자살시도 장면을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어요. 알고 보니 심한 수면 장애·알코올 의존증·우울증을 앓았고 여기에 가족 관계까지 소원해지면서 모든 것을 놓게 된 케이스였어요. 만약 그가 건강한 상태였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야간근무를 하는 경찰 대부분이 수면 장애를 앓고 있고, 이 장애는 곧잘 알코올 의존증으로 이어진다고 히어로는 말합니다. 현재 전체 경찰의 41.5%(경찰청 통계연보)에 해당하는 지역경찰(지구대·파출소 근무)은 공식적으로는 주간-야간-비번-휴무의 순서로 근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번 날에 야간근무를 자원하는 경우가 많아 주간-야간-야간-휴무로 근무하는 경찰이 대부분입니다. 인력이 부족한 지구대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5년 차 경찰은 “월급이 적으니 야간수당이라도 받으려고 (근무를) 자원하는 경찰도 일부 있지만, 비번인 팀에서 야간근무 자원을 나가주지 않으면 당직팀이 야간 휴게시간(3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원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습니다.

야근하고 오전 9시에 퇴근해 오후 6∼7시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면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술에 점점 의존하게 됩니다. 히어로는 “과거엔 야간근무 끝나고 아침에 다 같이 감자탕에 소주 먹는 문화가 있을 정도였다”며 “요즘도 취객에게 머리를 얻어맞거나 하는 공무집행방해 사건이 있을 때 위로 차원에서 마실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몽롱한 상태로 오후 늦게 출근하면 평소(주간근무)보다 2∼3배 많은 신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야간에 두세 배 많은 신고가 떨어져요. 정말 단 한 시간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고, 출동 때마다 다 다른 사건이기 때문에 긴장하게 돼요. 이렇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스트레스에 취약해져요. 이럴 때 주취자로부터 공격적이거나 비하적인 언행을 당하면 자기도 모르게 공격적인 반응이 튀어나오기도 해요. 한번은 며칠째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몹시 추운 날 출동을 나갔는데 너무 사소한 신고인 거예요. 저도 모르게 ‘뭐 이런 거 가지고 신고를 하셨냐’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어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슬퍼지더라고요. 반대로 주취자의 비하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때는 ‘왜 더 잘 대처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어요.”

한겨레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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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로 인해 수면 장애·알코올 의존증·우울증을 앓는 경찰이 많지만 그렇다고 야간근무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몸과 마음이 상하기 쉬운 노동환경에 놓인 경찰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는 일일 텐데요. 실제로 경찰청은 지난 2014년 트라우마 등 경찰의 직무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마음동행센터를 개소하고 꾸준히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은 이 역시 필요할 때 충분히 이용할 수 없다고 토로합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이 상사나 동료들에게 알려질까 봐 두려워섭니다. 승진이 중요한 계급 조직에서 ‘아픔’은 ‘무능력’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경찰청은 센터 이용 기록을 철저히 비밀로 한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히어로는 “(마음동행센터에 가려면) 상사의 결재를 받긴 받아야 한다”며 “오래 자리를 비울 경우 주변에서 ‘어디 갔냐’고 묻고 그러다 보면 알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경찰도 “공문이 오가고 결재를 하다 보면 어디선가 새어나가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상담 인력도 아직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마음동행센터는 전국에 18곳, 센터당 한 명의 전문상담인력이 상주합니다. 경찰 전체 인원이 12만명 수준이니 상담사 한 명이 6600명을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겨레TV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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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기관도 이럴진대 정신과 치료 사실을 말하긴 더더욱 어렵습니다. 특히 지구대·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일부에 한해 총기를 해제하는데, 이 경우 동료와 민원인으로부터 정신질환자라고 낙인 찍히게 되고, 이 낙인이 승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어 아픔을 철저히 숨긴다는 겁니다. 히어로는 “총기를 해제하는 게 경찰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이렇게 ‘낙인’을 찍어서 조직에서 재기할 수 없는 실패자로 만들어버리는 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반복되는 야간근무로 몸과 마음이 상하기 쉬운데도 ‘아픔’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 히어로는 경찰에 대한 더 정밀한 건강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문진 수준으로 정신 건강검진이 이뤄지는데 좀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스트레스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정신과나 마음동행센터에서 상담을 받게 하는 식으로요. ”

끝으로 오늘도 지구대 휴게실 한구석에서 쪽잠을 청하는 경찰 동료들에게 히어로는 이 말을 건넸습니다.

“어떤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더라고요. 아무도 구석에서 울지 말라고 지구는 둥글게 만들어졌다. 당신이 쪽잠을 자는 그곳이 지구의 중심입니다. 오늘도 고생했고, 잘했고, 수고하셨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취재: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연출: 조성욱 피디 ch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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